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진왜란·정유재란 중 조선 수군의 유일한 패전 [역사&오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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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97년 8월 27일, 칠전량 해전이 시작됐다.
1592년 임진왜란 발발 이후 조선 수군은 이순신 장군을 중심으로 왜군을 압도하며 승승장구했으나, 칠천량 해전은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기간 중 유일한 조선 수군의 해상전 참패였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배들이 훗날 이순신 장군이 복귀해 명량해전을 치를 때 일본 수군 함선 133여 척을 격퇴하게 된 13척의 배 중 12척의 배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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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스1) 김정한 기자 = 1597년 8월 27일, 칠전량 해전이 시작됐다. 1592년 임진왜란 발발 이후 조선 수군은 이순신 장군을 중심으로 왜군을 압도하며 승승장구했으나, 칠천량 해전은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기간 중 유일한 조선 수군의 해상전 참패였다.
명나라와의 화의가 결렬된 후 일본은 1597년 1월 다시 조선을 침범했다. 일본의 이간책으로 인해 이순신 장군이 해임된 후 새롭게 삼도수군통제사가 된 원균은 승전에 대한 압박감에 시달렸다.
원균은 삼도수군통제사가 되자 상황의 불리함을 깨닫고 종전의 입장을 바꿔 왜군 공격에 소극적인 태도를 보였다. 하지만 조정은 원균에게 출정을 종용했고, 이에 원균은 무리한 공격을 감행하다 오히려 기습을 당했다.
칠천량은 좁은 해협으로 둘러싸여 있고, 조류가 빠르게 흘러 함대 운용에 어려움이 많았다. 왜군은 이러한 지리적 특징을 이용하고 조선 수군의 동태를 파악해 공격을 감행했다. 조선 수군은 이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고 큰 피해를 입었다. 전라우수사 이억기와 충청수사 최호 등 수군 장수들이 전사했다. 원균은 거제도로 도망쳤다가 왜적의 칼에 맞고 전사했다.
경상우수사 배설만이 12척 판옥선을 이끌고 무단으로 전선을 이탈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배들이 훗날 이순신 장군이 복귀해 명량해전을 치를 때 일본 수군 함선 133여 척을 격퇴하게 된 13척의 배 중 12척의 배가 된다.
칠천량 해전 패배로 조선 수군은 거북선 3척, 판옥선 140여 척, 그리고 수군 2만 명을 잃고 남해 제해권을 상실했다. 기세가 오른 왜군은 전라도를 침입해 유린했다. 조선 조정은 급히 이순신을 복권시켜 삼도수군통제사로 재기용했다. 선조가 수군을 아예 폐지하려 하자 이순신은 "신에게는 아직 12척의 배가 있사옵니다"라고 고하며 비장한 결의를 표하고 궤멸된 수군의 재정비에 나섰다.
acenes@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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