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정아의 아트 스토리] [546] 아버지와 다른 길을 간 딸 피카소

우정아 포스텍 교수·서양미술사 2024. 8. 26. 2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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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로마 피카소, 피카소 쿤자이트 목걸이, 1986년, 쿤자이트 396.30캐럿 등, 워싱턴 D.C, 스미소니언 자연사 박물관 소장.

유명 미술가를 아버지로 둔 자식이 미술가가 되기를 꿈꾸면 불행해지기 쉽다. 처음부터 잘한다는 소리를 듣기도 힘들지만, 어쩌다 잘해도 아버지 덕이라 하고, 조금이라도 모자라면 아버지에게까지 흉이 미친다. 팔로마 피카소(Paloma Picasso·1949~)는 태어나 보니 아버지가 세상에서 제일 유명한 파블로 피카소였다. 어릴 때부터 자연스럽고 자유롭게 그림을 그리며 자라났지만, 열 살 무렵 아버지의 무게감을 의식하면서부터 그림을 포기했다고 한다.

연극 무대 및 의상 디자이너로 일하던 팔로마는 우연히 만든 목걸이가 평론가들의 눈에 띄어 찬사를 받으면서 본격적으로 주얼리 디자이너의 길을 걷는다. 그녀는 날카롭고 공격적인 선과 활기차고 대범한 형태를 자유롭게 사용해, 우아하고 부드러운 여성미만을 강조하던 주얼리의 전통으로부터 파격적으로 벗어났다. 그녀의 과감한 디자인을 전폭적으로 지지했던 게 바로 미국의 고급 주얼리 브랜드 티파니앤코였다. 1980년부터 티파니와 협업을 시작한 팔로마 피카소는 특유의 대범함으로 보석 디자인의 판도를 바꿨다.

‘피카소 쿤자이트 목걸이’는 1986년, 티파니 탄생 150주년을 기념하여 팔로마가 디자인한 목걸이다. 각도에 따라 핑크색과 자주색이 영롱하게 빛나는 중앙의 ‘쿤자이트’는 1902년 캘리포니아에서 이를 처음 발견한 전설적인 보석 및 광물학자 조지 쿤즈의 이름을 딴 희귀 보석이다. 쿤즈는 고작 23세에 티파니의 부사장이 되어 수십 년간 같은 자리에서 보석업계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인물이다. 현재 이 목걸이는 미국 국립 자연사 박물관 소장품이다. 아버지 피카소의 작품이 아직 가보지 못한 곳이 있다면 그게 바로 자연사 박물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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