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존 피해자 삶의 종점 다가오는데…국가 비겁한 시간 싸움
- 영화숙·재생원 피해자 손석주 씨
- 제네바 UN고문방지위 심의 참여
- 한국 정부 “법과 원칙 따라 처벌”
- 사과나 피해회복 방안 언급 없어
- 국가 ‘정말 수용자 맞냐’만 따져
- 기록의 엄밀성 운운하며 버티기
- 가족 없는 피해자 사회적 연대
- 남은 삶 서로 돌볼 공동체 꾸려
- 공영장례로 마지막 배웅하기도
- 이런 활동 국가가 왜 안 나서나
“대한민국 수용시설에 수용됐던 사람들을 대표해 수용시설의 참상을 세상에 알리고자 이 자리에 왔습니다. 우리는 아침을 맞이할 수 있을까 하는 공포와 두려움, 그런 억압 속에서 하루하루를 살았습니다.”
‘부랑인 집단수용은 한국 정부가 저지른 국가폭력이다.’ 이 한마디를 위해 손석주(61) 씨는 스위스로 갔다. 50여 년간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한 말이 지난달 9일 제네바 UN본부 앞에서 세계를 향해 발화됐다. 가난을 죄 삼은 국가에 의해 끌려가 “주면 주는 대로 먹고, 때리면 때리는 대로 맞고, 심지어는 성폭행까지 당하면서 이 세상 누구에게도 한마디 하소연도 못 하고 살아왔다”고. “구타로 상처와 질병이 생겨도 치료받지 못해 원생들이 사망했고, 지금도 트라우마로 시설에 갇혔거나 폭행당하는 악몽을 꾼다”고.
특정 시설의 악행이 아니었다. 문자 그대로 국가 차원의 폭력이었다. 그렇기에 영화숙·재생원 피해자인 손 씨가 한국 수용시설 피해자를 대표해 발언했다. 손 씨가 수용됐던 영화숙·재생원은 부산 최초의 공식 부랑인 시설이었다. 이곳이 사라진 뒤에도 ‘거리 정화 사업’ 체계는 존속해 시설에서 시설로 이어졌다. “시설은 없어졌지만 아이들은 형제복지원 대구희망원 등 전국의 시설을 떠돌았다.” 단속에 근거는 없었다. 고아거나 겉보기에 초라하면 잡아갔다. 그리곤 시설에 넘겼다. 지원비도 두둑이 챙겨줬다. 그곳에서의 ‘부수적 피해’엔 눈감았다.
국가가 세운 수용·단속 체계 그 자체가 이미 폭력이었다. 체계로서 작동하는 폭력 아래, 어떤 시설에 갇혀 살았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모든 시설이 지옥이었다. 그러니 ‘부랑아 청소’란 폭력을 피해 고향을 떠나 전국을 떠돌아야 했던 이들이라면 말하지 않아도 서로의 삶을 안다. ‘집단수용 디아스포라’가 이렇게 만들어졌다. 세월이 흐른 현재 “우리는 살아남아 백발의 노인이 돼 서로를 위로하며 살아갔다.”
손 씨는 UN 고문방지위원회 한국 심의에 참석하고자 제네바로 향했다. UN이 행동에 나선다면, 한국 정부도 움직일 거로 생각했다. 위원회는 ‘UN 고문방지협약’ 준수 여부를 살핀다. 고문 같은 비인도적인 대우나 처벌을 방지했는지 점검·평가한다. 한국은 1995년 이 협약에 가입했다. 올해가 6번째 심의였는데, 그간 수용시설 피해에 대해서는 시정을 권고받은 바 없다. 그 때문인지 국가는 지금껏 집단수용이란 국가폭력에 침묵했다.
