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호철의 스포트S라이트] “상상을 초월한 준비로 초격차 유지한다”

강호철 기자 2024. 8. 27. 0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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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영술 대한양궁협회 부회장
대한민국 양궁이 최강의 자리를 40년가까이 지켜오는 모습을 가장 가까운 곳에서 바라본 장영술 대한양궁협회 부회장. 장 부회장은 "상상을 초월하는 준비가 경쟁자들의 거센 도전을 제치고 한국 양궁이 정상을 유지하는 힘"이라고 했다. / 장련성 기자

세계 스포츠무대에서 양궁은 곧 ‘코리아’를 뜻한다.

1984년 LA 올림픽부터 올해 파리에 이르기까지 단 한 번도 금메달을 놓친 적이 없고, 매번 2~3개는 기본. 올해는 5종목 금메달을 싹쓸이 했다. 장영술(64) 대한양궁협회 부회장은 한국 양궁이 숱한 도전을 물리치고 세계 최강의 자리를 지켜오는 역사를 가장 가까이서 지켜봤다. 그는 1996년 애틀랜타올림픽부터 2012년 런던까지 5회 연속 대표팀 감독을 맡았고, 2016년 리우 대회부터는 협회 임원으로 올림픽에서 선수들과 함께 했다. 지난 14일 서울 송파구 양궁협회 사무실에서 만나 장 부회장을 만나 최강 양궁의 비결을 물어봤다.

-한국 양궁은 왜 강한 걸까.

“뚜렷한 목표, 그에 맞는 노력, 그리고 상상을 초월한 준비다. 서울대 가려면 입시 준비가 다른 학교와 달라야 하는 것처럼 올림픽 금메달이 목표라면, 그에 맞는 훈련이 필요하다 강도나 노력이 남 달라야 한다. 선수 뿐 아니라 지도자는 금메달을 따내기 위한 지도를 해야 하고, 협회는 그에 맞는 뒷받침을 해야 한다. 경기 방식이 바뀌면서 각 나라간 실력 차이가 거의 없어졌다. 1% 차이로 희비가 엇갈리는 승부에서 이기려면 남들은 생각하지 못할 정도로 세밀한 준비가 필요하다.”

-파리 올림픽을 어떻게 준비했나.

“가상 경기장, 소음 적응 훈련 같은 것은 다른 나라도 이제 다 한다, 우리 준비는 그 단계를 넘어선다. 이번 파리에선 다른 대회와 달리 랭킹라운드를 치르고 이틀 휴식 일이 있었다. 140년 전통을 지닌 파리 명문 스포츠클럽을 통째로 빌려 훈련했다. 정신건강의학 전문가 김영돈 박사, 스포츠심리 전문가인 김영숙 스포츠정책개발원 연구원, 뇌 과학 전문가 연세대 김주환 교수 등의 도움을 받아 최대한 정신적 안정을 취할 수 있도록 했다. 숙소도 경기장에서 200m 떨어진 곳에 잡아 훈련하다가도 언제든지 쉴 수 있도록 했다. 테러나 사고에 대비하기 위해 한 명이 이동해도 경호원이 항상 따라다녔다. 이번 대회 동안 숙소에서 해결했던 식사는 1년 전 파리월드컵 때 먹었던 메뉴와 똑같았다. 선수촌에서 퇴직한 영양사가 꾸려준 식단을 1년전 월드컵과 전지훈련 때 파리 현지에서 먹어보면서 최종적으로 결정한 메뉴를 이번에 그대로 먹었다. 국내 방방곡곡을 찾아 다녀 파리 센느강 바람과 비슷한 남한강에서 활을 쏘기도 했다. 마지막엔 대표선수들이 로봇과 경기도 했다. 아주 작은 변수에도 대응하는 ‘무결점 훈련’이 우리만의 강점이다. "

-다른 대회 때도 그랬나.

“2016년 리우 때는 경기장이 선수촌에서 엄청 멀었다. 30㎞가 넘는 거리를 이동하느라 다들 지쳤다. 우리는 차를 개조해 식당과 물리치료실, 샤워시설까지 갖춰진 휴식 공간을 경기장 근처에 만들어 피로도를 최소화했다. 사상 첫 전관왕(당시 4개 부문)도 그런 준비가 만들어낸 것이다. 도쿄 때는 코로나와 무관중 경기, 그리고 경기 중 지진이 일어날 경우까지 대비한 플랜B를 모두 다 준비했다. 대표선수들이 코로나에 걸릴 경우에 대비해 이들을 대체할 국가대표 선수들도 국군체육부대에 대기시켜 언제든지 일본으로 갈 수 있게 대기시켰다. 이렇게 철저한 준비의 시작은 정몽구 회장님 시절인 1996년 애틀랜타올림픽 때부터였던 것 같다. 당시에도 혹시나 있을 부상에 대비해 후보선수들을 남녀 한 명씩 데려갔다.”

-한국 양궁하면 어김없이 공정이란 단어가 떠오른다.

