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픈이노베이션', 혁신 신약 산실되다
한미약품-KAIST-연세대 등의 대사이상 지방간 질환 치료제 개발도 주목
[아이뉴스24 정승필 기자] 유한양행의 폐암 신약 '렉라자(성분명 레이저티닙)' 병용요법이 미국식품의약국(FDA) 허가를 받을 수 있었던 것은 회사의 오픈이노베이션(개방형 혁신) 전략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오픈이노베이션이란 기업이 외부와 협력하고 아이디어나 기술, 자원 등을 공유함으로써 혁신을 추구하는 전략이다. 이러한 접근법에서 산학연 공동연구를 통한 오픈이노베이션 전략이 주목받고 있다.
27일 제약·바이오 업계에 따르면 유한양행이 자체 개발한 폐암 신약 '렉라자(성분명 레이저티닙)'의 병용요법이 최근 미국식품의약국(FDA)으로부터 최종 허가를 받았다. 이는 국산 항암제가 해외로 기술 이전돼 허가까지 이어진 첫 사례로, 업계에서는 한국 제약산업의 가능성이 열렸다는 평가가 나온다.
유한양행은 지난 23일 'FDA 승인 이후 유한양행의 경영방향'을 주제로 한 기자간담회에서 자사의 오픈이노베이션(개방형 혁신) 전략 덕분에 FDA 허가를 받아낼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렉라자는 2015년 유한양행의 오픈이노베이션 전략에 따라 도입한 폐암 치료제 후보물질이었다. 이듬해 임상에 진입한 후, 2018년 존슨앤존슨(J&J)의 자회사 얀센에 약 1조6000억원 규모로 기술수출된 의약품이다.
오픈이노베이션 전략을 통해 유한양행이 도입한 후보물질은 총 16개에 달하며, 투입된 자금만 5000억원 이상에 이른다. 회사는 이렇게 발굴한 후보물질을 기술수출이라는 선순환으로 연결시켰다. 총 5건의 대규모 기술수출 계약을 체결했고, 그 규모는 4조7000억원 상당이다. 유한양행은 렉라자를 개발한 만큼 오픈이노베이션 전략 강화와 함께 연구개발(R&D)에 집중할 방침이다.
김열홍 R&D 부문 사장은 "매년 전체 매출의 20% 이상을 R&D에 투입하고 있는데, 특히 올해는 2500억원 상당 연구비가 투입될 것으로 예상된다"며 "집중투자 분야는 항암제 중에서도 표적치료제, 대사질환인 당뇨, 비만, 알레르기 신약 후보물질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한미약품·신풍제약, 기업 간 협업 넘어 학계 등과 '맞손'
이번 렉라자 병용요법의 FDA 허가를 계기로 각 기업이 내세운 오픈이노베이션 전략에 이목이 쏠린다. 기업 간 협업뿐만 아니라 학계, 연구기관과의 공동연구 사례도 등장하고 있다.
한미약품은 한국과학기술원(KAIST), 연세대, 제이디바이오사이언스와 함께 대사이상 지방간 질환(Metabolic Associated Steatotic Liver Disease·이하 MASLD) 치료제를 개발하기 위한 동물 모델을 구축했다. MASLD는 지방간에서 시작해 지방간염, 간 섬유화, 간경화, 간암 등으로 이어지는 만성질환이다. 이 질환은 심혈관질환과 간 관련 합병증 등으로 인한 사망률이 높아 발병 초기 적절한 치료가 필요하며, 유병률도 20∼30%에 달할 정도로 높다.
현재 FDA로부터 승인받은 치료제는 '레스메티롬(성분명)'이 있지만, 70% 이상의 환자가 효과를 보지 못한 것으로 전해졌다. 또한 이 질환을 잘 모사할 수 있는 적절한 동물 모델이 아직 없어 병인 기전 규명과 치료제 개발에 어려움이 있다.
이에 따라 한미약품 등은 인슐린을 생성해 혈당을 낮추는 베타세포의 기능이 부족한 동양인에서 비만과 당뇨를 동반한 MASLD 유병률이 높다는 점을 착안, 베타세포를 파괴한 동물 모델을 개발했다. 이 모델은 실험 쥐에 고지방 식이를 적용해 MASLD를 유도한 것이다. 여기에 식욕 억제 호르몬인 GLP-1(글루카곤 유사 펩타이드-1) 계열 비만 의약품을 투여해 지방간, 간염, 간 섬유화 진행 억제 효과도 확인했다.
신풍제약도 학계와의 공동연구를 통해 무릎골관절염 신약 '하이알플렉스주' 출시를 앞두고 있다. 회사는 2021년 한세광 포항공대(POSTEC) 신소재공학과 교수 연구팀과 체내에서 분해 속도가 조절되는 골관절염 치료제인 '히알루론산 하이드로젤'을 개발했으며, 이 치료제에 적용된 분해 속도 조절 기술을 공동으로 특허 출원한 바 있다. 하이알플렉스주 역시 한 교수의 연구팀과 공동으로 진행됐다.
하이알플렉스주는 유기화합물인 헥사메틸렌디아민(Hexamethylenediamine·HDMA)으로 결합된 신규 히알루론산 나트륨겔을 주성분으로 하는 관절강 주사제다. 기존 히알루론산 관절강 주사제는 체내에서 빠르게 분해돼 자주 투여해야 하는 단점이 있는데, 하이알플렉스주는 분해 효소 작용을 억제해 체내 지속성을 높였다. 임상3상 결과에 따르면, 하이알플렉스주는 대조군(기존 의약품) 대비 12주 차에 통증 개선 유효성에서 유의미한 결과를 거뒀다. 재투여 후 12주까지도 통증 감소량이 대조군에 비해 더 개선되는 경항을 보였다.
업계 "정부 지원으로 오픈이노베이션 전략 가치 높여야"
업계 일부는 정부 지원으로 오픈이노베이션 전략 가치를 제고하고, 이를 활성화해 격려해야 한다고 본다. 실제 렉라자의 FDA 승인 쾌거에는 국가신약개발사업단(이하 사업단)의 뒷받침이 있었기 때문이다. 사업단은 과기정통부·산업부·복지부가 공동 추진한 '범부처 전주기 신약 개발 사업'을 통해 유한양행에 국비를 지원했었다. 또한 글로벌 제약사와의 미팅 연결, 미국종양학회(AACR)·미국임상종양학회(ASCO)에서의 연구개발 내용 발표를 독려하는 등 사업개발 활동을 함께 해왔다.
한국바이오협회는 "지속적인 오픈이노베이션 확산과 과감한 R&D 투자 확대, 정부와의 민관 협력 강화 등으로 국내 제약·바이오 업계에서 제2, 3의 미국 FDA 승인 신약이 탄생할 것"이라며 "렉라자의 FDA 승인을 계기로 국내 제약·바이오 기업이 개발한 국산 신약의 위상이 제고되고 미국·유럽 등 글로벌 시장 진출이 한층 가속화할 것"이라고 했다.
/정승필 기자(pilihp@inews24.com)Copyright © 아이뉴스24.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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