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 부모만 노난' 외국인 이모님 정책, 임금 낮추면 만사 해결될까

최나실 2024. 8. 27.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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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인 가사관리사 임금 논란]
'월 238만 원' 이용료에 "부자들이나 쓰겠네"
정부·여당 '중산층 위해 최저임금 이하' 추진
전문가들 "'싼값'만 목표 삼으면 후폭풍 클 것
불법체류자 양산·돌봄노동 황폐화 등 없도록"
외국인 가사관리사 시범사업에 참여하는 필리핀 여성 노동자들이 지난 6일 인천국제공항 제1터미널로 입국한 뒤 버스로 이동하고 있다. 이들은 입국 후 4주간 특화교육을 받고 다음 달 3일부터 근무한다. 공항사진기자단

"부자들이나 쓸 가사도우미를 왜 혈세로 도와줘야 하나."

"싱가포르에서도 (외국인 가사노동자) 월급이 100만 원이 안 된다는데, 200만 원 넘는 돈 주고 쓰라니 한국이 글로벌 호구냐."

말 많고 탈도 많은 '외국인 가사관리사' 시범사업이 다음 달 3일 서울시에서 시작되는데 이용료, 즉 가사관리사 임금을 놓고 갑론을박이 뜨겁다. 최저임금법 등 국내법을 준수하다 보니 이용료는 하루 4시간 기준 월 119만 원, 8시간 기준 238만 원이다. 최저임금 9,860원에 4대 보험 등 간접비용을 더한 시급은 1만3,700원. 공공돌봄인 아이돌봄서비스 종합형(1만5,110원)이나 민간의 가사도우미 시급(1만5,000원 안팎)보다 조금 낮지만 '사회적 기대치'에는 못 미치는 수준이다.

특히 시범사업 신청 가구의 절반가량(46.6%), 선정 가구 3분의 1(37.8%)이 강남 4구에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강남 부모들만 노난 정책'이라는 비판이 나왔다. 향후 정책 방향에 대해서도 '일부 계층만 혜택을 볼 정책을 무리해서 도입했다'는 비판과 '비싼 것이 문제니 임금 수준을 낮춰 중산층도 이용할 수 있어야 한다'는 엇갈린 주장이 공존한다.

정부·여당은 '최저임금 적용 제외'를 고수하고 있다. 오세훈 서울시장, 윤석열 대통령에 이어 최근 대통령실 저출생대응수석비서관, 여당 의원도 '최저임금 차등 적용'을 통해 제도 보완에 나서야 한다고 주장했다. 반면 주무 부처인 고용노동부 김문수 장관 후보자는 "헌법, 국제기준, 국내법과 배치되는 측면이 있어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내놨다.

이용자 입장에서야 외국인 가사관리사 이용료가 낮아지면 당연히 좋겠지만 사회 전체적으로도 좋을까. 노동·복지·경제·이민 전문가들은 부정적으로 봤다. 공통적으로 "눈앞의 혜택만 보고 '싼값'에만 집중하면 장기적 피해가 클 수 있다"고 진단했다.


우려①: 차고 넘치는 외국인 최저임금 일자리, 이탈 가능성↑

이정식(왼쪽에서 세 번째) 고용노동부 장관과 송미령(네 번째)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이 지난 6일 충북 충주시의 농가를 방문해 폭염 대비 온열질환 예방 상황을 점검한 뒤 농장주 및 캄보디아 외국인 노동자들과 간담회를 하고 있다. 젊은 인력을 찾아보기 힘든 지방 농어촌에서 외국인 노동자는 '귀한 인력'이다. 고용노동부 제공

전문가들의 첫 번째 우려는 '미등록 이주민'(불법체류자) 발생 가능성이다. 지방 농어촌이나 영세 제조업 등의 구인난 탓에 외국인 노동자를 원하는 최저임금 일자리가 많은 상황에서돌봄 분야만 최저임금을 주지 않는다면 '인력 이탈'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지난해 말 기준 국내 체류 외국인 250만여 명 중 불법체류자는 42만여 명으로 최고치를 기록했는데, 달리 말하면 이 정도 인력이 한국 사회 곳곳 '3D 업종'에 포진해 경제가 굴러간다는 뜻이다.

조혁진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은 "한국은 불법체류자뿐만 아니라 그들을 고용한 사업주 제재 역시 강하지 않다"며 "(최저임금 미적용 시) 인력 이탈 우려가 굉장히 높다"고 말했다. 시범사업은 100명으로 '관리 가능한 규모'지만, 정부 계획처럼 내년 상반기까지 1,200명을 들여오는 등 향후 사업 규모가 커진다면 '인력 관리' 문제가 불거질 수 있는 것이다.

장주영 이민정책연구원 연구위원도 "국내 미등록 외국인에 대한 수요가 암암리에 많은 상황이라 공장, 농장 등으로 이탈 가능성이 높다"며 "특히 돌봄 노동 특성상 (이탈 시) 이용자 가정과 아동 안전에 미치는 영향이 클 수 있다"고 우려를 표했다. 현재 시범사업은 '중개업체'에서 관리 감독을 하는 방식이지만, 최저임금 적용 회피를 위해 개별 가구와 노동자가 일대일로 사적 계약을 맺는 방식으로 정책이 수정될 경우 '인력 관리' 책임을 개별 가구가 져야 할 수도 있다.