같은 달 9일, 손 씨는 동행한 NGO 관계자들과 함께 아나 라쿠, 피터 케싱 위원을 만났다. 손 씨는 이들 앞에서 눈물을 보였다. 두 위원도 눈시울을 붉히며 위로했다. 이튿날 11일, 심의 자리에서 케싱 위원이 한국 정부에 물었다. “생존자 다수는 아동 시절부터 수년간 구금됐다. 직원이나 관리자에게서 극심한 가혹행위를 당했다. 한국은 시설수용 생존자에게 필요한 재활과 구제를 받을 수 있게 하는가.” 한국 정부는 “법과 원칙에 따라 상응하는 처벌이 이뤄지도록 하겠다”고 답했다. 사과나 피해 회복 방안은 언급하지 않았다.
위원회는 한국에 시설수용 피해자 구제 권고를 포함한 최종견해를 그달 26일 발표했다. 시설 내 인권침해를 다루는 독립조사기구 운영도 주문했다. 얼마나 적극적으로 받아들일지는 알 수 없으나, 아마도 한국 정부는 ‘법과 원칙에 따라’ 행동할 것이다. 한국엔 국가폭력 피해 조사에 관한 법은 있어도 사죄·치유를 다룬 법은 없고, 이를 대신할 사회적 합의도 마련되지 않았지만 말이다. 손 씨는 “국가가 스스로 저지른 폭력을 사죄할 ‘법과 원칙’을 어떻게 세우느냐에 우리 인생의 많은 것이 좌우될 것으로 보고 움직임을 주시하려 한다”고 했다.
▮“법과 원칙 따라… 배상 규모 줄여라”
그런데 국가는 법과 원칙을 국가 스스로의 사정이나 형편과 같은 말로 여기는 듯하다. 형제복지원 사건 재판 속 국가의 태도와 항변 논리에서 잘 드러난다. 26일 현재 전국 법원에 접수된 관련 사건은 44건(피해자 377명)으로 집계된다. 필두로 나선 건 피해자 하모 씨 등 26명이 원고로 나선 항소심 사건. 진화위 진상규명 이후 첫 국가 상대 소송으로, 1심 판결도 지난해 12월 21일로 가장 빨랐다. 원고 일부 승소를 선고한 1심의 판단이 타 재판에도 공히 적용되고 있다. 국가와 집단수용시설 피해자 모두가 촉각을 곤두세운 중요 사건이다.
재판에서 피해자들은 ‘지연된 정의’가 뜻하는 바를 뼈저리게 체감해야 했다. 피해자 대부분은 고령이다. 게다가 경제적 사정이 나쁘고, 건강 또한 여의찮다. 다른 법원에서 진행되는 형제복지원 재판에선 원고(피해자) 두 사람이 선고 직전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정의의 지연이 곧 정의 구현의 불발이었던 셈이다. 이런 가운데서도 국가는 결코 서두르지 않는다. 사건과 직접 관련됐는지도 불분명한 기록을 확보해야 한다며 재판을 미루거나, 법무부·부산시 등 여러 부처의 입장을 총괄할 소송대리인을 선임하겠다며 약 3개월을 허비하는 식이다.
그렇다고 국가의 주장에 변화가 생긴 것도 아니다. 여태 국가는 크게 두 가지 사안을 재판부에 요구해 왔다. 먼저 원고들이 정말로 형제복지원 수용인인지 엄밀히 확인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실제와 기록이 일치하지 않아 ‘이 사람이 그 사람’인지 확신할 수 없다는 취지다. 1987년 형제복지원 사건 발발 때 검찰 수사자료 속 피해자 성명·생년월일이 실제 인적사항과 다르다는 식이다. 심지어 기록 자체가 없는 이들 또한 확인되는데도 법원이 객관적 기록은 무시한 채 오로지 진술만으로 피해 사실을 인정하는 잘못을 범했다고 국가는 강변해 왔다.
