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주식 밸류업 과녁은 ‘美처럼 연금 백만장자 늘리기’가 돼야”

방현철 기자 2024. 8. 27. 0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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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현철의 경제로 세상 읽기]
‘월가 15년’ 닐슨 교수가 말하는 밸류업과 연금 부자

미국에서 연금 계좌에 100만달러(약 13억원) 이상을 보유한 ‘연금 백만장자’가 빠르게 늘고 있다. 금융자산으로 백만장자라면 미국에선 부자 문턱을 넘었다고 여긴다. 미국 최대 퇴직연금 운용사인 피델리티는 3월 말 자사 연금 계좌에 100만달러 이상 있는 사람이 작년보다 31% 늘어난 86만1000여 명으로 역대 최대라고 했다. 코로나 때인 4년 전 30만7000명의 3배 가까이로 불었다. 3월 말 현재 미국 가계 금융자산의 41.6%는 주식으로 한국(21.8%)보다 훨씬 비율이 높다. 그간 주가가 오르며 연금 계좌도 불어났기 때문이다. 미국 주식시장은 이달 초 주가가 급락한 ‘검은 금요일(블랙 프라이데이)’ 충격에도 2주 만에 제자리로 돌아가는 회복력을 보여주기도 했다. 코스피 2000~3000의 박스권에 갇힌 한국 주식시장도 미국처럼 장기적으로 우상향할 수 있을까. 금융 당국은 현재 한국 주식시장의 한 단계 도약을 위해 밸류업(기업 가치 제고)을 추진하고, 공매도 제도를 정비하고 있다. 월가에서 트레이더 등으로 15년 활동하다 현재 교수로 일하며 은퇴 설계 핀테크 기업도 세운 영주 닐슨 성균관대 SKK GSB(경영전문대학원) 교수를 만나 한국도 미국처럼 연금 부자를 늘리려면 어떻게 주식시장을 업그레이드해야 할지 얘기해 봤다.

월스트리트 15년 경력의 영주 닐슨 성균관대 SKK GSB 교수는 최근 인터뷰에서 국내 주식 밸류업의 궁극적인 목표는 연금 부자를 늘리는 게 돼야 한다고 말했다. /영주 닐슨 제공

◇주식으로 탄생한 연금 부자

- 미국의 연금 부자가 꽤 늘었다.

“한국에서 근로자가 운영을 책임지는 DC형 퇴직연금 같은 게 미국에선 401K다. 작년에 100만달러 넘는 401K 계좌가 급증하자 부자들에 대한 자산 관리 분위기도 바뀌었다. 보통 100만달러면 부자를 관리하는 PB(프라이빗 뱅커)가 상대하는 고객이 될 수 있었다. 그런데 이제는 많은 금융회사가 하한을 높여서 150만달러는 돼야 PB의 전화를 받을 수 있게 됐다.”

- 왜 연금 부자가 늘었나.

“1970년대 말 미국은 401K를 도입했다. 통상 투자자들은 홈바이어스(home bias), 즉 자국에 편향해 투자하는 경향을 보인다. 미국인들은 은퇴 자금을 만들기 위해 401K를 통해 매달 적립식으로 미국 주식을 샀다. 연금 부자의 계좌 유지 기간은 평균 26년이다. 오랜 기간 적금 붓듯 계속 돈을 넣으니 100만달러가 모였다는 것이다. 장기적으로 미국 주가가 우상향했기 때문이다.”

- 한국 시장은 불가능한가.

“한국 퇴직연금은 90%가 원금 보장형이다. 일단 원금 보장형으론 미국 같은 연금 부자가 만들어질 수 없다. 한국 주가가 미국처럼 우상향해야 가능한 일이다. 퇴직연금 연구를 하면서 젊은 세대와 얘기를 많이 해봤다. 크게 놀랐던 게 젊을수록 미국 주식만 얘기한다는 것이다. 물론 투자자 입장에선 성장이 있고 규제와 규칙이 투명한 미국에 투자하는 게 당연하다. 하지만 이렇게 가다 보면 한국 주식시장은 외국인도, 한국인도 외면하게 되는 게 아닌가 하는 우려를 하게 된다.”

