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에세이] 과학 소비 시대
지난 주말, 박물관 개관 30주년을 맞아 리모델링과 함께 어린이 복합문화공간 ‘들락날락’을 개관한 해양자연사박물관에 다녀왔다. 직업이 과학 교사라 그런지 시간이 날 때마다 아이들과 함께 과학관을 찾는데, 해양자연사박물관은 살아 있는 열대 생물의 전시실을 운영하고 있어 발걸음이 잦았던 곳이다. ‘박물관’이라는 이름에 걸맞은 해양생물과 자연사에 관련된 중요한 자료나 물품도 관람할 수 있으며, 리모델링을 통해 터치스크린이나 가상 현실, 증강 현실 등이 적용된 체험물도 많이 보여 마치 과학관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과학에 대한 호기심을 자극하는 이 공간에서 아이들은 체험하기 바빴고, 나는 촬영하기 바빴다.
지금 생각해 보면 나의 학창 시절에는 과학관보다 박물관을 방문하는 일이 훨씬 많았다. 당시 복천박물관은 학교 소풍으로도 인기 만점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2003년 제1차 과학관육성 기본계획 수립 당시 전국에 50여 개의 과학관이 있었지만, 박물관은 290여 개가 운영되고 있었다. 내게도 부모님과 함께 과학관을 방문한 최초 기억은 1993년 대전 엑스포에서 국립중앙과학관을 다녀온 것으로, 이 외에는 기억도 사진도 없다. 그래도 그때는 학교에서 배우는 딱딱한 이론이 과학의 전부가 아니었다. 곤충이나 식물을 채집해 관찰하거나 양파 고구마 콩나물을 직접 키워보는 일이 많았고, 친구들과 함께 연을 만들어 날리거나 하물며 운동장에서 신나게 뛰어놀던 순간까지 모든 일상적인 경험에서 과학을 느낄 수 있었다.
과학이 디지털 기술로 무장되면서 터치스크린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정보의 양은 대폭 늘어났고, 가상 현실이나 증강 현실을 통해 현실에서는 불가능한 경험이 가능해졌다. 학교 교육에서도 디지털 기술의 활용이 강조됨에 따라 과학 수업의 많은 부분이 에듀테크를 활용하는 형태로 대체되고 있다. 과거에는 두루마리 휴지 심의 입구를 여러 색깔의 셀로판지로 막고 빛을 합성해 보는 것이 중요했다면, 오늘날에는 증강 현실 애플리케이션을 활용해 실험을 수행하는 것이 더욱 교육적이라고 여겨진다. 그런데 이렇게 알게 되는 과학은 신기하긴 하지만 쉽게 잊히는 듯하고, 차갑다는 느낌도 지울 수가 없다.
과학기술 발전에 따라 과학을 경험하는 새로운 방식에 익숙해질 필요도 있지만, 동시에 과학이 일상적 경험으로부터 소외되는 현상을 진지하게 고민할 필요도 있다. 디지털 기술은 편리하고 많은 정보를 빠르게 제공해 주지만, 지금과 같은 방식으로 과학을 접하게 되는 경우 과학을 ‘정보’의 관점에서 추상적인 개념으로만 인식하지 않을지 우려가 된다. 일상적 경험으로부터의 과학은 재미있고 질리지도 않으며, 심지어 따뜻하다.
이제는 과학도 적극적으로 소비해야 하는 시대가 됐다. 다행히 부산에는 해양자연사박물관 외에도 기장 국립부산과학관과 국립수산과학관, 영도 국립해양박물관, 초량 부산과학체험관 등 과학기술 인프라가 잘 형성돼 있다. 이 외에 연구소나 대학, 민간 과학 문화 단체 등 다양한 기관에서도 과학을 보고 만지고 느낄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부산과학축전’이나 ‘장영실 천체과학 축제’와 같은 연례행사도 빠뜨릴 수 없다. 게다가 이러한 공간이 ‘전시의 장’에서 ‘체험의 장‘으로 변화하고 있으니 과학 교사로서도, 두 아이의 아버지로서도 반갑지 않을 수 없다.
과학 과소비를 위한 ‘보여주기식’ 과학도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체험의 장’이 ‘정보의 장’에 머무르지 않도록 디지털 기술의 활용 방법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필요하다. 디지털 기술이 현실의 제약으로 인해 불가능한 과학적 경험을 보완하고 확장하는 도구로 활용될 때, 과학은 문화로서 우리 생활의 일부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자라나는 아이들이 과학 정보가 아닌 과학의 진정한 소비자가 되기 위해서는 부모의 노력도 필요하다. 남는 것은 사진뿐이라지만, 우리를 기다리는 것은 촬영 버튼이 아니다.
과학을 현명하게 소비하는 방법을 아이들에게 보여주어야 한다. 잊지 말자. 우리 모두가 한때 과학자였다는 사실을.
Copyright © 국제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