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영수 칼럼] 지구당 부활과 정당정치의 미래
국민들의 정치 불신이 날로 심해지고 있다. 국민들도 국가 속의 삶에서 정치가 불가피함을 잘 알고 있다. 그런데도 해묵은 정치 불신이 계속되고 있다는 것은 여러 가지 원인에서 비롯된 것이지만, 그 중의 대표적인 것이 국회 및 국회의원에 대한 불신, 그리고 정당에 대한 불신일 것이다.
대의제 민주주의의 첫 단추라고 할 수 있는 선거에 의해 선출된 국회의원 및 그들로 구성된 국회에 대한 국민의 불신, 그리고 현대 민주국가는 정당국가라고 말할 정도로 정치의 중심 역할을 하는 정당에 대한 국민의 불신이 맞물려 있으니 정치 불신이 없으면 오히려 이상한 상황이다. 국회에서는 거의 매년 정치개혁특위가 구성되었지만, 눈에 띄는 성과는 별로 보이지 않는다.
이런 가운데 최근 여야 모두가 지구당 부활을 주장하고 있어, 이 문제에 대해서는 모처럼 합의에 의한 법 개정이 이루어질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도 나온다. 그러나 그 이전에 왜 지구당을 폐지했는지, 그리고 왜 다시 지구당을 부활시켜야 하는지 분명한 정리가 필요할 것이다.
지구당이란 국회의원 선거구 단위로 설치된 정당 하부조직으로 1962년 정당법 제정 당시부터 인정되고 있었으나, 2004년 정당법 개정으로 폐지되었다. 그 결과 지난 20년 동안 정당조직은 정당법에 따라 중앙당과 시도당으로 구성되고 있다.
이른바 오세훈법에 따른 정치개혁의 일환으로 지구당을 폐지했던 이유는 크게 세 가지이다. 첫째, 지구당 중심의 정당 운영은 그 지역 국회의원이 지구당을 장악하면서 토호세력과 연결되어 정당의 부패를 야기한다는 우려가 컸다. 둘째, 지구당이 사유화되면서 정치 신인의 정계 진출이 어려워지는 경향이 강해진다. 셋째, 지구당이 불법적 선거자금, 특히 대선자금의 전달 통로로 이용된 바 있다. 이 점이 지구당 폐지론이 힘을 얻게 된 직접적 계기였다.
그런데 오늘날 지구당 부활론이 힘을 얻고 있는 것은 다음과 같은 이유 때문이다. 첫째, 시도당이 기대했던 만큼의 역할을 못하고 있으며, 오히려 정당민주화를 위해서는 더 낮은 단위의 조직이 필요하다는 요청이 강하게 대두되고 있다. 둘째, 지구당이 없어도 국회의원 선거구마다 당원협의회가 있고, 당협위원장이 있다. 이들의 기능은 과거 지구당과 크게 다르지 않지만, 법적으로 제도화되지 않고 있을 뿐이다. 셋째, 선거에 낙선한 원외 당협위원장이 주도하는 각종 활동을 위해서는 지구당을 통해 후원받는 것이 필요하며, 이는 선진 외국과 비교해도 단점으로 지적된다.
결국 지구당은 장점과 단점을 모두 갖고 있는 제도인데, 20년 전에는 단점에 주목하여 폐지하였고, 이제는 장점을 살리기 위해 부활시키자는 것이다. 그러면 그동안 단점을 최소화할 수 있는 대책은 마련되었는가? 아니면 시간이 많이 지났으니 한번 바꿔보자는 것인가?
서구의 선진국들을 보더라도 작은 단위의 지방자치가 풀뿌리 민주주의라고 일컬어지듯이 작은 단위의 정당조직에 대한 국민들의 적극적 참여가 당내 민주주의의 기초라는 점은 분명하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민주화 이후에도 시민단체에 가입하여 회비를 내고, 봉사활동을 하면서도 정당에는 가입하지 않으려는 경향이 강했다.
이러한 국민들의 정치불신 내지 정당불신을 극복하지 못하면, 지구당 부활로 큰 변화가 일어나기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오히려 고비용 정치로의 환원이라는 비판에 직면할 가능성도 크다.
그러므로 지구당 부활의 문제는 반드시 관철되어야 할 원칙의 문제라기보다는 정당의 변화 및 국민이 이를 인정하는 등 상황의 문제일 수 있다. 변화는 없는데 제도를 20년 전으로 되돌려 놓는다면, 똑같은 문제가 다시 발생하여 국민들의 정치 불신을 더욱 심화시킬 가능성이 매우 높은 것이다.
앞으로 여야 당대표 회담에서 이 문제가 다루어진다면, 지구당 부활이라는 결론보다는 어떤 전제 하에서 어떤 방식으로 부활시킬 것인지, 부작용의 최소화를 위해 어떤 보완장치가 필요할 것인지에 대해 실질적인 논의가 필요할 것이다. 이런 과정을 통해 진정한 협치가 이루어진다면, 그것이 국민들의 정치불신을 완화시키는 중요한 계기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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