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착하지도 않고 밖에서 구하지 않으면
*초등학교 운동장이다. 아무도 없다. 완전 혼자다. 어쩌다가 거기 있게 되었는지 모르겠다. 갑자기 똥이 마렵다. 마려운 게 아니다. 그냥 똥이 나온다. 미처 옷을 벗고 말고 할 새 없이 팬티가 묵직해진다. “속절없다”는 말은 이럴 때 쓰는 말이다. 운동장 구석에서 샤워기로 알몸을 씻는데 마음은 벗어놓은 팬티에 가 있다. 저걸 어쩔 것인가? 흐르는 개울이 있으면 좋겠는데, 옷을 물에 넣고 흔들면 웬만큼 빨래가 될 텐데, 옷은 저만큼 운동장 한복판에 놓여있는데. …잘 나오지도 않는 샤워기로 몸을 닦다가 꿈에서 깬다.
팬티를 세탁기에 넣고 돌리면 어떻게 될까? 안 될 말이지. 다른 옷들에 냄새가 밸 테니까. 아하, 그래서 사람이 혼자여야 하는 때가 있는 것인가? 그래서 고해소(告解所)에 혼자 들어가는 것인가? 아무튼 꿈이지만 똥을 싼 건 잘된 일이다. 그것이 주인 허락 없이 밖으로 나온 건 고맙고 고마운 일이다. 1965년 3월, 경복궁 옆 수도육군병원 중환자실에서 한 달 만에 묵은 똥을 싸던 그 날이 생각난다. 그건 똥을 눈 게 아니라 똥이 밖으로 나온 것이었다. 외출에서 돌아오신 어머니가 병실에 진동하는 구린내를 맡으며 아이고 네가 똥을 쌌구나, 혼자 얼마나 애썼냐? 고맙다, 네가 정말 살아서 돌아왔구나, 기뻐하시던 모습이 눈에 선하다. 눈물이 나려고 한다. 똥은 잔뜩 마려울 때 누는 거라던 임락경의 말이 생각난다. 지당한 말씀. 안 나오는 똥 억지로 누지 말고 나오는 똥 나오게 두라는 말 아닌가? 똥을 누지 말고 쌀 것. 여기에 천국을 사는 젖먹이의 길이 있다. 똥을 아무렇지도 않게 싸는 건 젖먹이의 특권이다. 팬티 걱정은 젖먹이 몫이 아니다. 아들의 똥을 치우는 어머니의 행복한 기쁨이 저만치에서 기다리고 있지 않은가? 오, 눈물겨운 은총이여!
*쓰레기 버리는 일에 얽힌 스토리가 장황하게 펼쳐졌지만 고맙게도 문장 하나 남겨놓고 모두 지워졌다. “사람이 사람으로 사는 길은 ‘맘(mam)’으로 살면서 ‘몸(mom)’으로 사는 법을 배워 익히는 데 있다.” ‘맘’으로 사는 것은 지평을 넓혀 많은 사람을 이롭게 해주는 것이고 ‘몸’으로 사는 것은 제 중심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맘’으로 사는 길은 가도 가도 끝이 없다. 지구가 둥근 별이라, 동(東)을 등지고 서(西)로 가고 또 가도 끝내 서(西)를 만날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중심으로 들어가는 길은 누구든지 중간에 포기만 하지 않으면 마침내 가서 닿게 되는 길이다. 중심은 제 자리를 떠나 이리저리 돌아다니지 않는다.
사람이 버리는 쓰레기 처리법을 아무리 궁리해도 쓰레기 만드는 사람을 그냥 두고서는 저리도 급하게 쓰레기더미로 바뀌는 지구별을 구하지 못할 것이다. 문제의 뿌리가 사람이 버리는 쓰레기에 있지 않고 쓰레기 버리는 사람에 있기 때문이다. ‘맘’은 안에서 밖으로 나가는 길이고 ‘몸’은 밖에서 안으로 들어가는 길이다. ‘맘’으로 살다가 거기에 답이 없음을 문득 깨치고 돌이켜 자기중심으로 돌아가는 ‘몸’의 길만이 사람과 지구별을 아울러 살리는 유일한 방편이다. 그래서 붓다가 수보리에게 이르셨던 거다. 갠지스 강의 모래알만큼 많은 재물로 보시해도 경(經) 한 구절 읽고 사람들에게 전하느니만 못하다고.
