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클럽] 처서 이후
기시 도시히코 교토대 교수가 쓴 ‘제국 일본의 프로파간다’는
청일전쟁부터 태평양전쟁까지 근 10년마다 일본이 전쟁을 일으킬 수 있었던 까닭을
위정자들의 의지 뿐 아니라
군비에 세금을 사용하는 등을 용인해 준
대중의 ‘전쟁열’에 찾고 있는 책입니다.
저자는 그 ‘전쟁열’ 불러키기 위한 선동의 매체를 분석하는데,
청일 전쟁 때는 전쟁 장면을 그린 다색 목판화인 니시키에,
러일 전쟁 때는 사진을 이용한 그림 엽서,
중일전쟁, 만주사변 때부터는 언론이 그 역할을 했다고 분석해요.
건조한 학술서 느낌이라 가독성이 썩 좋은 편은 아니지만
저자가 객관적 시선을 유지하면서 ‘반성’을 잊지 않고 있어
한일관계에 관심이 많은 독자들께는 권하고 싶은 책이기도 합니다.
10년마다 전쟁 일으킨 日, 어떻게 대중을 선동했나
베란다에 내놓았던 벵갈고무나무 잎사귀가 햇볕에 타들었길래 실내로 들여놓았습니다.
더위에 강한 열대 식물에게도 이번 여름은 가혹했던 모양입니다.
지난주 목요일은 더위가 그친다는 처서(處暑)였죠.
올해엔 ‘처서의 마법’도 발휘되지 않는다지만,
그래도 바람의 기색과 햇볕의 기세, 하늘의 빛깔이 달라진 걸 감지할 수 있었습니다.
퇴근길에 귀뚜라미 울음 소리를 들었습니다. 가을이 오고 있어요.
볕에 널어두었던 고추를 걷고 양철로 덮었는데
밤이 되니 이슬이 졌다 방충망으로는 여치와 풀벌레가
딱 붙어서 문설주처럼 꿈적대지 않는다
가을이 오는가, 삽짝까지 심어둔 옥수숫대엔 그림자가 깊다
갈색으로 말라가는 옥수수 수염을 타고 들어간 바람이 이빨을 꼭 깨물고 빠져 나온다
가을이 오는가, 감나무는 감을 달고 이파리 까칠하다
나무에게도 제 몸 빚어 자식을 낳는 일 그런 성싶다.
문태준 시인의 ‘처서’ 중 한 구절입니다.
시인은 더위에서 벗어난 홀가분함이 아니라 여위고 사위는 것들에 대한 안타까움을 노래합니다.
가을은 더위 뿐 아니라 생명력을 발휘하던 여름의 모든 것들이 시들기 시작하는 계절이니까요.
박준의 시 ‘처서’도 어딘가 쓸쓸합니다.
앞집에 살던 염장이는
평소 도장을 파면서 생계를 이어가다
사람이 죽어야 집 밖으로 나왔다
죽은 사람이 입던 옷들을 가져와
지붕에 빨아 너는 것도 그의 일이었다”
이렇게 시작한 시는, 이런 장면으로 마무리됩니다.
바람이 많이 불던 날에는
속옷이며 광목 셔츠 같은 것들이
우리가 살던 집 마당으로 날아들어왔다
마루로 나와 앉은 당신과 나는
희고 붉고 검고 하던 그 옷들의 색을
눈에 넣으며 여름의 끝을 보냈다.
시인들이 아쉬움을 담아 처서를 읊을 수 있었던 건
그 여름이 미련을 가질만큼 괜찮은 계절이었기 때문이겠죠.
앞으로의 여름은 올해보다 더 더워진다니,
여름의 끝을 안타까워하는 일도 지나간 시대의 낭만으로 기억될지도요. 곽아람 Books 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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