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떠난다고 다 행복할까… “각자의 지옥서 살아남아야”

이호재 기자 2024. 8. 27. 03:02
자동요약 기사 제목과 주요 문장을 기반으로 자동요약한 결과입니다.
전체 맥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본문 보기를 권장합니다.

해가 뜨기도 전 어두컴컴한 새벽.

뉴질랜드 영주권을 얻은 '상우'(박성일)가 밤이면 할 일 없는 뉴질랜드에서의 삶에 답답해하고, 항상 고국으로 돌아갈 날을 꿈꾸는 장면을 통해 한국을 떠난다고 해서 행복이 보장되는 것은 아님을 보여준다.

"각자의 위치에서 지옥을 품고 살아간다. '살아있어야 한다', '살아남아야 한다'가 전하고 싶은 메시지"라는 장 감독의 말처럼 여성이든 남성이든, 청년이든 중년이든 우리는 결국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 치는 것 아닐까.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선넘는 콘텐츠] 〈14〉 영화 ‘한국이 싫어서’ 원작 비교
원작의 ‘지옥철’ 출근-성희롱 대신, 집값 폭등-장거리 출퇴근 애환 담아
‘낯선 땅’서 부적응도 비중 있게 다뤄… 2015년 ‘헬조선’과 달라진 시각 반영
영화 ‘한국이 싫어서’에서 20대 후반 여성 ‘계나’(고아성)가 한국 거리를 방황하는 모습. 배우 고아성은 22일 인터뷰에서 “직장 생활을 하면서 지쳐 버린 한국의 청춘을 표현하고 싶었다”고 했다. 디스테이션 제공

해가 뜨기도 전 어두컴컴한 새벽. 벌써 사람들로 가득 찬 초록색 마을버스를 탄다. 정거장 12개를 지나 내린다. 지하철 1호선에 몸을 싣는다. 신도림역에서 지하철 2호선으로 갈아탄다. 다시 12개 정거장을 가 강남역에 내린다. 회사 엘리베이터도 발 디딜 틈이 없다. 겨우 ‘대리’라는 직함이 붙어 있는 자리에 도착해 외투를 벗고 한숨을 쉰다. 출근길이 아니라 지옥으로 향하는 길 같다.

28일 개봉하는 영화 ‘한국이 싫어서’는 20대 후반 여성 ‘계나’(고아성)가 행복을 찾아 직장과 가족을 두고 한국을 떠나는 이야기다. 장강명 작가가 2015년 펴낸 동명의 소설(사진)이 원작이다.

소설에서 계나는 서울 서대문구에 산다. 아현역에서 지하철 2호선을 타고 역삼역에 있는 회사까지 출근한다. 지하철로 22개 정거장을 이동하니 약 1시간이 걸리는 셈이다. 소설 속 계나는 ‘지옥철’에 대해 “몸이 끼이다 못해 쇄골이 다 아플 지경”이라며 이렇게 토로한다.

“2호선을 탈 때마다 생각한다. 내가 전생에 무슨 죄를 지었을까.”


반면 영화에서 계나는 인천에 산다. 출근하기 위해 2번 환승한다. 출근 시간은 2시간으로 늘었다. 소설이 영화화되는 사이 사회적 문제로 떠오른 집값 폭등 문제를 반영한 듯하다. 서울에서 밀려난 장거리 출퇴근 직장인의 고달픔을 극대화시켰다.

소설은 계나가 한국을 떠나야만 하는 이유를 설명하는 데 많은 분량을 할애한다. 직장에서 성희롱을 당하고, 부당한 지시를 받아도 오로지 참는 것을 미덕이라 강조하는 한국 사회의 수직적 구조를 비판적으로 조명한다. “학생 때는 똑똑하던 여자애들이 집 안에 틀어박혀 있으면서 바보 되는 거 많이 봤다”며 한국에서 여성으로서의 삶이 얼마나 힘든지를 직접적으로 드러내기도 한다.

반면 영화는 낯선 땅에서 적응하지 못하는 이들의 모습도 비중 있게 비춘다. 뉴질랜드 영주권을 얻은 ‘상우’(박성일)가 밤이면 할 일 없는 뉴질랜드에서의 삶에 답답해하고, 항상 고국으로 돌아갈 날을 꿈꾸는 장면을 통해 한국을 떠난다고 해서 행복이 보장되는 것은 아님을 보여준다. 계나의 옛 남자친구 ‘지명’(김우겸)이 한국에서 취업에 성공한 뒤엔 깨끗한 오피스텔에 사는 모습을 비추며 한국에 남아 있는 이들이 불행이나 슬픔에 갇혀 사는 것도 아님을 보여준다.

한국 사회를 바라보는 영화의 관점이 원작과 차이를 보이는 건 ‘헬조선’이란 단어가 유행했던 2015년 출간 당시와는 사뭇 달라진 현재 한국 대중의 시각을 반영한다. 23일 기자간담회에서 “뉴질랜드를 낭만화하려 하지 않았다”(장건재 감독), “‘지명’ 같은 의견을 가진 사람도 있었으면 좋겠다”(고아성 배우)는 발언이 나온 이유다.

대신 영화가 초점을 맞추는 건 ‘생존’이다. “각자의 위치에서 지옥을 품고 살아간다. ‘살아있어야 한다’, ‘살아남아야 한다’가 전하고 싶은 메시지”라는 장 감독의 말처럼 여성이든 남성이든, 청년이든 중년이든 우리는 결국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 치는 것 아닐까.

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Copyright © 동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