*밤새 ‘12048’이라는 숫자에 담긴 뜻을 헤아리다가 깨어난다. 천지창조에 연관된 무슨 뜻이 담겨있는 건 알겠는데 그 이상은 아무리 궁리해도 모르겠다. 무슨 뜻이 담겨있든 한복판에 0이 있으니까 모두가 ‘꽝’(空)이라고 생각한 건 기억난다. 아무리 많은 수를 늘어놓아도 속에 0이 있으면 그건 숫자가 아니라 허공에 흩어지는 굴뚝 연기 같은 것 아닐까? 그리고 천지창조와 연결되지 않은 무엇이 천지간에 있을 수 있는가? 이런 생각을 굴리고 있는데 웬 아이가 묻는다, 숨 한 번 내쉬면서 노래 한 곡 끝까지 부를 수 있어요? 그야 할 수 있지. 대답하며 숨을 깊게 들이쉬고 노래를 부른다. 입에서 보얀 김이 나온다. ‘고요한 밤 거룩한 밤 어둠에 묻힌 밤 아기 부모 앉아서 감사기도 드릴 때 아기 잘도 잔다. 아기 잘도…’ 마지막 ‘잔다’만 하면 끝인데 효선이 무슨 잠을 그리 자냐며 몸을 흔들어 깨운다.
“이러다가 침대에서 떨어지겠어.” 눈을 뜨진 않았지만 어깨가 침대에 아슬아슬 걸쳐있는 건 알겠다. 잠결에 효선이 묻는다, 오늘 제윤이 데리고 지리산 온천 가는데 같이 갈래요? 거기까지 비싼 기름 없애고? 싶은 마음에 “싫어, 안 가.” 대답하며 잠에서 완연 깨어난다. 방금 입에서 엉겁결에 나온 “싫어 안 가.”가 귓가를 계속 맴도는데 누가 속삭이듯 말한다, 그토록 단호한 거절을 아직도 한단 말이냐? 이건 기름값 문제가 아닌 것 같은데? 예, 알겠습니다, 효선에게 온천 가겠다고 말하겠어요. 속삭임이 이어진다. 이 세상 누구도 노래 한 곡 끝까지 못 부른다. 노래라는 게, 다른 모든 것과 마찬가지로, 시작도 마침도 없는 물건이거든. 그리고 누가 백세(百歲)를 살아도 한 번 숨 쉬는 순식지간의 일이다. 저 나무를 보아라, 나무는 설날이 없다. 달력이 없기 때문이다. 사람도 제가 만든 시간에 스스로 갇혀 살지 않을 수 있다. 그런 사람을 두고 살아서 죽지 않고 죽어도 죽지 않는다고 말하는 것이다. 속삭임의 뜻은 짐작되지만 저절로 고개가 끄덕여지지는 않는다. 무엇에 끝이 있다는 말이나 없다는 말이나 그게 다 생각 나름 아닌가? 속삭임이 고개를 끄덕인다. 옳다, 모두가 사람의 말이요 생각일 따름이다. 가서 마려운 오줌이나 누자.
사람이 과연 생각 없이 살 수 있을까? 그럴 수 있다고 자기가 지금 그렇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던데 그게 어떤 건지 겪어보고 싶다. 장자(莊子)의 심재(心齋) 좌망(坐忘)이 아마도 그것일 텐데. “뜻을 한 곳에 모아 귀로 듣지 말고 마음으로 들어라. 마음으로 듣지 말고 기(氣)로 들어라” 요컨대 살아 움직이는 제물(祭物)이 되라는 말인데 그 제단을 누가 제 발로 올라갈 것인가? 다만 그럴 수 있게 해달라고 하늘에 빌며 기다릴 따름이다.
*노라네 집은 언덕 위 너른 초원에 있다. 부부가 다섯 아이와 함께 산다. 온 가족이 한님을 섬기는데 성당에서 예배를 드리지는 않는다. 이유는 간단하다. 어디를 가도 거기가 한님 계신 곳이라 그분을 예배하러 갈 곳이 따로 없어서다. 만일 그들이 한님을 예배하러 여기 아닌 다른 어디로 간다면 그건 한님을 등지고 떠나는 것이다. 같은 이유로 아이들은 학교에 다니지 않는다. 가는 데마다 교실이고 보는 것마다 선생인 아이들에게 학교가 어디 있겠는가?
낡은 트럭을 타고 노라네 집을 방문한다. 만물이 검정 실루엣으로 보이는 새벽 미명(微明). 반쯤 열린 사립짝에서 양처럼 생긴 검정개가 내다본다. 저 개는 낯선 사람을 봐도 짖지 않는다. 개가 짖는 건 속으로 겁을 먹었다는 얘긴데 저 개는 도무지 겁이라는 게 없다. 안에서 나마스테가 트럼펫을 부는 모양이다. 나팔만 보이고 그걸 부는 나마스테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그래, 누구나 저렇게 살 수 있지, 저렇게 살지 못할 이유가 없는 거지, 스스로 받아들인 에고의 거짓말에 속아서 잡을 수 없는 무엇을 움켜잡거나 있지 않은 어디를 헤매지만 않으면, 효봉(曉峰) 스님 말씀대로, 무엇을 집착하거나 밖에서 구하지만 않으면, 그러면 누구든지 저 반쯤 열린 낙원의 사립짝을 들어설 수 있는 거라, 생각하다가 꿈에서 나온다.
이현주 목사
***이 시리즈는 순천사랑어린공동체 촌장 김민해 목사가 발간하는 월간 <풍경소리>와 함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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