‘해피머니 문화상품권’이 휴지 조각 된 사연
티몬과 위메프의 대규모 정산·환불 지연 사태(이하 티메프 사태) 이후 이커머스 업계 전반에 ‘그림자 금융’ 문제가 대두되고 있다. 그림자 금융이란 금융 당국의 규제와 감독으로부터 벗어난 불투명한 금융 행태를 의미한다. 오프라인 매장에서 소비자와 판매자가 돈(현금)을 주고받는 것과 달리, 이커머스에서는 결제 시스템상 물품을 구입한 시점과 실제 돈이 오가는 시점 사이에 ‘시차’가 발생한다. 시차가 길면 길수록 그 사이에서 다양한 비즈니스가 발생하는데, 이번 티메프 사태 이후 이 시차로부터 발생한 다양한 미지급 사태가 연쇄적으로 이어지고 있다.
대표적인 영역은 상품권 분야다. 문화상품권 중 하나인 해피머니 문화상품권은 티메프 사태 직전까지 티몬·위메프에서 액면가보다 7~10% 할인된 가격으로 유통됐다. 소비자들은 이 상품권을 해피머니 사이트에서 운영하는 ‘해피캐시’로 전환해 게임·음악·쇼핑몰·인터넷 서비스 등 개별 사이트에서 결제할 때 사용하거나, 일정 수수료(6%대)를 지불하고 다른 페이 업체(페이코, 네이버페이 등) 포인트로 전환하는 방식으로 사용처를 늘려왔다. 티몬은 정산 지연 사태가 확산된 7월 말까지도 해피머니 상품권을 7.4% 할인 판매할 만큼 상품권 유통에 적극적이었다. 업계에서는 ‘포인트 전환 수수료를 내고도 상품권 구매자가 이익을 남기는 게 가능하다’는 이유로 일찌감치 티몬과 위메프의 위기를 감지하기도 했다.
상품권은 기본적으로 ‘현금 흐름’을 만들어내는 상거래다. 카카오페이머니와 같은 선불충전금 역시 기본적인 비즈니스 구조는 상품권과 유사하다. 무엇인가를 구매하기 전에 현금이 묶인다. 이 돈을 은행에 넣어 이자를 받는 것만으로도 이익이다. 그러나 일부 상품권은 판매 대금을 예치·운용하지 않고 발행한 회사의 운영자금으로 흘러 들어가기도 한다. 이때 티메프 사태와 같이 선불금으로 조성한 현금 흐름이 끊기면 곧바로 상품권 생태계 전반이 위기에 처한다.
유독 해피머니 상품권 구매자의 피해가 큰 것은 이 상품권이 오롯이 ‘회사의 신용’에 근거해 발행됐기 때문이다. 해피머니의 경우 선불업 미등록업체인 데다 지급보증보험에도 가입되어 있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상품권 약관에 ‘이 상품권은 별도의 지급보증 및 피해보상보험계약 없이 발행자의 신용으로 발행되었습니다’라는 내용이 기재되어 있을 정도다. 회사의 신용과 신규 매출(상품권 판매) 금액에 의존하는 시스템이다 보니, 티메프 사태 직후 각종 제휴처의 이른바 ‘손절’이 빨랐다. 외식 등 각종 서비스 업체들이 해피머니 상품권 결제를 중단하면서 사실상 상품권으로 기능할 수 없게 되어 악순환으로 이어졌다.
상품권은 미사용 금액에 대한 환불 문제가 크다. 티메프 사태 이후 일반 상품에 대한 환불은 차츰 이뤄졌으나, 규모가 큰 여행 상품과 구조가 복잡한 상품권에 대해서는 8월15일 현재까지 환불이 지지부진하다. 전자지급결제대행업체(PG사)는 여행과 상품권에 대해선 환불 책임이 없다며 완강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동병상련이지만 여행 상품 구매자와 상품권 구매자들 간에는 묘한 거리감이 발생한다. 상대적으로 금액이 큰 여행 상품 구매자들은 한국소비자원을 통한 집단분쟁조정 신청이 가능하다. 한국소비자원에 따르면 8월10일까지 총 9028명이 여행 상품 관련 집단조정을 신청한 상태다.
공정거래위원회가 약관 조사한다지만
반면 상품권 구매자들은 1인당 피해 금액이 상대적으로 적지만, 구제 방안이 마땅치 않다. 해피머니 문화상품권을 운영하는 해피머니아이엔씨 측은 7월25일 공지를 통해 온라인 환불 접수를 받겠다고 했으나, 7월31일 티몬과 위메프로부터 미지급 대금을 받기 어려워 환불 처리가 어렵다는 입장을 발표해 사실상 자력으로는 환불이 불가능함을 인정했다. 해피머니 측은 8월8일 “환불 절차 및 서비스 재개 등 향후 처리방안에 대해서는 관계 기관 및 전문가 지침에 따라 처리하고자 한다”라고 밝힌 이후 아직 환불에 관한 명확한 입장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약 1000명이 모인 ‘해피머니 피해자 오픈채팅방’에도 8월15일 현재까지 환불 경험담은 찾아보기 어렵다.
