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여당 정체성" 되물은 전공의 대표…한동훈, 용산에 醫政타협 설득 개시
"자유의 가치, 건강보험 지속성, 의료전달체계 문제점, 보수 역할" 화두 올려
"韓대표 나서야"…실제 고위당정서 내후년 의대증원 보류 요청, 용산은 거부
용산 대통령실과 보건복지부의 의대 입학정원(기존 3058명) 대폭 증원을 위시한 의료패키지 정책 강행에 반발, 사직한 전공의들의 대표가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와 여당의 정체성은 무엇이냐"고 물었다. 의료계를 겨냥한 관제(官制)여론전과 공권력 압박이 거듭돼온 가운데 보수 정체성에 입각한 대(對)정부 대응을 촉구한 셈이다. 이 가운데 여당에선 2026년도 의대 정원 추가 증원 보류를 제안했지만 대통령실이 거부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앞서 박단(34) 대한전공의협의회(대전협) 비상대책위원장은 26일 오후 페이스북을 통해 '의사 선배'이자 국민의힘 상임고문단 회장인 정의화 전 국회의장을 만나고 왔다고 전하며 이같이 말했다. 정의화 전 의장은 지난 19일 한동훈 대표, 추경호 원내대표, 김상훈 정책위의장 등 여당 지도부와 상임고문단 간 오찬 회동에서 "의정 대란이 의료 붕괴로 이어지지 않을까 걱정된다"며 당정 TF(태스크포스)를 만들어 대응할 것을 당부한 바 있다.
박단 비대위원장은 "정 전 의장은 신경외과 전문의이자 15~19대 5선 국회의원이셨다"며 "며칠 전 한 대표를 만나 현 의료 사태에 대한 우려를 전달하신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정 전 의장이 오찬에서 했던 "국민들이 대혼란에 빠지지 않을까 걱정된다. 지난 수년 동안에 우리나라 의료 생태계는 점점 붕괴해 왔다. 20년 전 의료보험을 하나로 통합해 건강보험으로 만든 이 제도에 근본적인 근원적인 문제가 있다"는 발언도 재조명했다.
박 위원장은 "(정 전 의장과) 자유의 가치, 의사의 사명감과 긍지, 건강보험 지속가능성, 의료전달체계의 문제점, 의료의 사회화, 국민의 건강, 보수정당의 역할과 한계 등 3시간 동안 다채로운 이야기를 나눴다"고 전했다. 그는 지난 20일 한 대표와 비공개로 만나 1시간30분 가량 대화한 것으로 닷새 뒤(25일) 언론에 알려졌고, 이에 '다소 유감'이라면서도 "결국 한 대표(의 나서겠다는) 결심과 의지 표명이라 생각한다"고 반응한 바 있다.
박 위원장은 지난 23일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서 필수·응급의료 현장 위기에 "한 대표도 이 사태에 나서야 한다"고 발언했다. 그는 이날 "보수의 가치는 무엇인가. '개인의 자유'를 지지하고, '점진적인 변화'를 주장하며, '정부의 역할은 최소화'하는 게 보수의 지향 아니었나. 지난 총선에서 정부 여당이 국민들에게 외면받은 이유는 무엇일까. 그래서 한 대표와 여당의 정체성은 무엇인가"라고 국민의힘에 재차 압박했다.
대전협은 △의대 증원계획 및 필수의료정책패키지 전면 백지화 △과학적 의사 수급 추계 기구 설치 △수련병원의 전문의 인력 채용 확대 △불가항력적 의료사고에 대한 법적 부담 완화 △전공의 수련환경 개선 △전공의 대상 부당한 명령 전면 철회 △업무개시명령 전면 폐지 등 7대 요구사항을 제시해왔다. 한편 한 대표는 26일 국회 기자들과 차담회에서 의료 현안 관련 "되돌릴 수 없는 지점도 있다"면서도 "여러 소통을 하고 있다"며 물밑 역할을 시사했다.
실제로 27일 여권에 따르면 한 대표는 지난 25일 여당·정부·대통령실의 고위당정협의회에서 '2025학년도 의대 정원 최대 1509명(2000명에서 축소) 확대하기로 한 정부 결정은 유지하되, 2026학년도 의대 정원 증원은 재검토하자'는 입장을 전했다. 한 대표가 의정 갈등 해결을 위해 당 안팎에서 청취한 의견을 반영해 건의했지만, 당 관계자는 "대통령실에선 26일 오전에 제안을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의사를 전해 온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최근 충북대병원과 세종충남대병원 응급실 일시 셧다운, 아주대병원 응급실 전문의 절반 사표 등으로 추석 연휴 앞 의료대란 우려가 고조되고 있다. 그러나 대통령실 고위관계자는 26일 기자들과 만나 "일부 응급실에서 단축운영사례, 온전하게 운영되지 못하는 사례가 발생하고 있지만 그런 공백이 최소화되도록 정부가 다각도로 노력 중"이라며 "현장 실체보다 과장된 내용들이 과도하게 나와 있고 특정 사례가 부각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관계자는 "의료 인력 수급 문제는 기본적으로 정부의 책임"이라며 "국회에서 법으로 결정할 문제도 아니고, 의료계와 협상해서 아무런 근거 없이 타협을 통해 결정할 문제도 아니고, 더군다나 의료계가 결정할 사안도 아니다"고 '결정권'의 문제로 치부하기도 했다. 과학적 추계 부재 비판도 이어지고 있지만, 의대 정원을 해마다 2000명씩 늘려 2035년까지 의사면허자를 1만명 확충한단 방침을 재확인한 것으로도 풀이된다.
의료계에선 임현택 대한의사협회 회장이 26일 "'일부 공무원들과 폴리페서들'이 전 국민을 대상으로 벌인 '의사 악마화'와 국민을 기만한 '거짓 선동'으로, 전공의들과 학생들이 진료현장과 교육현장에서 떠난지 벌써 6개월을 넘었다"며 "현재 대한민국 의료는 철저히 사망 직전으로, 국민생명은 속수무책으로 위협받고 있다"면서 '단식 투쟁'을 선언했다. 그러면서 윤석열 대통령과 국회에 "의료대란을 끝내겠단 결단을 내려달라"고 호소했다.
한기호기자 hkh89@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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