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민준의 골프세상] 세인트앤드루스에서 교차한 세 골퍼의 길

방민준 2024. 8. 26. 1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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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PGA 메이저 AIG여자오픈
2024년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 메이저 골프대회 AIG여자오픈(브리티시 여자오픈) 우승을 차지한 리디아 고(Ross Parker/R&A/R&A via Getty Images). 우승 경쟁한 신지애, 은퇴를 발표한 김인경 프로(사진제공=Oisin Keniry/R&A/R&A via Getty Images)

 



 



[골프한국] 골프의 본향 스코틀랜드의 세인트앤드루스 올드코스에서 펼쳐진 LPGA투어 올 시즌 마지막 메이저 대회인 AIG 여자오픈에서 세 골퍼의 길이 미묘하게 교차했다.



 



리디아 고(27)는 정오를 갓 지난 태양처럼 무섭게 작렬했고 신지애(36)는 중천을 한참 지나 아름다운 노을을 준비했다. 김인경(36)은 비바람 불고 천둥 치는 변화무쌍한 중천을 지나 서녘에 가까이 다가간 저녁해처럼 하루의 역사를 마무리하기 시작했다.



 



2주 전 파리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면서 명예의 전당에 들어간 리디아 고는 시즌 마지막 메이저 대회에서 우승하면서 골퍼로서 절정의 순간을 만끽했다. 그는 25일(현지시간) 세인트앤드루스 올드코스에서 벌어진 LPGA투어 최종 라운드에서 3언더파 69타, 합계 7언더파로 공동 2위 넬리 코다·신지애·릴리아 부·인뤄닝을 2타 차로 따돌리고 우승했다.



10대 때인 2016년 에비앙 이후 8년 만에 메이저 대회에서 우승하며 LPGA 통산 21승을 거두었다. 현장을 찾은 남편 정준 씨와의 뜨거운 포옹은 리디아 고에게 절정의 순간이었다.



 



서울 대방동에서 태어나 5세 때 골프를 배우다 그의 골프 소질을 알아본 아버지의 결심으로 뉴질랜드로 이민가 어릴 때부터 두각을 드러낸 리디아 고는 2012년 아마추어 신분으로 캐나다 벤쿠버에서 열린 캐나디언 여자오픈에 출전해 당시 '골프여제' 박인비를 제치고 우승하며 최연소(15세 4개월) 우승한 이후 항상 스포트라이트를 받아왔다. 그에게 쏟아진 스포트라이트 중에서도 8월의 그것은 유별났다. 일생에 한 번 경험하기도 어려운 일을 2주 사이에 연속으로 이뤄냈다.



그는 자신이 이뤄낸 일을 두고 '찬란한 8월 동화 같은 이야기'라고 말했다. 자발적으로 선택한 골프를 스스로 즐길 줄 아는 천부의 기질로 앞으로 그가 펼칠 골프의 길은 그 끝을 짐작하기 어려운 느낌이 든다. 



 



1타 차 단독 선두로 마지막 라운드를 맞았던 신지애는 세인트앤드루스 올드코스에서 생애의 정점을 찍을 절호의 기회를 맞았으나 후반에 많은 보기를 기록하며 2타를 잃고 준우승에 만족해야 했다.



 



전남 영광군의 개척교회 목사의 딸로 태어난 신지애는 2005년 아마추어로 SK엔크린 인비테이셔널 대회에서 우승한 뒤 2006년 프로로 전향하자마자 4승을 거두며 KLPGA의 강자로 등장했다. 2006년 4승, 2007년 9승을 거두며 KLPGA의 모든 기록을 갈아치웠다. 2006~2008년 3년 연속 4관왕(대상, 최저타수상, 상금왕, 다승왕)의 위업을 달성했다.



 



2008년 KLPGA 최초 그랜드슬램 달성 이후 한국 미국 일본투어에 모두 출전하며 LPGA투어에서 3승을 거두었다. 2008년 LPGA 비회원자격으로 브리티시오픈에서 우승한 뒤 2009년부터 본격적으로 LPGA에서 활동했다. 한국선수 최초로 세계 4대 투어(LPGA, KLPGA, JLPGA, LET) 시드 확보한 그는 LPGA 시즌 3승으로 신인상 상금왕 다승왕 차지하며 '작은 거인'이란 별명을 얻었다. 2010년엔 한국인 최초로 에비앙 마스터스 클래식에서 우승하면서 한국인 최초로 세계랭킹 1위에 등극하기도 했다.



