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칼럼] 관치금융의 그림자

이은정 기자 2024. 8. 26. 19: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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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출금리 17회나 올려…예대마진 ‘은행돈잔치’
오락가락 정책에 ‘빚투’…가계부채 줄일 대책을

얼마전 만난 친구가 내년에 입주하는 아파트 잔금 조달 문제로 고민이 많다고 토로했다. 정부가 대출 규제를 강화하면서 은행권의 대출금리가 천정부지로 치솟고 있기 때문이다. 가계부채를 관리해야 하는 정부 입장도 이해가 되지만 실소유자 입장에선 답답할 노릇이다. 수도권 집값 상승을 막으려다 ‘내 집 마련’을 꿈꾸는 서민의 부담을 키우고 있는 셈이다.

시중금리가 떨어지고 있는 가운데 은행권이 주택담보대출 금리를 올리고 있다. 사진은 대출금리 인상을 걱정하는 직장인 모습. 아이클릭아트 제공


우리은행이 26일부터 비대면 주택담보대출과 전세자금 대출금리를 0.4%포인트 상향 조정했다. 지난달 12일부터 한 달 보름 새 여섯 번째 인상이다. 우리은행을 비롯해 KB국민·신한·하나·NH농협 등 5대 은행 전체로 보면 주택담보대출금리가 지난달부터 17차례 올랐다. 카카오뱅크와 케이뱅크 등 인터넷전문은행들도 금리를 올리긴 마찬가지다. 코픽스(COFIX·자금조달지수) 금융채 등 은행의 대출금리 기준이 되는 기본금리가 미국 기준금리 인하를 기대하며 하락하고 있다. 이달 초 은행채 5년 만기(무보증·AAA) 금리는 연 3.101%로 28개월 만에 최저치를 기록했다. 이처럼 시장금리가 하락하고 있으나 대출금리는 거꾸로다.

은행들의 대출금리 인상 배경에는 금융 당국의 ‘가계부채 관리’ 압박이 있다. 금융감독원은 지난달 은행 부행장들과 간담회를 하고 가계대출 관리 강화를 주문했다. 이후 은행들이 일제히 가산금리를 활용해 대출금리를 올렸다. 반면 시장금리를 반영해 예금금리는 계속 낮췄다. 시중은행의 ‘1년 만기 정기예금’ 중 한국은행 기준금리인 연 3.5%보다 높은 금리를 적용하는 상품은 찾아보기 힘들다. 대출금리는 올리고 예금금리는 낮추면서 은행권의 예대금리차(예대마진)는 커지고 있다.

은행권은 상반기 이자 장사로만 역대 최대치인 30조 원을 벌었다. 은행권이 예대금리차로 손쉽게 수익을 올린다는 비판은 새삼스럽지 않다. 역대 최대 실적을 거둔 은행이 이를 경영 혁신에 활용했다면 다행이다. 하지만 대부분은 은행원의 급여를 올리는 데 사용된 것으로 추정된다. 올 상반기 4대 시중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 임직원의 평균 급여 수령액은 6050만 원이다. 단순하게 계산하면 월 급여가 1000만 원에 달한 셈이다. 삼성전자, 현대차 등 대기업 보다 많다. 또 NH농협은행을 포함한 5대 은행에서 지난해 희망퇴직한 은행원이 받은 총퇴직금은 평균 5억 원을 넘어선 것으로 파악된다. 과도한 ‘이익 나눠먹기’라는 비난이 나오는 이유다.

물론 은행권의 탐욕으로만 치부할 순 없다. 정부의 오락가락 금융정책이 은행 돈 잔치를 부추겼기 때문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해 2월 “은행 돈 잔치는 안 된다”고 발언하자 금융당국은 은행들에 대출금리 인하를 압박했다. 이후 가계부채가 늘었고 서울 아파트값 상승으로 이어졌다. 또 부동산 가격 경착륙을 막겠다며 관련 규제 완화와 함께 특례보금자리론, 신생아 특례대출 등 저금리 주택담보대출을 대거 공급했다. 젊은 층을 중심으로 집을 사려고 무리한 ‘빚투’가 이어졌다. 그런데도 정부는 스트레스 DSR(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 2단계 규제 시행을 미뤘다. 수도권에선 ‘더 오르기 전에 사야 한다’는 패닉바잉 심리 현상이 일어났다. 그 결과 지난달 은행권 가계대출은 5조5000억 원 증가했다. 금융당국이 다시 은행에 대출을 줄이라는 신호를 보낼 수밖에 없게 됐다.

정부는 최근 무주택 서민의 주거 마련 부담을 덜어주는 디딤돌·버팀목 등 정책대출금리도 올렸다. 서민 피해가 커질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는 까닭이다. 대출받은 많은 사람은 인위적 금리 상승에 상환 부담이 커졌다. 또 실수요자는 향후 대출을 틀어막을지 모른다는 걱정에 혼란스러워하고 있다.

관치금융이 예측불가능한 시장을 만들고 있다.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가 지난주 기준금리를 연 3.50%로 동결하자 대통령실이 “내수진작 측면에서 보면 아쉬움이 있다”고 밝힌 것도 논란이다. 정부가 금리 인하를 압박하는 모습을 보이면서 시중금리 추가 하락과 집값 상승 기대감이 커질 수 있다. 대통령실은 금통위의 고민 상당 부분을 일관성 없는 정책이 초래했음을 잊어선 안 된다.


상황이 이런데도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은 지난 25일 KBS 방송에서 “대출금리 인상은 당국과 무관하다”며 “앞으로 은행에 개입을 더 세게 해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이 원장이 대출금리 인상을 유도했는데 또다시 은행에 개입하겠다고 하니 어리둥절하다. 그의 경고가 떨어지자마자 26일 은행권은 대출 만기와 한도를 줄인다고 발표했다. 가계부채는 반드시 해결해야 할 국가적 과제다. 하지만 정부의 구체적인 정책 발표 대신 금감원장 발언으로 하루 만에 은행권 대출금리나 정책이 바뀌는 것은 문제가 많다. 부동산 안정과 가계부채 문제를 해결하려면 관치금융보다는 일관성 있는 대책을 추진해야 한다.

이은정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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