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딥테크 점프업] 국내 첫 양자컴퓨터, 올해 말 출시…양자 산업 생태계 만든다

이병철 기자 2024. 8. 27.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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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현철 노르마 대표 인터뷰
국내 첫 양자컴퓨터 ‘큐리온’에 자체 제작 QPU 탑재
“이미 해외선 양자컴퓨터 활용 산업 발전 중”
“반도체 기술 강한 한국, 양자기술 산업 중심지 될 것”

양자컴퓨터는 미시세계에 나타나는 양자역학 현상을 이용해 계산을 하는 장치다. 양자역학은 입자가 한 시점에 여기도 있고 저기도 있을 수 있다고 본다. 컴퓨터는 전자가 있고 없음에 따라 0과 1로 나눈 비트로 정보를 처리한다. 반면 양자컴퓨터의 단위는 0과 1 상태가 중첩된 큐비트(qubit)이다. 이런 특성을 이용해 양자컴퓨터는 동시에 여러 연산을 처리해 슈퍼컴퓨터가 수백년 걸릴 암호 계산을 수초에 풀 수 있다. 다양한 물질이 섞여 있는 용액 내부에서 일어나는 화학 반응을 예측하거나 경제학에서 주가를 예측하는 정확도도 크게 높일 수 있다.

양자컴퓨터는 이렇게 뛰어난 연산 능력으로 다양한 물질이 섞여 있는 용액 내부에서 일어나는 화학 반응을 예측하거나 경제학에서 주가를 예측하는 정확도도 크게 높일 수 있다. 과학기술 선도국들은 양자컴퓨터의 가능성을 일찌감치 알아보고 상용화를 위한 연구에 나서고 있다. 하지만 한국은 양자컴퓨터 산업에서 다소 뒤쳐져 있다. 양자컴퓨터를 자체 개발한 사례는 한국표준과학연구원이 유일하다. 다른 곳은 해외 제품을 들여오는 데 그쳤다.

국내에서 처음으로 국산 양자컴퓨 개발을 공언한 기업이 있다. 2011년 정보보안기업으로 시작한 노르마는 최근 양자컴퓨터용 운영체제(OS)와 설류션 같은 소프트웨어 개발로 사업을 확장해왔다. 이어 자신들이 만든 양자컴퓨터 소프트웨어를 구동할 수 있는 실제 컴퓨터 개발까지 나섰다. 정현철 노르마 대표는 지난 22일 인터뷰에서 “올해 말 노르마가 국내 최초로 양자컴퓨터를 생산하는 기업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정현철 노르마 대표는 지난 22일 서울 성수 본사에서 조선비즈와 만나 "올해 말 국내 첫 산업용 양자컴퓨터 '큐리온'을 출시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큐리온에 들어가는 양자처리장치(QPU)는 노르마가 직접 개발했다./이병철 기자

정 대표는 고려대에서 컴퓨터공학을 전공해 박사학위까지 받았다. 이후 양자역학에 관심을 가지면서 박사후연구원으로 공학과 양자역학의 공통 분야인 양자컴퓨터, 양자보안 연구를 했다. 노르마의 사업 분야가 양자컴퓨터로 넓어진 이유도 그의 개인적인 관심 덕분이었다. 그는 2014년 정보보안업체인 노르마에 대표로 합류했다.

하지만 양자기술을 상용화하는 건 다른 문제였다. 국내에는 아직 양자 산업 생태계가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상태이기 때문이다. 섣부른 사업 확장은 기회가 아닌 위험을 불러올 수 있다. 정 대표는 “노르마에서 개발한 양자보안 설루션을 외부에 소개할 기회가 있었는데, 직접 양자컴퓨터로 해킹 시연을 해주길 원하는 기업이 있었다”며 “아직 국내에 양자컴퓨터 산업이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지만 차세대 기술로 관심을 가진 곳이 많다는 걸을 알았다”고 말했다.

노르마는 초기에 양자컴퓨터 소프트웨어 개발에 주력했다. 이후에는 실제 고객 기업들이 원하는 소프트웨어를 양자컴퓨터 환경에서 구현하는 서비스를 시작했다. 금융사들이 신용을 평가할 때는 다양한 지표를 함께 고려해야 하는 만큼 기존 컴퓨터 기술로는 정확한 평가를 하기에 한계가 있다.

