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근마켓 살거면 바이오도 같이…” 요즘 패키지딜 넘쳐난다는 VC업계 속사정
펀드 만기에 청산 고육지책
좋은 주식 가치 낮추고, 나쁜 주식 높이고
스타트업 몸값 왜곡 부추겨
이 기사는 2024년 8월 26일 11시 11분 조선비즈 머니무브(MM) 사이트에 표출됐습니다.
비상장 인기 주식에 비인기 주식을 끼워 파는 이른바 ‘패키지딜’이 벤처캐피털(VC)들의 투자 자산 처분 전략으로 떠올랐다. 벤처펀드 청산을 앞두고 유동성이 없는 주식까지 모두 처분해야 하는 데 따른 고육지책이다.
문제는 인기 주식과 비인기 주식을 함께 넘기는 과정에서 인기 주식 가치는 은근슬쩍 낮추고, 비인기 주식 몸값은 올리는 일이 알음알음 벌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패키지딜로 인해 스타트업 몸값 고무줄 조정이 이어지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26일 VC업계에 따르면 올해 벤처투자 시장에 나온 스타트업 구주 매물 매매건 대부분이 패키지딜이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A 스타트업 구주 인수를 위해선 B 스타트업 구주를 함께 사야 하는 식으로, A 주식으로는 소부장 스타트업, B 주식으로는 신약개발 바이오벤처가 주로 이름을 올리고 있다.
◇ “인기 주식 사려면 비인기 주식도 사야”
최근에는 중고 직거래 플랫폼 ‘당근’을 운영하는 당근마켓 구주와 신약개발 바이오벤처 구주가 패키지딜로 거래됐다. 펀드 만기를 앞둔 국내 한 VC의 구주 매각 사례로, 총 매매대금을 기준으로 당근마켓 주식 70%에 바이오벤처 주식 30%를 함께 사는 조건을 내걸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VC업계 한 관계자는 “과거에도 인기 주식에 원매자가 없는 비인기 주식을 끼워 파는 경우가 있었지만, 최근 그 사례가 늘었다”면서 “소부장 스타트업 구주나 당근마켓 구주 외에도 이익을 내거나 상장 가능성이 큰 벤처기업 구주를 사려면 비인기 주식을 함께 사야 한다”고 말했다.
패키지딜의 증가는 고금리로 벤처투자 시장이 위축된 가운데 올해 펀드 만기 물량마저 대거 겹쳤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벤처펀드 출자자(LP)들이 주식을 받아 가지는 않는 만큼 청산 전 투자 자산은 모두 처분해야 하는데, 시장 자체가 위축되다 보니 끼워팔기가 늘어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올해 펀드 만기 물량이 많이 늘어난 것은 2016년 벤처펀드 조성액이 3조원대로 급증했던 영향이 크다. 특히 VC는 일반적으로 벤처펀드 존속 기간을 8년으로 설정한다. 중소벤처기업부에 따르면 올해 만기 도래하는 벤처펀드는 331개인 것으로 집계됐다. 전년 220개 대비 증가했다.
◇ 패키지딜 주목적 세컨더리펀드까지 등장
상황이 이렇다 보니 패키지딜을 주목적으로 하는 세컨더리펀드마저 등장했다. DSC인베스트먼트가 3000억원 규모로 조성한 ‘디에스씨세컨더리패키지인수펀드1호’가 대표적이다. 디에스씨세컨더리패키지인수펀드1호는 한 펀드에서 2개 이상의 스타트업 구주를 인수해야 하는 게 핵심이다.
일각에선 패키지딜이 스타트업 몸값의 시장 왜곡을 부추긴다는 지적을 내놓고 있다. VC들이 단순히 A 스타트업 주식을 팔면서 비인기 B 스타트업 주식을 끼워 파는 데 그치지 않고 비인기 B 주식을 처분하기 위해 A 스타트업 구주를 대폭 할인하는 고무줄 조정을 남발하고 있어서다.
VC업계 한 관계자는 “원매자가 없는 투자 자산을 처분해야 하다 보니 인기 있는 주식의 구주 가격을 내릴 수밖에 없다”면서 “예컨대 총 매매대금이 100억원이라면 70억원어치는 인기 주식의 가치를 낮추고, 30억원어치의 비인기 주식 가치는 부풀리는 방식의 매매가 많다”고 설명했다.
고무줄식 몸값 조정의 피해는 고스란히 스타트업이 지는 모양새다. 회사 구주 가격이 낮게 찍히면 신주 증자 가격에도 할인된 구주 가격이 반영되는 탓이다. 아울러 패키지딜로 부풀려 매각된 스타트업은 구주 가격 반영 시 고평가 우려로 신규 투자유치 자체가 어려울 수도 있다.
◇ 펀드 만기가 패키지딜 부추겨… “연장 쉬워야”
시장에선 패키지딜을 줄이기 위해선 벤처펀드 출자자들의 청산 기준 완화가 필요하다는 지적을 내놓고 있다. 벤처펀드 대형 출자 기관 대부분은 현재 만기 연장 원칙적 불가 기준을 내세우고 있는데, 만기 전 청산 요구가 결국 헐값 처분 방식인 패키지딜을 부추기고 있다는 판단에서다.
증권업계 관계자는 “패키지딜로 처분되는 바이오주 중에선 성장 가능성이 큰 곳이 분명히 있을 것”이라면서 “가령 500억원인 펀드에서 500억원만큼의 배분은 진행했다면, 남은 부분에 대해선 운용사가 판단해 만기를 더 길게 가져갈 수 있게 해주는 유연성이 필요한 때”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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