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자 늘고 인력 줄고' 응급실 의사가 아프다…"약 달고 살아"
(서울=연합뉴스) 성서호 기자 = 26일 오후 1시 40분 고려대학교 안암병원 응급실 앞에는 이 병원의 구급차 외에 이제 막 환자를 싣고 도착한 듯한 사설 구급차 두 대가 아직 사이렌을 켠 채 서 있었다.
응급실 내 구급차 전용 공간의 사정은 모르겠지만, 응급실 하면 떠오르는 혼란을 당장 느낄 수는 없었다.
보행환자 전용 입구를 통해 들어가서 본 대기실 역시 비교적 한산했다.
조금 전 환자 분류소에서 지팡이를 짚은 환자를 데리고 나온 보호자는 스마트폰을 열어 "(의료진이) 중증 같지는 않다면서 근처 병원으로 가보라고 하더라"며 상대에게 결과를 전했다.
중증 환자가 쏟아지지는 않았는지 같은 시각 응급실 상황판의 혼잡도 그래프도 '보통'을 가리키고 있었다.
그렇지만 최근의 응급실 상황을 보면 '보통'의 뜻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에는 무리가 있다는 게 현장의 목소리다.
올해 2월 의대 입학정원 증원 발표 후 전공의들이 모두 떠난 것은 이곳도 마찬가지였다.
고대안암병원은 서울의료원과 함께 서울 동북권을 담당하는 권역응급의료센터다.
응급의료법에 따르면 권역응급의료센터는 정부가 상급종합병원 또는 300병상을 초과하는 종합병원 중에서 지정하는 병원이다.
권역응급의료센터장을 맡는 김수진 고대안암병원 응급의학과 교수는 "이곳은 재난에 대비하거나 중증 환자의 최종 치료를 담당하는 곳"이라며 "다른 곳에서는 이제 (진료) 하는 데가 없으니까 최선을 다해 늘어난 중증 환자를 보고 있다"고 상황을 전했다.
상황판에서 '보통'이라는 표시를 봤다고 하자 "시스템상 그렇게 보이는 것일 뿐, 지금 중증 환자를 볼 수 있는 의료 인력이 없다"고 고개를 저었다.
대화하기 위해 그가 안내한 책상 위 컴퓨터 모니터에는 '인턴', '전공의'라는 스티커가 붙어 있었다.
이제는 주인이 없는 자리에서 그는 "요새 이 책상은 비어있다"며 "요즘 응급실 얘기가 (언론에) 많이 나오는데, 답이 없어서 답답하다"고 했다.
김 교수는 "정부에서는 진료 축소하는 정도고, 응급 병상들이 대체로 유지돼 응급실에 큰 문제가 없다고 하는데, 현실은 그렇지 않다"며 통계에 함정이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나마 우리 병원은 어떻게든 버티고 있지만, (한 단계 아래인) 지역응급의료센터로 지정된 병원들은 원래 외래 진료하던 환자가 응급 상황에 빠져도 못 받는다고 하더라"고 덧붙였다.
고대안암병원 권역응급의료센터는 현재 전문의 8명으로 돌아간다. 같은 급의 센터 중 이정도 전문의 인력으로 24시간 환자를 돌보는 곳은 거의 없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원래는 전공의를 포함해 4∼5명의 의사가 함께 근무하며 이견 조율 등을 통해 최선의 진료 방법을 찾는데, 지금은 한 듀티(근무)마다 전문의 1명만 근무하고 있다.
인턴 등 전공의들이 그만두고, 전문의도 사직하면서 인력이 급격히 부족해졌다.
이 때문에 29일 예정된 보건의료노조 총파업과 다음 달 추석 연휴도 그에게는 걱정거리다.
보건의료노조 파업으로 간호사 인력마저 빠져나갈 수 있는 데다 연휴에는 경증환자들이 급증하기 때문이다.
김 교수는 "연휴에는 1∼2차 병원도, 요양병원도 안 여니까 환자들이 아파도 갈 곳이 없는데, 지금 상황에서는 그들을 제대로 수용하지 못한다"며 "경증 환자들에게 번호표 뽑게 하고 기다리게 한 뒤 일부를 차례로 받을 경우 나중에 중증 환자가 오면 경증 환자 진료가 늦어지고, 나중에 또 민원 등으로 이어진다"고 말했다.
119구급차 타지 말고 자기 발로 직접 가면 의사가 쫓아내지 못한다는 내용으로 온라인에 퍼진 '응급실 이용 꿀팁'을 두고는 "그런 걸 보면 교수 일을 하고 싶지 않다"며 "지금 인력이 부족해서 안 먹던 혈압약도 먹고, 눈 실핏줄이 터졌다"고 토로했다.
그는 또 "동료들도 수면장애는 기본적으로 있고, 불안 장애나 우울증까지 생겨 항우울제와 수면제를 기본으로 복용하고 있다"며 "같이 버텨주고 있어서 고마울 뿐"이라고 했다.
현장에서는 전공의들이 당장 내년 3월 복귀한다고 해도 응급의학은 여전히 문제가 계속될 것으로 보고 있다.
김 교수는 "응급의학계에서는 앞으로 전공의가 아무도 안 들어올 것으로 본다"며 "의대 교수라는 직업의 위상도 떨어졌고, 응급의학 의사로서 자긍심도 없어진 지 오래라서 전공의들에게 버티라고 할 수도 없다"고 안타까워했다.
의대 정원 증원을 두고는 "지금대로면 학생 2천명 더 뽑아봤자 감기 환자 보는 의사만 늘어날 것"이라며 "(이미 내년도 정원은 정해졌으니) 최소한 2026년 정원이라도 새로운 팀을 꾸려서 다시 논의하고, 직접적인 보상도 늘려줘야 한다"고 했다.
soho@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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