 



2011년 맹장수술, 허리부상, 손 부상 등으로 슬럼프를 겪다 2012년 브리티시여자오픈에서 두 번째 우승을 거두었다. 2014년 이후 주로 JLPGA투어에서 활약하며 한미일 메이저 대회 모두 차지하는 대기록도 세웠다. KLPGA투어 통산 21승. LPGA 통산 11승. 기타 투어 5승 등 전 세계 투어 65승, 프로통산 64승을 거두었다.



사실 신지애는 골프선수로서 이룰 것은 다 이룬 셈이나 다름없다. 다만 그로선 브리티시 여자오픈 3승이라는 대위업의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이번 대회를 끝으로 현역 생활을 끝내기로 결정한 김인경은 골프가 안겨주는 영광과 불행을 누구보다도 절감했던 선수다. 4라운드 합계 11언더파 299타 81위로 대회를 마친 그는 기자회견에서 현역 은퇴를 밝히고 "선수 생활은 끝나지만 골프로 의미있는 일을 하고 싶다."고 밝혔다. 그는 "골프는 내게 떼어놓을 수 없다. 이제 골프를 통한 의미있는 일을 하려고 한다"고 덧붙였다.



 



고등학생 때 단신으로 미국으로 건너가 2007년 LPGA투어에 진출해 통산 7승을 거둔 그는 2017년 AIG 여자오픈의 전신인 브리티시 여자오픈에 올랐었다. 2012년 메이저대회인 나비스코 다이나쇼 챔피언십의 경험은 그에게 혹독한 시련을 안겼다.



 



김인경은 마지막 홀컵에서 40cm밖에 떨어지지 않은 거리의 퍼팅을 놓쳐 연장전에서 유선영에게 패해 '호수의 여왕'이 될 기회를 놓친 뒤 5년여 간난신고의 기간을 보내야 했다. 극심한 트라우마에 시달린 그는 스스로 치유하기 위해 온갖 시도를 다했다.



 



그 과정에 불교와 만나고 오쇼 라즈니스 등 사상가, 철학자들의 서적을 섭렵하고 비틀즈의 음악을 들으며 악몽 같은 트라우마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오쇼 라즈니스의 가르침을 통해 자학과 자책, 집착에서 벗어나 자신을 용서하고 위로하고 사랑하는 법을 터득하고 비틀즈의 음악을 들으며 실수를 저지른 자신을 관대히 용서하고 험난하고 먼 길 끝에는 서광이 비친다는 희망을 발견했다. 



 



김인경은 평소 음악 감상은 물론 직접 피아노와 기타를 즐겨 연주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특히 비틀즈의 음악은 대부분 휴대폰에 담아 다닐 정도로 심취해 있어 LPGA측이 그의 사연을 비틀즈 음악을 예로 들어 해설하기도 할 정도였다.



 



그는 17년간의 투어생활을 돌아보며 "골프를 통해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 영어를 배우고 다양한 곳을 많이 가볼 수 있는 경험을 했다. 문화적으로 많은 경험을 쌓았다"며 "주변에 좋은 분들이 많아서 내가 성장할 수 있었다. 많은 실수에도 불구하고 항상 다시 새로운 기회를 준 것 같아 감사한다"고 고마움을 전했다.



 



한 대회에서 극적으로 교차한 세 선수의 골프여정이 세인트앤드루스 하늘에 긴 궤적으로 아른거린다. 



 



*칼럼니스트 방민준: 서울대에서 국문학을 전공했고, 한국일보에 입사해 30여 년간 언론인으로 활동했다. 30대 후반 골프와 조우, 밀림 같은 골프의 무궁무진한 세계를 탐험하며 다양한 골프 책을 집필했다. 그에게 골프와 얽힌 세월은 구도의 길이자 인생을 관통하는 철학을 찾는 항해로 인식된다. 



*본 칼럼은 칼럼니스트 개인의 의견으로 골프한국의 의견과 다를 수 있음을 밝힙니다. *골프한국 칼럼니스트로 활동하길 원하시는 분은 이메일(news@golfhankook.com)로 문의 바랍니다. / 골프한국 www.golf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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