정 대표는 “어떤 기업에 양자컴퓨터가 필요할까 고민하던 중 핀테크와 바이오, 화학 기업이 관심을 갖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며 “특히 금융과 정보기술(IT)이 융합된 핀테크 분야에서는 신용 평가, 주가 예측에 활용하고 있으며, 미국 투자은행 JP모건도 이미 양자컴퓨터를 사용한다고 알고 있다”고 설명했다.

정현철 노르마 대표가 양자컴퓨터용 소프트웨어의 작동 장면을 보여주고 있다. 이 화면은 양자컴퓨터를 모방하는 시뮬레이터로 동작한다. 올해 말 양자컴퓨터를 출시하면 실제 양자컴퓨터 환경에서도 사용할 수 있다./이병철 기자

노르마는 이미 해외 기업, 연구기관들과 함께 그들에게 필요한 양자컴퓨터 소프트웨어를 개발하고 있다. 주요 고객사는 기업들과 영국 에든버러대, 싱가포르국립대(SIT), 핀란드 연구기관인 VTT, 사우디아라비아 킹파드석유광물대 같은 연구기관이다. 그는 “기업들과는 프로젝트가 진행 중이라 보안 관계상 공개는 어렵다”면서도 “주로 해외 기업들과 협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양자컴퓨터 소프트웨어, 서비스에 이어 노르마는 올해 말 출시를 목표로 국내 최초의 산업용 양자컴퓨터도 개발 중이다. 노르마의 양자컴퓨터 ‘큐리온(Qrion)’은 초전도 방식의 양자연산장치(QPU)가 적용된다. QPU는 기존 컴퓨터의 중앙처리장치(CPU)처럼 연산을 담당하는 부품이다. 큐리온의 성능은 5큐비트 정도로 53큐비트 성능의 구글 시커모어 같은 모델에 비해서는 다소 떨어지지만, 국내 기업이 만든 최초의 제품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큐비트는 초전도, 이온트랩, 광자를 이용해 만들 수 있는데, 현재까지 상용화된 양자컴퓨터는 대부분 전류가 저항 없이 흐르는 초전도 방식을 사용하고 있다. 가장 많은 연구가 축적돼 있고, 20큐비트 이하를 구현하는 데 필요한 기술은 대부분 공개돼 있기 때문이다. 정 대표는 “이전에도 국내에서 양자컴퓨터가 개발된 적은 있으나, 컴퓨터로서 동작하고 프로그래밍이 가능한 제품은 큐리온이 최초가 될 것”이라며 “QPU는 노르마가 자체 개발한 제품을 사용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노르마가 국내 최초의 양자컴퓨터를 개발할 수 있었던 데에는 해외 기업, 연구기관들과의 네트워크가 도움됐다. 노르마는 해외 양자 기술 기업인 IQM, 취리히 인스트루먼트, 퀀트웨어와 협력 체계를 구축해둔 상태다. 큐리온의 핵심 부품인 QPU는 노르마가 자체 개발했으나, 그외 주요 부품은 기존 양자 기업들의 제품을 사용해 개발 기간이 1년 밖에 걸리지 않았다고 했다.

노르마가 해외 기업들의 관심을 받을 수 있던 데에는 한국이 가진 기술과 브랜드가 큰 도움이 됐다고 정 대표는 설명했다. 그는 “양자컴퓨터 개발 초기에는 초전도 물질이 가장 중요했으나, 양자 산업 생태계가 만들어지려면 반도체 기술을 통한 최적화가 필요하다”며 “관련 산업에서 인프라를 잘 갖춘 한국과 미국, 대만이 앞으로도 양자컴퓨터의 중심이 될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반도체 강국은 양자컴퓨터 개발의 최적지이면서도 양자컴퓨터가 가장 필요한 곳이기도 하다. 기존 반도체 방식은 미세 공정과 최적화에서 한계에 부딪혔는데, 다음 단계로 나아가려면 양자기술을 사용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정 대표는 “이미 해외에서는 양자 산업의 저변이 넓어지고 있지만 한국은 그에 비하면 아직 양자 산업에 대한 투자가 전혀 이뤄지지 않는 수준”이라며 “지금이라도 양자기술 산업에 적극적인 투자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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