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요경제 항산항심] 장내 주식거래의 결제위험을 책임지는 청산기관

박찬수 한국거래소 청산결제본부장 2024. 8. 26. 19: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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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수 한국거래소 청산결제본부장

8월 초 일본 엔캐리자금 회수로 촉발된 주가 급락 이후 주식시장에서 위험관리가 중요한 이슈로 부각됐다. 영리한 토끼는 위험에 대비하기 위해 세 개의 굴을 파 놓는다고 한다. 투자자들도 포트폴리오 조정, 위험방어용 금융상품 매매 등으로 주가 급변에 대비해야 할 시기다. 주식시장의 결제이행을 책임지는 청산기관들의 위험관리도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한 시기다.

부동산, 귀금속 등에 투자할 때 가격 하락뿐만 아니라 거래 상대방이 대상물이나 대금을 제대로 결제하지 않을 위험도 신경 써야 하나, 주식 투자에는 이런 결제위험은 거의 없다. 특정 투자자 또는 중개회사(증권회사)의 결제 불이행으로 주식 또는 대금이 미납되더라도 주식시장의 청산기관(거래소)이 별도 적립된 재원을 활용해 주식이나 대금을 지급하기 때문이다. 청산기관이 없는 장외 주식시장에서는 일반적인 투자시장과 동일하게 상대방이 주식이나 대금을 미납하면 그대로 손실을 보게 된다. 장외 주식 거래 때는 가격 하락과 더불어 거래 상대방의 결제위험도 살펴봐야 한다.

1602년 네덜란드 동인도회사가 최초로 주식을 발행한 후 19세기 중반까지 거래소를 통한 거래도 장외거래처럼 거래 상대방의 결제 불이행 위험에 노출돼 있었다. 장내 주식시장에도 청산기관이 없어 주식과 대금 모두를 거래 당사자 간에 직접 수수(총량결제)했기 때문이다. 총량결제하는 경우 특정 투자자의 결제 불이행이 또 다른 투자자의 결제 불이행을 야기하는 위험 전이 현상도 많았다. 이에 1850년대 이후 거래소들은 참가자 간 차감결제를 실시해 거래 상대방 위험을 낮추고자 청산기관을 도입하기 시작했다. 런던증권거래소는 1874년, 뉴욕증권거래소는 1892년 차감결제를 위한 청산 기능을 도입했다. 국내 주식시장은 1974년부터 차감결제를 했다.

총량 결제와 차감결제를 비교하기 위한 간단한 주식거래 2건을 가정해 보면, A회사가 주식 100주를 100만 원에 B회사에 팔고, B회사는 같은 주식 100주를 110만 원에 C회사에 팔았다. 총량결제 시 주식 200주[A→B(100), B→C(100)], 대금 210만 원[B→A(100), C→B(110)]이 결제되지만, 차감결제 시 주식 100주[A→C], 대금 110만 원[C→A(100), C→B(10)]만 결제된다. 차감결제 시 결제할 주식과 대금이 대폭 축소됨에 따라 결제 불이행 위험도 줄어든다. 차감결제 시 결제 불이행 위험이 낮아 주가 상승에 긍정적이라는 연구 결과도 있다. 1885년 설립 초기부터 차감결제를 한 뉴욕의 통합증권거래소(CSE)와 총량결제를 한 뉴욕증권거래소(NYSE)에서 거래된 같은 주식의 가격을 비교하면, 차감결제 도입 전 NYSE에서 주가가 0.09% 더 낮았으나 차감결제 도입 후에는 오히려 0.15% 더 높았다.

청산기관의 또 다른 중요한 역할은 중앙거래상대방(CCP)이다. 청산기관이 모든 장내 주식거래의 상대방이 돼 채무이행 당사자가 되며, 청산기관의 회원(참가자)들과 결제이행의 공동책임을 진다.

NYSE는 특정 회원의 결제 불이행 위험을 모든 회원과 공동으로 책임지기 위해 1920년 4월 경개(更改)에 의한 CCP체계를 도입, 오늘날 주식시장 청산기관 모델을 정립했다. NYSE는 거래대금의 5~10% 수준의 거래증거금 예탁을 요구하는 것 외에 특정 회원의 결제 불이행에 따른 손실 보전을 위해 모든 회원에게 기금을 적립하도록 했다. 20세기 중·후반 이후 청산기관은 위험관리 강화를 위해 자체 재원으로 특별기금을 적립하고 있다.


국내 주식시장의 유일한 청산기관인 한국거래소도 차감결제와 CCP 역할의 핵심 청산기능을 갖추고 있다. 지난 7월 한 달간 국내 주식의 결제수량은 총거래량의 14%, 결제 대금은 총거래대금의 5% 규모로 차감결제해 결제위험을 낮추었다. 또한 결제회원의 결제 불이행에 대비해 거래증거금, 손해배상공동기금과 결제적립금으로 증권 및 파생상품 시장 전체 약 14조 원의 결제이행 재원을 확보하고 있다. 이들 재원 중 2조 원 이상의 현금은 부산 지역 금융기관에 예치돼 있다. 한국거래소가 지역 상공인들에게 자금 공급원 역할도 하고 있으며 점차 청산기관의 역할이 증대될수록 지역에 공급되는 자금은 많아질 것으로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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