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VDC는 직류라 전자파 없어···"근거 없는 공포팔이만"
◆ '변전소 갈등' 파장 확산
'전자파 있어도 무해' 검증됐지만
정치권 부추기고 주민 반발 여전
송전선로 확충 지연 손실 눈덩이
광우병·日오염수 등 줄잇는 괴담
공포심 자극···사회적 비용 커져
“변전소가 증설되면 전자파 때문에 아이가 코피가 터지고 죽을 수도 있다고 걱정하셔서 놀랐습니다. 변전소의 전자파 문제는 학술적으로 이미 검증이 다 끝난 사안이거든요.”
경기 하남시의 동서울변전소 사업에 정통한 전력업계의 한 관계자는 주변 지역 주민들의 분위기를 이렇게 전했다. 한국전력은 하남시 변전소 인근 주민 대상으로 설명회를 7번 개최했다. 하지만 주민들의 불안감은 여전하다. 정치권에서 이를 부추기는 측면도 있다. 더불어민주당 추미애 국회의원(하남 갑)은 동서울변전소 사업 불허에 “시민의 힘으로 시민의 건강권을 지켜낸 승리”라고 밝혔다. 변전소 갈등을 건강 문제로 끌어온 셈이다. 하남시 역시 사업 취소의 이유로 전자파를 우려하는 주민 반발과 변전소가 하남시민의 건강한 생활환경 훼손을 꼽았다.
전문가들은 한목소리로 한전이 증설하려는 시설에 인체에 유해한 전자파가 발생한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라고 입을 모으고 있다. 한전이 동서울변전소에 증설하려고 하는 초고압직류송전(HVDC) 변환 설비는 직류로 끌어온 전기를 교류로 변환해 가정과 기업에 공급하는 시설이다. 경북 울진에 위치한 (신)한울 원자력 발전소 8기와 강원 석탄화력발전소 8기에서 발전하는 17GW의 전력 중 8GW를 수도권으로 보내는 역할을 한다.
한전은 현재 HVDC 송전선로가 지나는 경과지의 90%에서 주민 동의를 받았다. 그런데 정작 수도권에 전력을 공급하기 위한 마지막 관문에서 발목이 잡히고 말았다. 하남시가 이달 21일 전자파 유해성을 우려하는 주민들의 의견을 받아들여 한전의 동서울변전소 옥내화와 HVDC 변환소 증설 인허가를 불허하면서다.
문제는 한전이 증설하고자 하는 시설에서 인체에 유해한 전자파가 발생한다는 주장에 과학적 근거가 없다는 사실이다. HVDC 변환설비는 직류로 끌어온 전기를 교류로 변환해 가정과 기업 등 수요처에 공급하는 시설이다. 교류 전기는 플러스극과 마이너스극이 초당 60번 주기로 변화하면서 흘러 전자파가 발생하지만 직류는 ‘+극’과 ‘-극’이 고정돼 한 방향으로 흐르는 전기이기 때문에 전자파가 발생하지 않는다.
유승훈 서울과학기술대 창의융합대학장은 “동서울변전소의 HVDC 변환 시설은 직류로 전기를 보내는 것이기 때문에 전자파가 발생하지 않는다”면서 “특히 변전소는 양재동 한전 아트센터가 위치한 곳과 여의도 더현대서 백화점 바로 옆에도 입지해 있는 만큼 전자파는 막연한 두려움에 불과할 뿐 이미 우리 실생활에 가까이 들어와 있는 시설”이라고 설명했다.
한전도 하남시의 주장에 대해 조목조목 반박했다. 한전은 사업 추진 과정에서 전자파 발생으로 인한 주민 피해를 고려하지 않았다는 하남시의 주장에 대해 “전자파는 거리의 제곱에 반비례해 감소하기 때문에 100m 멀어지면 1만 분의 1로 감소해 주민 거주 시설에서 전자파 우려가 낮다”며 “동서울변전소에서 최인접한 아파트 정문에서 측정한 전자파 값은 0.02마이크로테슬라(μT)로 일반적인 편의점 냉장고 측정치(0.12μT)보다 낮다”고 설명했다. 실제 한전이 전력연구원과 함께 올해 7월 측정한 결과에 따르면 변전소 인근에 위치한 아파트 안쪽 지역에서 측정한 값도 0.02μT로 확인됐다. 시설을 옥내화할 경우 외부에서 측정되는 전자파는 옥외 시설보다 절반 이상 낮아진다.
광우병과 후쿠시마 오염수 등 정치와 공포심이 개입하면서 과학적 근거 없이 사회적 갈등이 발생하는 사례가 반복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일본이 지난해 8월 원전 오염수를 방류한 시기를 전후해 ‘세슘 우럭’ 등 괴담이 돌며 수산물 소비 위축에 대한 우려가 커진 바 있다. 수산업계는 수산물 소비 급감을 우려하면서 정부에 직접 지원 등 적극적인 대책 마련을 요구하기도 했다.
그러나 수협 수산물계통판매통계에 따르면 올해 6월까지 수산물 거래량은 80만 6962톤으로 지난해 1년 거래량의 54.4% 수준이었다. 2008년 미국산 소고기 광우병 파동 당시에는 ‘미국산 소고기를 먹으면 광우병에 걸린다’는 괴담이 확산했으며 2016년 경북 성주 사드 배치 당시에는 ‘사드에서 나온 전자파에 참외가 오염된다’는 이야기가 퍼지기도 했다.
하남시의 결정에 정부와 한전의 수도권 전력공급 확대 계획이 미뤄지며 불필요한 사회적 비용을 지불하게 됐다. 한전은 약 7000억 원을 들여 2026년 6월까지 사업을 완료할 예정이었다. HVDC 변환소를 짓지 못하면 막대한 재원을 들여 마련한 송전선로가 제 기능을 할 수 없다. 한전이 하남시를 상대로 법적 대응에 나서겠다고 밝혔지만 법적 다툼에서 이기더라도 송전선로 건설은 당초 계획보다 상당 기간 지연된다. 실제 2014년 북당진 변환소 건설 당시 한전·당진시 소송은 대법원 판결까지 3년이 걸렸다.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에 전력이 제때 공급되지 못할 경우 손실은 천문학적으로 늘어날 수 있다. 손양훈 인천대 경제학과 교수는 “(변전소는) 조금만 떨어져 있어도 완전히 무해하다고 하고 그것이 검증됐는데 (정치권이) 극도로 과장하거나 왜곡해서 얘기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생각한다”고 지적했다.
세종=박신원 기자 shin@sedaily.comCopyright © 서울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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