그래픽=조선디자인랩 김영재

◇ 한국 주식시장 업그레이드

- 한국 시장 얼마나 저평가됐나.

“주가순자산비율인 PBR이 1이 안 된다. 시가총액이 자산에도 못 미칠 정도로 저평가됐다는 뜻이다. 하지만 저평가돼서 주가가 싸도 투자자들이 크게 몰리지 않는 것은 성장에 대한 기대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밸류업을 추진 중인 일본은 실질임금이 오르면서 소비가 늘어나 성장이 돌아올 것이란 기대가 더해지면서 지난 2월 34년 만에 주가지수가 사상 최고를 돌파했다.”

- 그래도 1월 정부가 밸류업을 얘기하자 외국인이 한국에 들어온다.

“글로벌 시장에서 한국의 밸류업 프로그램에 대한 관심은 국내에서 생각하는 것보다 높다. 실제 한국 기업 리서치를 새로 한다는 해외 회사들이 눈에 많이 띄고 있다. 외국인 주식 순매수도 계속되고 있다. 굉장히 좋은 신호다. 다만, 밸류업을 확대 지속해야 외국인의 관심이 계속될 것이다.”

- 정부가 밸류업 정책에서 개선할 점은.

“한국은 일본의 밸류업을 벤치마킹했다. 일본의 밸류업이 2021년 시작했다고 하지만, 앞서 2000년대 초반 기업 지배 구조 개혁이 많이 언급됐고 2014년 아베노믹스의 일부로 기업 지배 구조 개혁을 시도했다. 2000년대 초반, 아베노믹스 등 두 번의 밸류업 시도가 실패한 것은 강제적이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한국도 당근과 채찍이 부족하면 일관되게 밸류업을 지속하기 어렵다. 잠시 외국인 등의 주목을 받을 순 있겠지만, 애초 문제인 코리아 디스카운트는 해결할 수 없을 것이다.”

그래픽=조선디자인랩 김영재

◇'게임의 규칙’을 유지하라

- 한국에 글로벌 장기 투자자가 오게 하려면.

“가장 중요한 것은 일관된 ‘게임의 규칙’을 지킨다는 인식을 심는 것이다. 좋은 규칙이면 물론 좋지만, 나쁜 규칙이더라도 일관돼야 한다. 제일 나쁜 것은 A라는 규칙을 적용했다가 어느 날 갑자기 A는 그만하겠다고 하고 B라는 규칙을 적용하는 것이다.”

- 왜 그런가.

“월가 트레이더를 하면서 배운 게 있다. 투자를 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트레이더가 투자하려는 시장의 룰(규칙)을 알고 있느냐는 것이다. 그 규칙이 아주 나빠도 그에 맞춰 전략을 짜고 이익을 낼 수 있다면 투자를 결정할 수 있다. 규제가 있어도 일관된다면 투자 방법을 찾는다. 하지만 언제라도 규칙이 바뀔 수 있다고 의심되면 자신의 지식과 경험으로 전략을 세워 그 시장에 들어갈 수 없다. 이것이 전문 트레이더의 원칙이다.”

- 밸류업에도 유의할 점 같다.

“만약 지금 한국이 밸류업을 제대로 안 하고 흐지부지된다면, 아예 처음에 얘기를 꺼내지 않았던 것보다 더 나쁜 영향을 시장에 미칠 수 있다고 생각한다.”

- 한국에 연금 부자가 더 나오려면.

“한국 주가가 박스권을 벗어나 장기적으로 우상향해야 한다. 이를 위해 밸류업뿐만 아니라 한국에 성장이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심어줘야 한다. 미국 등 해외 주식 투자가 쉬워졌기 때문에 이대로 있으면 젊은 투자자들은 다 해외로 나가버릴 수 있다. 거꾸로 외국인들을 국내에 잡아두려면 일관된 정책을 유지해야 한다.”