상품권 제도의 근간을 다시 고민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사용자 입장에서는 상품권을 온라인에서 사용하기 위해 전환한 ‘포인트’와 네이버페이머니 같은 ‘선불충전금’을 같은 것이라 여기는 경향이 강하다. 이름만 다를 뿐 ‘현금처럼 쓰는 사이버 머니’라고 인식한다. 그러나 해피머니 사태처럼 같은 상품권이라도 ‘지류로 보관 중인지’ ‘해피캐시(해피머니 사이트 포인트)로 전환했는지’ ‘(수수료를 지급하고) 네이버페이나 페이코 포인트로 전환했는지’에 따라 피해 상황은 제각기 달라졌다. 가장 답답한 쪽은 해피머니 자체 온라인 포인트인 ‘해피캐시’로 전환한 이들이다. 상품권 핀 코드를 해피머니 사이트에 입력한 것만으로도 이 상품권을 ‘사용한 것’으로 여기기 때문이다.
티메프 사태 직후 상품권에 대한 불신이 커지면서 각종 ‘쿠폰’이 연쇄적으로 막히는 사태도 불거졌다. 대기업 계열사가 운영하는 한 온라인 쿠폰 업체는 8월2일부터 스타벅스 쿠폰 판매를 중단한다고 공지해 논란이 되었다. ‘판매사의 요청’에 따랐다는 것인데, 개별 기업의 불안감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일주일 후 이 사이트의 스타벅스 쿠폰 판매는 재개되었지만, 각종 쿠폰과 포인트, 선불충전금에 대한 시장 전체의 불신이 확대되고 있다는 것을 드러내는 장면이었다.
이커머스 현금 흐름의 또 다른 뇌관은 매출채권 분야에서도 불거지고 있다. 이른바 ‘매출채권 P2P 대출’에서 상환 지연 사태가 발생한 것이다. 코스콤(KOSCOM) 사내 벤처로 출발한 온라인투자연계 대출(P2P 대출) 업체 ‘크로스파이낸스’는 최근 600억원 규모의 선정산 대출 상환 지연 사태를 맞닥뜨렸다.
선정산 대출이란 카드 결제 등으로 제품을 판매한 소상공인이 정산 대금을 받기 전에 대출을 받고, 해당 정산금은 대출기관이 결제대행사(PG사)로부터 나중에 받는 구조다. 크로스파이낸스는 이러한 선정산 대출에 일반 투자자들의 자금을 모아 P2P 대출 형태로 ‘카드 매출 선정산 투자 상품’을 판매해왔다. 통상 카드 매출은 대형 카드 회사가 망하지 않는 한 돈을 지급받지 못할 가능성이 낮기 때문에, 구조적으로 안전하게 설계된 투자 상품이라고 크로스파이낸스 측은 설명해왔다. 문제는 돌려받아야 할 돈, 즉 카드 결제 판매 정산금을 2차 결제대행사(PG사)인 루멘페이먼츠로부터 돌려받지 못하면서 발생했다.
신용카드 결제 대금은 카드회사에서 소상공인에게 곧바로 지급되지 않는다. 2차·3차 업체 등을 거쳐 최종 정산이 이뤄진다. 크로스파이낸스 측 설명에 따르면, 이번 미정산 사태는 카드사와 소상공인 사이에 끼어 있는 PG사 루멘페이먼츠의 지불 중단으로 발발했다. 소상공인은 이미 크로스파이낸스에게 선정산 대출을 받은 상태이기 때문에 피해는 고스란히 크로스파이낸스 P2P 상품에 투자한 일반 투자자 몫으로 돌아갈 위기에 처했다.
티메프 사태가 드러낸 각종 정산 이슈는 관리 주체가 명확하지 못해 해결이 쉽지 않다. 8월14일, 공정거래위원회가 상품권·e쿠폰 발행사의 약관을 조사해 소비자 권리 침해 여부를 확인하겠다고 밝혔지만, 여전히 상품권 분야는 ‘상행위의 일종’이라는 이유로 금융 당국의 감시망에서 동떨어져 있다. 상품권 시장과 이커머스 전반에 걸친 결제 프로세스에 대한 불안은 한동안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김동인 기자 astoria@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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