우려②: 돌봄 가치의 하락, 내국인 돌봄 인력마저 외면하면

지난해 7월 31일 서울 중구 로얄호텔에서 고용노동부 주최로 열린 '외국인 가사근로자 도입 시범사업 관련 공청회'에서 한국여성노동자회 등 시민사회단체 회원들이 '노예제 도입중단'이 적힌 피켓을 들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 사진

두 번째 우려는 '돌봄 일자리 황폐화'다. 외국인 임금을 낮추다가 내국인 돌봄 노동자 임금도 동반 하락하면 그나마 '있던 인력도 떠날 수 있다'는 것이다.

국내 돌봄 종사자 상당수는 중고령 여성인데, 청년·남성 유입은 적고 '인력 부족'이 항상 문제다. 이유는 명료하다. '안정적으로 괜찮은 수입을 올릴 수 있고 사회적으로도 존중받는 일자리'로 여겨지지 못하기 때문이다. 각종 연구에 의하면 돌봄 노동자의 평균 임금은 월 150만~160만 원인데, 최저임금은 줘도 '풀타임' 일자리가 드문 탓이다.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상임위원을 지낸 홍석철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는 "(최저임금 미적용의) 가장 큰 부작용은 돌봄 시장 전체 가치를 떨어뜨릴 수 있다는 점"이라며 "돌봄 인력 공급 부족을 해결하려면 돌봄 가치를 높여야 하지만 그에 역행할 수 있다"고 걱정했다. 그는 "내국인 인력마저 돌봄 노동을 회피하기 시작하면 빈자리를 외국인으로 다 채울 수 있겠냐"며 "단기적 비용 완화뿐 아니라 시장 전체적인 중장기 영향을 고려해서 접근할 문제"라고 말했다.


우려③: 인력 공급 보장 없어...'공존' 위한 사회적 숙의 필요

외국인 가사관리사 시범사업에 참여하는 필리핀 여성 노동자들이 지난 6일 오전 인천국제공항으로 입국하고 있다. 뉴스1

'무작정 인건비를 낮추다가 구인이 어려울 수 있다'는 의견도 있다. 외국인 가사노동자 입장에서 '다른 선택지'도 많기 때문이다.

대표적 '돌봄 노동자 송출국' 필리핀에서는 매년 여성 17만여 명이 외화벌이를 가는데, 주변국인 남아시아·동남아시아뿐 아니라 임금 수준이 높은 미국·캐나다·유럽 등지로도 향한다. 정책 추진에 관여한 당국 관계자는 "여타 선진국들도 돌봄 인력이 부족하다 보니 한국이 고민해야 할 부분은 '인력 확보' 문제"라고 귀띔했다. 일본만 해도 외국인 간병 인력에게 내국인과 똑같이 최저임금을 준다. 이번 협상에서 필리핀 정부도 '최저임금 적용' 여부에 단호한 입장이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윤자영 충남대 경제학과 교수는 "국내 고용허가제는 내외국인 똑같이 최저임금을 지급해 (외국인 노동자들이) 선호했고 엄격한 관리도 받았다"며 "임금을 낮추면 (일할) 유인이 떨어져 최저임금 이하로 낮춘다고 해도 적정선을 정하는 게 쉽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홍 교수 역시 "필리핀 돌봄 인력을 필요로 하는 국가가 많기 때문에 가격을 낮춘다고 해서 인력 공급이 된다는 보장이 없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중산층도 보편적으로 쓰게끔 가격을 낮추자'는 정책 방향이 불러올 사회·문화적 변화에 대해서도 사회적 숙의가 필요하다는 의견이 많다. 6세 미만 영유아가 있는 집은 지난해 135만여 가구라 돌봄의 일정 부분을 공공돌봄이나 내국인 대신 외국인에게 맡긴다는 것은 최소 수만에서 수십만 명이 한국 사회, 특히 수도권 중심부에 새로 유입된다는 의미다.

한국 사회가 이들과 '공존'할 준비가 돼 있는지도 문제라는 뜻이다. 윤 교수는 "지금까지 외국인 인력은 주로 지방이나 기피 업종 등 '비가시화된 영역'에서 일했지만 돌봄이라는 대면 서비스를 할 경우 사회적 갈등이나 차별 문제가 불거질 가능성이 크다"고 짚었다. 돌봄 전문가 김진석 서울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외국 인력 유입을 원천적으로 막을 이유는 없다"면서도 "기존 내국인 돌봄 노동자 처우 문제가 불거져도 제대로 사회적 대응이 이뤄지지 못하던 상황에서 외국 인력에 대한 차별이나 갈등에 잘 대응할 수 있을지 우려된다"고 밝혔다.

최나실 기자 verit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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