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朝鮮칼럼] 독자 핵무장이 만병통치약일까

천영우 前 청와대 외교안보수석·한반도미래포럼 이사장 2024. 8. 27. 0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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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무장하면 주한미군 명분 희미… 미군 떠나도 핵만 가지면 괜찮나
만약 북이 선제 핵 공격하고 미국이 응징 보복 안 한다면 전 세계 미 동맹 한순간에 무너져
미국이 안 도와줄 거라는 건 기우
핵무장 타령 하기 전에 우라늄 농축 기술 착수부터

북한의 핵무장에 대항하여 한국도 자체 핵무기를 보유해야 한다는 주장은 각종 여론조사에서 꾸준히 60%이상의 지지를 받아왔으나 최근 더욱 부각되는 조짐을 보이고 있다. 지난 광복절에는 대한민국수호예비역장성단(대수장)을 비롯한 24개 국내 안보 단체 총연합이 ‘핵무장 천만인 국민서명운동’을 개시하였고 여기에는 일부 국민의 힘 현역 의원들도 참여하고 있다. 김용현 국방부장관 후보자도 핵무장 가능성을 열어두는 듯한 언급을 한 바 있다. 북한이 비핵화를 거부하고 핵 무력 증강에 집착하고 있는 현실은 한국의 핵비확산조약(NPT) 탈퇴와 독자 핵무장을 정당화하고도 남는다. 그러나 핵무장은 명분을 넘어 안보적 부가가치를 냉철하게 따져보고 결정할 일이다. 핵무장을 주장하려면 최소한 세가지 질문에 답할 수 있어야 한다.

첫째, 핵무장이 대한민국을 더 안전하게 만들 수 있나? 독자 핵무장이 동맹의 파탄을 초래하지는 않더라도 주한 미군의 주둔 명분은 박탈할 것이다. 한국이 주한 미군 주둔 비용 전액을 부담하지 않는 한 핵무장한 한국을 지켜주기 위해 주한 미군을 계속 유지하자는 주장은 워싱턴 정치권에서 먹혀들어갈 여지가 없다. 한국이 자체 핵 무력으로 북한을 억지(抑止)하겠다는 발상은 미국의 확장 억지에 대한 불신에 바탕을 둔 것이므로 확장 억지의 역할과 신뢰성은 약화될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주한 미군이 없고 확장 억지가 약화되어 한미동맹이 공동화(空洞化)되더라도 자체 핵무기만 보유하면 대한민국이 지금보다 더 안전해질까? 안보를 미국에 의존하는 것을 치욕으로 생각하고 자주국방과 전시작전통제권의 조기 환수를 주권 회복의 과제로 삼는 세력이 독자 핵무장을 주장한다면 이상할 것이 없다. 그러나 한미 동맹과 확장 억지가 안보의 근간이라고 믿는 세력이 핵무장론에 현혹되는 현상은 이해하기 어렵다.

둘째, 독자 핵무장이 대북 억지에 얼마나 효과가 있을까? 핵에는 핵이 최선의 억지 수단이라는 데는 이론이 없지만 북한의 핵 사용을 억지하는 데 미국 핵보다 한국 핵이 더 큰 효과를 발휘할 이유가 있나? 북한이 5000개의 미국 핵무기보다 수백 개의 한국 핵무기를 더 두려워하거나 미국이 사용하지 못할 핵을 한국은 반드시 사용할 것이라고 믿는다면 독자 핵무장이 대북 억지력을 보강할 수 있다. 북한이 미국의 대북 ‘적대 정책’에 극도의 공포심을 보여온 이유는 유사시 미국이 재래식 무력만으로도 북한 체제를 종식시킬 힘과 의지가 있음을 의심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핵무장한 한국을 미국만큼 두려워할 것 같지는 않다.

끝으로, 대북 억지가 실패할 때 독자 핵무장이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는 데 얼마나 유용할까? 북한이 다른 모든 핵무장국과 본질적으로 다른 점은 억지가 실패하여 핵무기를 실제 사용할 개연성에 있다. 북한 정권이 핵을 사용하지 않고도 어차피 망할 위기에 도달하면 핵 사용으로 잃을 것이 없어지게 되고 그 순간 억지 실패는 막을 수 없게 된다. 그런데 북한의 핵 공격이 임박해도 문명국가는 핵무기를 선제적으로 사용할 수 없는 치명적 약점을 안고 있다. 북한의 핵 선제공격으로 대규모의 사상자가 발생한 이후에 응징 보복에만 사용할 핵무기라면 기껏해야 사후약방문에 불과하다. 독자 핵무장은 미국이 과잉 보유하고 있는 사후약방문을 혹시라도 사용하지 않을 가능성에 대비하여 그보다 약효가 떨어지는 국산 사후약방문을 이중으로 만들어 두자는 발상이다. 사후약방문의 중복 제조가 북한 핵미사일을 발사 직전에 제거하고, 날아오는 핵미사일을 요격할 자산을 확충하는 것보다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는 데 더 실속 있는 투자가 될 수 있을까?

미국이 워싱턴이나 뉴욕을 희생할 위험을 무릅쓰고 대북 응징 보복에 나서지 않을 것이라는 우려는 기우에 불과하다. 미국이 중국이나 러시아에 대해 누리고 있는 압도적 전략적 우위는 전 세계에 걸친 동맹 체제에서 나온다. 만약 한국이 북한의 핵 선제공격을 당했는데도 미국이 응징 보복에 실패하면 미국의 확장 억지에 의존하는 모든 동맹 체제는 일거에 다 무너진다. 북한의 핵 보복이 두려워 미국이 동맹 체제를 포기한다는 것이 상상 가능한 일인가? 북한이 핵으로 서울을 공격하면 15만 미국인 가운데서도 다수의 사상자가 나올 수밖에 없는데 미국이 이를 묵과할 수 있을까?

핵무장을 위해서는 우라늄 농축이나 사용후 핵연료 재처리 시설이 필요하다. 핵무장 타령하기 전에 한미원자력협정이 규제하지 않는 평화적 농축 기술 확보에 착수하는 것이 급선무다. 핵무장 여부는 농축 시설을 건설한 이후에 논의해도 늦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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