미국 월가에 있는 뉴욕증권거래소의 모습. 월스트리트 15년 경력의 영주 닐슨 교수는 본지 인터뷰에서 한국 주식 시장 업그레이드의 방향에 대해 얘기했다./AFP 연합뉴스

“공개된 정보로 전략 경쟁하는 게 선진 주식시장”

영주 닐슨 교수는 “금융 당국이 내년 2월까지 공매도 제도를 개선한다는데, 제도를 바꿀 때는 공개된 정보로 투자 전략 경쟁을 할 수 있는 투명한 시장을 만든다는 생각이 바탕에 깔려 있어야 한다”고 했다. 공매도는 주식을 빌려서 파는 것으로 주가가 떨어지는데 베팅할 수 있어 주가 거품을 막는 역할을 한다고 알려져 있다.

―해외에서도 공매도가 문제가 되나.

“공정하지 못하고 불법적인 건 어디서나 문제다. 예컨대 작년 미국의 행동주의 공매도 조사 회사인 힌덴버그 리서치가 인도의 아다니그룹에 대해 ‘아다니 그룹: 세계 셋째 부자가 기업 역사상 최대 사기를 어떻게 치고 있느냐’라는 부정적인 보고서를 냈다. 당시 2주 동안 아다니그룹 가치가 1100억달러 이상 증발했다. 공매도한 펀드들은 큰 이익을 냈다. 그런데 최근 인도 금융 당국은 힌덴버그가 그 보고서를 공개하기 전 특정 펀드에만 보고서를 주고 대가를 받았다는 의혹을 조사하고 있다. 보고서 내용이 사실인지보다도, 펀드가 공개되지 않은 정보를 사용한 내부자 거래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내부자 거래처럼 공정하지 못한 행위로 하는 공매도도 걸러내고 처벌해야 한다는 것이다.”

―합법적이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어떤 투자자라도 공개된 정보만 사용해 스스로 기업에 대해 분석을 하고, 문제가 있다는 걸 발견했다면 공매도를 하고 ‘회사에 문제가 있어 공매도했다’고 공개하면 된다. 남보다 먼저 돈을 주고 정보를 얻은 후 그 정보로 공매도를 해선 안 된다.”

―외국인은 한국인이 모르는 정보가 더 많지 않나.

“외국인 투자자가 정보가 더 많다는 건 동의하기 어렵다. 선진국 금융시장에서 글로벌 스탠더드는 미공개 정보로 투자를 해서 돈을 벌었다면 큰 처벌을 받아야 하는 범죄라는 것이다. 모든 주체는 공정하게 대우받아야 한다. 다만 차이는 끌어올 수 있는 자금이 많은지 적은지, 운용 전략을 얼마나 잘 짜는지 등에서 나오는 것이다.”

:영주 닐슨 교수는

연세대를 나와 UC버클리 금융공학 석사, 피츠버그대 통계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성균관대 SKK GSB 교수로 있다. 미국 월가에서 JP모건, 시티그룹 등에서 채권과 퀀트 투자 전문가로 일했고, 포트폴리오 매니저, 트레이더 등으로 15년간 활동했다. 최근 은퇴 자금 투자, 관리, 인출을 돕는 핀테크 업체 아이랩을 설립하고 글라이드라는 소프트웨어 서비스를 개발했다. 저서로 ‘서울에서 월스트리트로’ ‘글로벌 투자 전쟁’ ‘그들이 알려주지 않는 투자의 법칙’ 등이 있다.

☞연금 계좌

노후에 연금으로 받으면 세제 혜택 등을 받을 수 있는 계좌를 가리킨다. 한국에서는 근로자가 운영을 책임지는 DC(확정기여)형 퇴직연금, IRP(Individual Retirement Pension·개인형 퇴직연금) 등이 있다. 미국에는 DC형 퇴직연금과 비슷한 401K 계좌와, IRP와 유사한 IRA(Individual Retirement Account)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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