“2005년부터 파벌이나 특혜를 최대한 없애는 선발시스템을 구축하기 시작했다. 이제는 정착이 돼 각 대회 상황에 맞춰 약간씩 변화만 주는 단계다. 이번 대표팀이 국제대회 경험이 없어 안팎에서 걱정을 많이 했지만, 중간에 바꿀 생각은 단 한 번도 한 적이 없다. 한 번 세운 원칙은 절대로 무너져서는 안 된다. 도쿄 때 선발전을 하던 도중 대회가 1년 미뤄졌다. 엄청난 고민과 토의 끝에 대표선발전을 처음부터 다시 치렀다. 첫 선발전에서 성적이 좋았던 이우석이 탈락했고, 오히려 탈락했던 안산과 김제덕이 기회를 얻어 2관왕에 올랐다. 이번엔 안산이 대표팀에서 탈락했다. 양궁 대표선수들은 현재 성과에 관계없이 다른 선수들과 같은 출발선상에서 시작한다. 그래야 다른 선수들도 금메달리스트를 꺾겠다는 목표를 갖고 꿈을 키우게 된다.”

-학령 인구 감소로 엘리트 체육 전체가 어려움을 겪고 있는데.

“우리는 초중고 선수가 늘었다. 초등학교 꿈나무-중학교 청소년-고교 국가대표 후보-국가대표 상비군-국가대표로 이어지는 5단계 시스템이 촘촘하고 유기적으로 잘 짜여있다. 파리올림픽 경기가 열릴 때 고교, 초등학교 꿈나무들이 진천 선수촌에서 낮에는 연습하고, 밤에는 함께 양궁 금메달 따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미래에 대한 꿈을 키웠다. 요즘엔 중학교 정식수업에 양궁을 넣기 위해 노력 중이다. 현재 수도권과 지방에서 24개교 정도 정식수업으로 채택했는데, 점점 더 늘릴 계획이다. 양궁은 4년 앞 준비가 기본이고, 10년 이후까지 바라보면서 준비한다.”

-그 동안 지켜본 승부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은?

“이번 대회 김우진과 브래디 엘리슨의 남자개인전 결승은 역대 최고 명승부였다. 마지막 한 발에 운명이 갈리는 살 떨리는 승부, 두 선수가 보여준 스포츠맨십, 누가 이겨도 패자가 할 말 없는 승부였다. 우진이가 졌어도 엘리슨에게 똑같이 축하해줬을 거다. 아쉬웠던 순간이 머릿속에 많이 떠오른다. 2008년 베이징 때 박성현의 여자개인전 결승 때는 텃세 응원, 소음까지 대비했는데 설마 조명까지 비출 줄을 몰랐다. 런던 때는 남자단체가 예선에서 세계신기록을 쏘고도 정작 4강에서 졌다. 도쿄 때는 16강때 김우진이 모든 화살을 10점 과녁에 명중시켰는데, 정작 다음날 탈락했다. 가장 힘들었던 대회는 도쿄다. 여러 변수에 대응할 준비를 다 해야 했다.”

정의선 회장은 양궁선수들이 조그만 불편이라도 느끼지 않도록 직접 훈련장을 찾아 온갖 지원을 아끼지 않는다. 파리올림픽 현장에서 훈련을 마친 남자선수들을 격려하는 정의선 회장.

-한국 양궁의 성공에는 정의선 협회장과 정몽구 전 회장, 현대가(家)의 대물림 사랑이 없으면 불가능했을 것이라고 하는데.

“앞서 말한 ‘상상을 초월하는 준비’ 대부분이 정의선 회장 아이디어에서 비롯됐다. 도쿄의 지진, 파리의 이틀 휴식, 리우의 먼 이동거리 같은, 전혀 생각하지도 못한 질문을 우리에게 먼저 던지신다. 김우진과 대결한 양궁 로봇도 회장님 아이디어다. 처음 말씀 꺼내셨을 때 그게 될까 했는데 진짜 되더라. 이번 파리 훈련장과 숙소도 일년 전 직접 현지까지 찾아가서 고르시고, 선수들이 머무를 방 하나하나 다 세심하게 불편한 게 없는지 살펴보셨다. 이번 파리올림픽이 끝나고’ 우리가 좋은 결과 낸 것은 도쿄올림픽 연기되고 원점에서 시작된 선발전을 선수들 모두 받아들여서 된 것’이라며 당시 탈락한 선수들 이름을 하나하나 거명하셔서 깜짝 놀랐다. 정말 우리 양궁은 참 복이 많다. 파벌 싸움하다 망가진 다른 종목들 많이 봤다. 결국 기업이 체육에 손 떼면 버티기 힘들다. 정 회장의 생각을 먼저 읽고 더 치밀한 준비하기 위해 우리가 한데 뭉쳐서 노력해야 한다. 나는 회장과 양궁인의 연결고리 역할을 하는 것만으로 감사하다. 그래서 더욱 부지런하게 일하고 있다.”

-김우진 선수가 파리올림픽이 끝나자마자 이제 LA올림픽이 시작됐다고 했다.

“회장님이 대회가 끝나기도 전에 4년 후 LA올림픽을 어떻게 준비할 건지 많은 토론을 벌여보자는 말을 먼저 꺼내셨다. 우리를 무너뜨리려는 상대의 도전이 더욱 거세졌다. 더욱 더 디테일 한 준비를 해야 한다. 이번에 로봇이 등장했는데, 다음에 뭐가 나올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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