피해자 위자료의 책정 방식 또한 재산정해야 한다고 말한다. 앞으로 날아들지 모를 ‘국가폭력 피해 청구서’를 감당하기 겁나기 때문이다. 형제복지원 사건에는 ‘구금 햇수당 8000만 원’ 산식이 쓰였다. 1년간 수용된 피해자는 8000만 원, 2년 수용되면 1억6000만 원을 받는 식이다. 형제복지원 사건 피해자는 3만8000명으로 추산되는데, 모두에게 위자료를 지급하면 최소 20조 원이 소요돼 예산 지출이 과다해진다는 게 국가 측 설명이다.
그러니 형제복지원 사건 위자료도 국가 사정에 맞춰야 한다고 요구한다. 그 예시로 국가는 2013년 진도군 민간인 희생 사건 대법원 판결을 든다. 당시 대법원은 피해자마다 위자료 액수를 똑같이 한 뒤 개인별 피해 정도를 일부 반영하는 식으로 금액을 산정했다. 피해자가 너무 많으면 희생자 유족의 숫자와 상호 형평 등을 고려해 위자료를 적절히 조정할 필요가 따른다는 이유다. 이렇게 정해진 최종 위자료는 개인별 차이가 거의 없었다. 삼청교육대 사건 피해자에게도 같은 법리가 적용돼 1인당 9000만 원 수준의 위자료가 적용됐다. 이것이 국가폭력 피해 배상의 ‘원칙’이요, 이 방식이어야 사건 간·피해자 간 형평에 맞으며 국가 재정에도 무리가 없다고 논리를 편다.
▮느긋한 국가, ‘멸족’ 기다리나
국가는 20조 원을 운운하면서도 ‘국가 공인’ 형제복지원 피해자가 490명에 불과하다는 사실은 말하지 않는다. 외려 또 다른 국가 기관인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가 피해자로 인정한 이들에게도 ‘당신 정말 수용자가 맞느냐’고 따진다. 세월이 많이 흘러 기록이 부족한 데다, 그 기록 대부분은 형제복지원이 작성했다. 거리에서 붙잡아온 아이의 신상을 상세히 파악해 기재했을 리 만무하다. 그러니 기록상 인적사항이 실제와 부합하는 경우가 오히려 드물다. 기록의 엄밀성을 따진다는 말은 곧 누구에게도 사죄·배상하지 않겠다는 의미로 나아간다.
피해자 측은 국가의 시간 끌기에 불과하다고 지적한다. 피해자를 대리하는 법무법인 일호 김소라 변호사는 “총괄 소송대리인을 선임하면서도 다른 소송대리인을 사임시키지 않고 (서면 제출 등) 소송 행위에 참여시키고 있다. 총괄 대리인이 소송 행위자의 의견을 취합하는 게 아닌 거다. 추가적인 기일을 얻으려는 의도밖에 안 된다”며 “판결 확정 뒤 위자료를 지급할 때 거쳐야 하는 예산 배정 등 내부적 문제가 정리되지 않아 이처럼 시일을 끌고 있는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또 “형제복지원 실제 수용 여부는 또 다른 국가 기관인 진화위가 조사해 수용 여부를 확인하고 다른 수용인의 진술 등을 교차 검토한 결과다. 국가가 피해자임을 인정한 건데, 진화위 결정이 잘못됐다면 국가 스스로가 왜곡된 부분을 입증해야 한다. 그러나 국가는 1심에서나 2심에서나 이런 부분을 구체적으로 지적하지 않은 채 주장만 한다”고 설명했다. 위자료 산정을 두고는 “형평은 과거 사례가 아니라 국가범죄에 대한 오늘날의 인권 감수성과 역사성에 기반해야 한다. 산정 방식을 (과거로) 후퇴시켜야 한다는 주장은 불합리하다”고 전했다.
