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돋보기] 조선말 고종 시대 아이돌 '박팔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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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말기 고종황제 앞에서 연주하던 충청도의 한 연주가가 있었다.
그의 연주에 감동한 고종 황제가 "앞으로 네 이름을 팔괘라 하여라" 하였기에 그 명인은 '박팔괘'가 됐다고 한다.
그는 서울에서 연주 및 전수 활동하였으나 병창을 너무 잘 불러서 서울 장안의 명기들은 말할 나위 없고 당시 고관대작들의 소실들이 앞다투어 박팔괘를 모셔 가려 했다.
박팔괘의 이러한 활동과 인기가 그의 이름에 관한 전설을 통해 오늘날까지 전해진 것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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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말기 고종황제 앞에서 연주하던 충청도의 한 연주가가 있었다. 그는 가야금 12줄 중 4개의 줄이 끊어진 상황에서도 남은 8줄로 연주를 훌륭히 마쳤다고 한다. 그의 연주에 감동한 고종 황제가 "앞으로 네 이름을 팔괘라 하여라" 하였기에 그 명인은 '박팔괘'가 됐다고 한다.
옛 음악인들의 증언에 따르면 "박팔괘가 나오기 전에는 서울에 가야금이 없었고 그로 말미암아 서울에 가야금이 알려졌으며 어전에서 8개의 괘만으로 가야금을 능히 타서 팔괘라는 별명을 얻었다는 전설이 있다"고 했다. 필자는 이 일화에 대해 황병기 선생님과 이야기 나누던 중, 황 선생께서 가지고 계셨던 박팔괘의 호적자료를 볼 기회가 있었다. 그러나 전해지는 내용과 다르게 박팔괘는 처음부터 '박팔괘'였고 개명의 기록이 전혀 없었다.
그렇다면 왜 이러한 이야기가 지금까지 전승되고 있을까?
박팔괘(약 1880-1951)는 충청북도 청원군 북이면 외평리 출신으로 충청도에서 가야금 병창을 창시했고 약 1900년 경 24-25살 무렵 서울에 진출하여 최초로 서울에 가야금을 소개한 음악인이다. 오늘날 판소리, 산조 등은 전라도 음악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그러나 사실 판소리의 발성은 한강 이남 토속음악의 발성으로 서울에서 가까운 충청도 음악인들에 의해서 서울로 전파되었음을 여러 문헌자료를 통해서 알 수 있다. 그러나 충청도 사람만큼 담백한 충청도 소리는 감정 표현이 극적인 전라도 소리에 점점 설 자리를 잃고 만 것이다.
박팔괘는 1900년대 전후 서울에서 활발한 활동을 한 연주자로 1906년에 '청주 율객 박팔괘'라는 이름으로 음원을 취입하고 1914년에는 2월 중순부터 7월 중순까지 약 5개월 동안 17회 공연을 할 정도로 단성사 활동을 활발히 했다. 그리고 1915년 다시 2차 음원 취입을 했고, 그 음원 중 '백구타령'과 '새타령'이 유일하게 남아 있을 뿐 산조에 관한 기록이 없어 아쉬울 뿐이다.
당시 박팔괘의 인기는 대단했다. 그는 서울에서 연주 및 전수 활동하였으나 병창을 너무 잘 불러서 서울 장안의 명기들은 말할 나위 없고 당시 고관대작들의 소실들이 앞다투어 박팔괘를 모셔 가려 했다. 급기야 형틀에 오르게 되는 순간에도 누군가가 박팔괘의 죄를 풀어주어 그는 고향으로 돌아와 지금의 청주 지역에서 연주 활동을 하며 이창룡(이창수), 이계선(이계순), 박상근 등 여러 제자를 지도했다. 박팔괘의 이러한 활동과 인기가 그의 이름에 관한 전설을 통해 오늘날까지 전해진 것 아닌가 싶다. 박팔괘의 성품은 과묵하고 깔끔했으며, 빈틈이 없었다고 한다. 당시에는 가야금 줄을 명주실로 직접 꼬아서 만들었는데 맘에 들지 않으면 던지며 호통을 쳤다고 한다. 따라서 제자들이 그의 비위를 제대로 맞추지 못해 끝까지 공부를 마치지 못했다. 박상근만이 그의 가락을 받았으며, 거기에 단모리라는 산조 중 제일 빠른 악장을 추가하여 충청제 가야금 산조 박상근류를 완성하게 됐다.
산조 1세대인 박팔괘는 산조에 관한 자료보다 병창에 관한 기록이 많다. 그러나 그의 제자인 박상근은 박팔괘의 병창을 전수받지 않았다. 산조 2세대인 박상근은 일제 강점기에 그들이 원하는 노랫말로 노래를 부르기 싫었고 목구성도 좋지 않았기에 산조에만 전념했다고 한다. 그랬기에 경기굿거리 가락과 남도굿거리 가락이 들어가 있는 독특한 충청제 가야금 산조가 완성된 것이 아닌가 싶다. 유선미 공주대 음악교육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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