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헤즈볼라, 일단 '확전'은 차단…이 '피난민 귀환' 압력에 불씨는 여전
주말 전투기 100대와 수백 대의 로켓을 동원한 공격을 주고 받으며 전면전 위기를 끌어 올렸던 이스라엘과 레바논 무장 정파 헤즈볼라가 추가 대규모 공격을 자제하며 일단 확전을 차단하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다만 오산의 위험이 여전하고 국경 지역 피난민 복귀 관련 이스라엘 정부가 받고 있는 압력이 상당해 확전 불씨는 남아 있다는 평가다.
카타르 알자지라 방송, <월스트리트저널>(WSJ)을 보면 25일(이하 현지시간) 이스라엘을 공격한 뒤 연설한 헤즈볼라 수장 하산 나스랄라는 "현재로선 대응이 끝났다고 생각한다. 현 단계에선 국가(레바논)는 숨을 돌리고 쉴 수 있다"며 일단 공격을 멈추겠다고 시사했다. 나스랄라는 이번 공격이 "예비 대응"이었다고 주장하며 "예비 대응의 영향이 만족스럽지 않다고 평가되면 뒤따르는 행동이 있을 것"이라고 추가 공격 가능성은 열어 놨다.
나스랄라는 지난달 말 레바논 수도 베이루트에서 이스라엘에 의한 헤즈볼라 고위 사령관 살해 뒤 보복 시점이 예상보다 늦어진 주요 이유가 가자지구 휴전 협상 타결을 위한 "충분한 기회"를 주기 위함이었다고 주장했다. 그는 "네타냐후(이스라엘 총리)가 (협상에) 새 조건을 내걸고 미국도 그에 협력해 시간을 낭비하고 있어 (공격을) 더 늦출 이유가 없었다"고 덧붙였다.
이날 오전 5시께 이스라엘군은 헤즈볼라가 이스라엘 영토를 향해 미사일 발사 준비를 하고 있는 것을 식별했다며 전투기 100대를 동원해 레바논의 헤즈볼라 미사일 발사대를 선제 타격했다고 밝혔다. 약 30분 뒤 헤즈볼라는 300발 이상의 로켓과 드론(무인기)을 이스라엘 군기지를 향해 발사해 곧바로 대응하며 갈등이 전면전으로 번질 수 있다는 위기감이 치솟았다.
이번 충돌로 이스라엘에서 군인 1명, 레바논에서 3명이 사망했다. 레바논 쪽 사망자의 민간인 혹은 전투원 여부는 밝혀지지 않았다. 이스라엘과 헤즈볼라는 팔레스타인 무장 정파 하마스가 이스라엘 남부를 공격해 1200명을 살해한 지난해 10월7일 이후 국경 지대에서 제한적 교전을 벌여 왔다.
헤즈볼라의 이스라엘 공격은 지난달 27일 이스라엘이 점령 중인 골란고원 축구장에 미사일이 떨어져 어린이·청소년 12명이 사망한 사건에 대해 이스라엘이 헤즈볼라를 배후로 지목하고 3일 뒤 헤즈볼라 고위 사령관 푸아드 슈크르를 살해한 데 따른 보복 성격이다.
슈크르가 살해된 다음날 이란 수도 테헤란에서 하마스 정치국 수장 이스마일 하니예가 살해되며 이란 또한 이스라엘을 배후로 지목해 보복을 공언하고 있어 이번 공격이 이란과 이란이 지원하는 헤즈볼라 등 무장 세력들의 보복 시작인지, 헤즈볼라의 단독 행동인지, 일회성인지 전면전 시작인지 관련 불안감이 커졌던 상황이다.
다만 이후 대규모 후속 공격이 없었고 나스랄라의 공격 중단 시사 발언에 따라 당장의 확전 위기는 피했다는 분석이 우세하다. <월스트리트저널>은 베이루트에 있는 카네기 중동센터 부국장 모하나드 하게 알리가 이스라엘의 사상자가 제한적이라는 점을 근거로 헤즈볼라가 분쟁을 계속 억제하기를 원하고 있다고 분석했다고 전했다.
가자지구에서 하마스와의 전쟁을 마무리하지 못했고 이스라엘 불법 정착민들의 폭력이 이어지며 요르단강 서안지구의 안정 또한 흔들리고 있는 가운데 이스라엘이 헤즈볼라와의 새 전선을 열 합리적 이유도 없어 보인다. 영국 일간 <가디언>의 국제 편집자 줄리언 보거는 "이스라엘군 사령관들은 지상전 없이 헤즈볼라와의 전쟁에서 승리가 불가능하다는 것을 안다. 지상전은 이스라엘에 사상자 면에서 무거운 대가를 초래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세스 존스 미 싱크탱크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부회장도 이스라엘이 기술적으로 뛰어난 군대를 보유 중이지만 레바논 남부에서 지상전이 벌어진다면 "헤즈볼라는 자신이 잘 아는 지형에서 방어전을 벌일 것이므로 이는 다른 문제"라고 짚었다고 전했다. 헤즈볼라는 정밀 유도 미사일, 대전차 및 대공 미사일을 포함해 발사체 12만~20만 기를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확전 불씨가 꺼졌다고 보기는 어렵다. <월스트리트저널>은 특히 헤즈볼라와의 분쟁이 10달째 이어지며 이스라엘 북부 국경 지대에서 피난한 주민 8만 명의 귀환과 관련, 네타냐후 총리에 대한 정치적 압력이 커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신문은 극우 정치인 뿐 아니라 중도 및 전현직 보안 관리들 또한 점차 헤즈볼라를 밀어내고 주민을 귀환시켜야 한다는 생각에 동의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신문은 이스라엘 고위 군 당국자를 지낸 아미르 아비비가 피난민 귀환 문제가 남은 탓에 이스라엘과 헤즈볼라 간 전쟁은 여전히 불가피하고 임박한 상황이라고 봤다고 전했다.
