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설]사주팔자의 쓸모

기자 2024. 8. 26. 2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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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혹 “내가 점을 보러 갔는데 말이야…”라는 이야기를 듣는다. 덕분에 생각보다 많은 사람이 돈을 내서라도 용한 점술가를 찾아간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사회 뉴스에서 보는 무속 이야기는 불쾌하지만 개개인의 소소한 일화는 재미있다. 사주팔자 풀이가 현대화되는 모습도 흥미진진하다. 전에는 여자에게 관직에 진출할 사주가 있으면 결혼운으로 봤지만 지금은 남자와 똑같이 직업운으로 본다든가, 연애운을 볼 때 성적지향을 먼저 확인하더라는 경험담이라든가, 앱을 사용하면 간편하게 사주팔자를 확인할 수 있다든가. 다들 한때 혈액형에서 성격을 읽었듯이, 지금 MBTI 체계를 유형별로 파악하듯이, 사주풀이도 의외로 흔한 상식이었다.

점을 봤다는 사람에게 “정말 믿냐?”고 물으면 다들 “진짜로 믿는 건 아니다”라고 대답하곤 한다. 그냥, 재미로, 궁금하니까, 혹시나 해서 봤다고. 그런데 점은 믿지 않으면서 귀 기울일 때 제일 흥미롭다. 설화나 소설과 마찬가지로 그 내용이 사실인지 아닌지는 중요하지 않다. 우리는 이야기가 잠시나마 현실의 법칙을 압도하도록 둬야 한다. 한 예로, 별자리를 사용하는 점성술은 황도 12궁을 사용하는데, 사람이 태어날 때 태양이 어느 별자리에 머물렀는지에 따라 그 사람의 운명이 정해진다고 가정한다. 이 체계는 지금의 천문학으로 보기엔 정확하지 않다. 그래도 우리는 10월생이면 대개 천칭자리이며, 천칭답게 균형을 중시하는 성격이고, 오늘의 러키 컬러는 빨간색이라고 태연히 이야기한다. 허구라는 말은 우리의 경계심을 손쉽게 무너뜨린다. 허구는 별다른 근거 없이도 그럴싸한 이야깃거리만 갖추면 자격시험을 통과한다.

사주팔자는 여러 체계를 동원해 생일을 흥미롭게 이야기하는 방법이다. 태어난 연, 월, 일, 시는 집을 지탱하는 4개의 기둥, ‘사주(四柱)’로 묶인다. 그리고 각 기둥은 10개의 천간(天干)과 12개의 지지(地支)에서 한 글자씩 골라 표기하므로 총 8글자, ‘팔자(八字)’가 된다. 여기에 상생상극(相生相剋)을 말하는 음양오행의 원리가 얽힌다. 나무, 불, 흙, 쇠, 물이라는 5가지 속성이 서로 북돋거나 억제하는 관계를 이룬다는 내용이다. 따라서 사주풀이는 누구 사주에 불이 많으면 이를 억제하기 위해 흙을 더하면 좋다는 식으로 전개된다.

사주팔자의 주된 쓸모는 흉화를 길복으로 바꾸는 것이다. 운명을 읽는다는 생각은 사람의 운명이 이미 정해져 있다고 전제한다. 우리가 모르고 살았을 뿐 그것은 얼마든지 엿볼 수 있으며, 알고 나면 바꿔버릴 수도 있다.

정말로 운세가 바뀌는진 몰라도 마음가짐이 바뀐다는 점은 확실하다. 내 경우 성명학에 도움을 받았다. 동양철학을 전공하는 선배가 갑자기 이름풀이를 해주었는데 내 이름의 한자를 보자마자 ‘이건 작명소에서 지은 것이 아니라 공부 좀 하신 분이 공들여 고른 이름’이라고 했다. 완전할 완(完)은 발전이 없다는 뜻이라 성명학에선 피하는 글자지만 내 이름에선 전체적인 모양새와 의미를 고려하여 들어간 거라며.

실제로 내 이름은 할아버지가 직접 지은 것이다. 이미 돌아가셨기에 진상을 확인할 방법은 없다. 그래도 이름풀이를 들은 후로 나는 할아버지가 옥편을 들여다보며 좋은 이름을 고심했으리라고 상상한다. 비록 허구일지라도.

심완선 SF평론가

심완선 SF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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