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n광장] 계급장 떼고 인생을 즐겨라

파이낸셜뉴스 2024. 8. 26. 1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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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병두 보험연수원장
이제 막 퇴직 후 첫걸음을 내딛는 베이비부머들의 고민을 많이 듣는 편이다. 건강은 기본이다. 건강 얘기로 시작해서 건강 얘기로 끝나는 날도 있다. 젊었을 적에는 건성건성 들었지만 이제는 남의 일이 아닌 나의 일로 느껴지기 때문이다.

재테크 역시 가장 큰 관심사이지만 남성들은 거의 대화의 소재로 올리지는 않는다. 재산이 많은 사람은 자랑 같아서 말을 못하고, 없는 이들은 자기가 살아온 삶을 재산이라는 하나의 척도로 평가받기 싫은 탓도 있을 것이다.

재산에 관계없이 공통된 고민은 백세시대에 남아있는 길고 긴 인생을 어떻게 살지에 대한 것이다. 직장 생활을 오래 한 경우라면 회사에서 전직 퇴직 준비를 할 수 있게 도움을 준다. 어느 회사는 퇴직 후 3년 이내에 자살률이 높다는 점 때문에 퇴직상담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복지가 잘 되어있는 회사는 50세, 55세, 59세 세번에 걸쳐 퇴직 대비 교육을 제공한다. 퇴직은 50세부터 미리미리 준비하라는 것이다. 또 나이가 들수록, 퇴직이 임박할수록 생각이 달라지기 때문에 주기적·반복적으로 교육 기회를 제공한다.

인상 깊게 봤던 퇴직 교육은 어느 지방경찰청의 경우이다. 양성평등교육이 가장 앞자리에 놓여 있다. 평생을 경찰관으로 봉직한 남성이라면 아무래도 가정 일에 소홀할 수 있다. 직장생활을 할 때처럼 퇴직 이후 가정생활을 하면 낭패 보기 십상이다. 음식물쓰레기 버리는 일을 포함하여 가사노동을 반분할 생각을 해야 한다. 그렇지 않고 '젖은 낙엽 증후군'에 빠져서 가정 내의 모든 것을 의탁하기 시작하면 잦은 말다툼으로 노후가 불행해진다.

남성들은 재직 시에 맺었던 인간관계의 90%가 5년 이내에 사라진다고 한다. 알고 보면 진실로 나를 좋아서 만났던 사람들이 아니다. 일과 직위로 얽혀 있어서 관계가 만들어지고 유지되었던 것이다. 어느 회사의 퇴직 사원들끼리 모인 단톡방에서 있었던 일화이다. 새로 정년퇴직하는 후배 세대들도 초대하기로 했는데 반응이 없었다. 알고 보니 회사 다닐 때도 선배 모시느라고 힘들었는데 퇴직해서까지 불려다녀야 하느냐는 소리를 들었다고 한다.

이력서를 더 이상 준비하지 않아도 되는 시기가 온다. 과거에는 남은 인생을 살다가 간다고 해서 여생이라고 했다. 지금은 남은 인생이 더 긴 백세시대이다. 그래서 본생을 살아가야 한다. 넷플릭스에서 어떤 영화를 볼 것인가를 결정하지 못해 몇 번이고 이것저것 프로그램을 탐색하다가 만 경험이 있을 것이다. 나중에는 검색만 했던 프로그램인지, 실제로 본 것인지조차 헷갈린다. 이런 어려움을 선택장애(FOBO·Fear of Better Option)라고 한다. 이 시간에 더 좋은 것을 볼 수 있을 텐테, 그렇지 못한 것을 선택해서 시간만 보내는 것이 아닌가 하며 결국 시간을 허비하는 것이다.

은퇴를 하는 세대들이 갖는 첫번째 고민이 이것이다. 그러다가 이도저도 못하고 끝난다. 나에게 맞는 것이 무엇인지, 내가 무엇을 하면 즐거워할지를 몰라서 허송세월하는 경우이다. 자신이 없어한다. 어떤 계급장을 가진 사람들이 올지 몰라서 소심해지는 경우도 있다. 나는 이런 친구들에게 무엇이든 해보라고 권고한다. 돈이 없으면 없는 대로, 있으면 있는 대로 배우고 할 수 있는 것들이 너무나 많은 세상이다. 과거를 잊고, 계급장을 떼어 버리고 한 명의 시민으로서 인생을 즐길 줄 알아야 한다.

아무도 당신이 과거에 어떤 일을 했는지 크게 관심을 갖지 않는다. 오늘을 잘 즐기고 보람 있게 살면 가장 큰 부러움의 대상이다. 아니, 누구의 부러움을 살 이유도 없다. 그냥 나 자신이 즐거우면 될 뿐이다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에 이런 대사가 있다. "삶은 한 번이지만 올바른 선택을 할 수 있는 기회는 매일매일 있다." 이 말을 바꾸어서 들려주고 싶다. 삶은 한 번뿐이지만 새로운 경험을 하고 즐길 수 있는 기회는 매일매일 있다. 주저하지 말고 인생을 즐겨라.

민병두 보험연수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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