이렇듯 국가는 느긋한 자세로 ‘시간 싸움’에 임한다. 마치 ‘집단수용 디아스포라’의 멸족을 기다리는 듯하다. 그런 동안 피해자는 점차 삶의 종점에 가까워진다. 국가를 향해 추악한 과거를 사죄하라고 외치던 이들이 세월에 묻혀 자취를 감춘다. 국가폭력을 기억하고 증언하는 목소리는 머잖아 기록으로만 남는다. 종국에 당사자는 국가폭력을 사과받지 못하고, 피해자의 싸움은 어느 날의 소란이 된다. 과거 국가가 집단수용시설이란 공간으로 이들을 분리·수거해 눈밖으로 내보냈듯, 이번에는 시간 공세로 이들 목소리를 담론 바깥으로 쫓아낸다.
▮조용히 사라져 줄 수는 없다
사죄가 유예되고 국가폭력의 상처는 점차 곪아간다. 일단 피해자 서로가 서로를 돕고 구원해야 했다. 함께 싸움으로써 서로를 자조하고, ‘부랑아’ 딱지 탓에 잃어버린 가족을 대신해 줌으로써 서로를 자구한다. 소년시절 강제로 끌려가 굶주림 속에서 매 맞고 노역했다는 동질의 아픔이 이들을 하나로 묶는다. ‘집단수용 디아스포라’, 국가폭력으로부터 달아나 전국을 떠돌아야 했던 이들이 사회적 가족으로서 연대한다. 국가가 하지 않는 일을 스스로 도모한다.
부산반빈곤센터가 영화숙·재생원피해생존자협의회 공영장례를 돕는 이유다. 센터는 협의회와 함께 가족이 없는 피해자의 마지막을 배웅하기로 했다. 유언장 작성을 돕거나 영정사진도 찍어준다. ‘존엄한 최후’를 준비하기 위한 것만은 아니다. 오히려 장례는 하나의 수단이다. 협의회, 즉 피해자들과 함께 장례를 치른다는 말은 상주가 돼준다는 의미다. 가족이 됐다는 뜻이기도 하다. 같은 아픔을 지닌 가족으로서 남은 삶 동안 생의 작은 순간을 함께하며 서로를 돌볼 공동체를 꾸리는 게 활동 지향이다.
센터는 공영장례를 함께하기로 결의한 피해자들을 위해 정기 모임을 연다. 거창한 치유 프로그램이 제공되는 게 아니다. 그보다는 함께 삼겹살을 구워 먹거나 윷놀이하며 ‘생의 작은 순간을 함께’ 한다. 이것이 피해자가 불우한 과거에 빼앗겨버린 삶의 생동을 되찾는 방법이자 ‘인간다운 삶’을 보내다 여생을 맞게 하는 필수적 과정이라고 믿는다. 피해자의 남은 삶이 존엄할 수 있도록 ‘보호’하는 일이라고 여긴다. 공영장례를 매개로 서로 돌봄, 상호보호의 장을 마련하는 것이다.
센터 임기헌 활동가는 “국가는 시민을 보호하기 위해 존재한다. 국가가 이 일에 나서지 않았으니, 저희가 공영장례를 계기로 함께 모여 서로 돌보는 일, 영정사진을 찍는 일, 그리고 향후에 공영장례에 조문을 같이 가는 일 등을 통해 작게나마 국가의 역할(삶의 보호)이 작동하도록 하려 한다. ‘작은 국가 만들기’ 작업이라고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국가 역시 생의 존엄을 목표로 한 돌봄에 서둘러 발맞춰야 한도고도 전했다. 임 활동가는 “국가폭력의 순간에 대한 법적·금전적 보상뿐만 아니라, 완전히 망가뜨려진 수십 년간의 삶에 대해 관심을 가져야 한다. 분명 국가에 책임이 있다. 개인에게 너무나 큰 상처로 남은 일종의 사회적 질병이 바로 집단수용시설 인권유린이다. 질병을 유발한 이 국가가 원인을 제거하고, 그로 인한 상처들을 감싸주고 마무리해야 마지막 죽음의 순간까지 존엄하게 갈 수 있다”며 “이런 일을 피해자나 활동가에게 맡겨둘 게 아니라, 국가가 우리와 함께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영상= 박세종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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