대규모 충돌이 발생하며 오산으로 인한 의도치 않은 확전 위험도 여전하다. 보거는 <가디언>에 이번 충돌 중 이스라엘 내 한 곳에서라도 상당한 사상자가 발생했다면 네타냐후 정부가 레바논 남부에서 헤즈볼라를 몰아내야 한다는 정치적 압력에 쉽게 저항할 수 없게 됐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스라엘이 헤즈볼라 공격을 확대할 경우 이란 개입을 촉발할 수도 있다. 25일 압바스 아락치 이란 외무장관은 소셜미디어(SNS)를 통해 안토니오 타야니 이탈리아 외무장관과의 통화에서 "테헤란에서의 이스라엘 테러 공격에 대한 이란 대응은 확정적"이라고 말했다고 밝혔다. 다만 아락치 장관은 이란의 대응이 "신중하고 잘 계산될 것"이며 "우린 확전을 두려워하진 않지만 이스라엘과 달리 확전을 추구하진 않는다"고 덧붙였다.
<뉴욕타임스>는 미 싱크탱크 워싱턴근동정책연구소 에후브 야리 연구원이 전면전으로 치닫기 전 "단계적 변화를 거칠 수 있다"며 "점진적 확전" 가능성도 언급했다고 보도했다.
이스라엘도 "끝이 아니다"라며 추가 충돌 가능성을 경계했다.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25일 헤즈볼라 선제 공격과 관련해 "베이루트의 나스랄라와 테헤란의 하메네이(이란 최고지도자)는 이번 조치가 북부 상황을 바꾸고 주민들을 안전하게 집으로 돌려 보내기 위한 추가 조치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며 "이는 이야기의 끝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네타냐후 총리는 "누군가 우리를 해하면 우리도 그들을 해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가자지구 전쟁 휴전 협상은 또다시 결렬됐다. <로이터> 통신은 25일 이집트 카이로에서 이뤄진 회담이 어떤 합의에도 도달하지 못한 채 종료됐다고 두 이집트 보안 소식통을 인용해 보도했다. 쟁점은 가자지구와 이집트 국경지대인 '필라델피 회랑'에서 이스라엘군 철군 여부다. 이스라엘군은 이집트를 통한 가자지구로의 무기 밀수와 전투원 밀입국을 막고자 이 지역 통제권을 놓지 않으려 하지만 하마스는 이스라엘군의 가자지구 완전 철수를 요구하고 있다.
장기간의 폭격과 사실상의 봉쇄로 주거, 의료, 수도, 위생 시설이 붕괴된 가자지구에서 이달 25년 만에 소아마비 환자가 발생한 가운데 25일 이스라엘 국방부 산하 팔레스타인 민간 정책 감독 조직 민간협조관(COGAT)은 가자지구로 125만5000명 분의 소아마비 백신을 전달했다고 밝혔다.
COGAT은 세계보건기구(WHO)와 유엔아동기금(UNICEF·유니세프) 주도로 곧 백신 접종이 시작될 것이라고 밝혔지만 <AP> 통신은 전투가 진행되는 상황에서 어떻게 백신을 배포할지 분명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WHO와 유니세프는 지난 16일 성명을 통해 백신 접종을 위한 7일간의 휴전을 촉구했다.
한편 한국 정부는 지난 25일 일부 종교단체 소속의 한국 국민 180여 명이 현지 행사 참석을 위해 이스라엘에 입국한 사실을 파악한 것으로 전해졌다. 외교부는 이들에 대해 최근 정세를 감안해 조속한 출국을 강력히 권고 중이며, 해당 종교단체에 대해서도 직·간접적으로 출국을 권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외교부는 지난 6일 이스라엘과 레바논 접경지역에 대해 '여행금지'에 해당하는 여행경보 4단계를 발령한 상태다. 이외 이스라엘의 다른 지역에 대해서는 3단계에 해당하는 '출국권고'가 발령돼 있다. 정부는 현재까지 접수된 국민 피해는 없다며, 필요한 안전 조치를 지속적으로 강구해 나간다는 방침이다.
[김효진 기자(hjkim@press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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