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재 골든타임’ 가르는데… 소방차 ‘길막’ 강제처분 2024년 0건 [심층기획-불법주차에 가로막힌 소방차]
강제처분 따라 출동시간 최대 69초차
초기화재 진압 위한 중요 요소로 작용
부천 화재 때도 사다리차 진입 못해
2018년 소방기본법 개정… 기준 마련
실제 화재 현장 강제처분 사례 드물어
소방관들 “민형사상 책임 부담” 토로
26일 소방청에 따르면 올해 소방차의 현장 진입을 막는 불법주차 차량을 강제처분한 사례는 한 건도 없다. 실제 주정차된 자동차에 가로막혀 사다리차 등 소방차량이 진입하지 못해 화재 피해를 키우는 상황이 반복되고 있으나, 현장에서 차량 강제처분은 거의 실시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한국방재협회의 ‘소방차 출동 실험을 통한 골목길 주정차 관리 방안 연구’ 결과에 따르면 골목길에서 차량 강제처분 유무에 따라 출동 시간이 최대 69초가량 감소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꺾여 있는 골목길에 차량과 상자가 소방차 진입을 가로막는 상황을 가정하고 진행한 시험에서 한 팀은 차량과 상자를 모두 이동시키며 적극적인 강제처분을 했고 다른 팀은 상자만을 이동시켰다. 연구 결과에서는 적극적으로 강제처분한 팀의 출동 시간이 56.5% 단축됐다.
이번 부천 화재에서도 사다리차가 주차된 차들로 현장에 진입하지 못해 아쉬움을 낳았다. 실제 현장을 확인해보면 좌우 양측의 건물 주차장 진입로를 제외하고 인도와 인접한 도로가 대부분 지정 주차구역이었다. 해당 구역이 양쪽으로 약 3.6m(각 1.8m), 중앙의 일방통행로는 5m 정도였다. 고가사다리차 차체(2.5m)와 지지대를 고정시킬 최소한의 폭에 못 미쳤다. 당시 현장 근처에는 70m 높이의 굴절 사다리차 외에도 54m 고가사다리차 1대가 대기 중이었지만 무용지물이었다.
소방청 등에 따르면 불법 주정차 차량의 강제처분 기준을 명확히 한 ‘소방기본법’은 2017년 29명의 목숨을 앗아간 충북 제천시 스포츠센터 화재를 계기로 개정됐다. 개정 전에는 소방활동을 위한 처분으로 손실을 본 자에 대한 구체적 손실보상 절차가 없었다. 그러나 개정안에서 ‘법령을 위반하여 소방자동차의 통행과 소방활동에 방해가 된 경우는 제외한다’고 명시해 소방활동에 방해가 된 경우에는 보상하지 않는 것으로 법이 개정됐다.
그러나 실제 화재 현장에서 개정 내용이 적용되는 경우가 극히 드물다는 게 문제다. 지난해 화재진압 과정에서 불법 주정차된 차량을 강제처분한 사례는 서울과 인천에서 2건에 불과했다. 인천의 경우 지난해 2월 미추홀구 주안동 소재 빌딩에서 화재가 일어나 소방차 진입을 위해 정차된 오토바이를 들어 이동시킨 사례였다. 비교적 손쉽게 들어 옮길 수 있는 오토바이마저도 신중하게 이동조치를 할 만큼, 현장에서는 강제처분이 민감한 사안이라는 것이다.
경력 7년의 세종소방본부 소속 한 소방관은 “민원이라도 들어올까 싶어 화재 현장에서 강제처분은 사실상 기대할 수 없다”며 “미국처럼 강제력이 있는 것도 아니고, 오롯이 현장에 나간 소방관들이 다 책임져야 하는 구조이기 때문”이라고 토로했다.
강제처분 매뉴얼의 현실성이 부족하다는 점도 요인으로 지목된다. 소방청의 ‘강제처분 처리 매뉴얼’에 따르면 주정차 차량으로 인한 통행장애가 발생할 경우 우선 이동조치를 요구한 뒤 이동이 어려울 경우 강제처분 이유를 설명하고 지휘대장의 지시를 받는 절차를 거쳐야 한다. 급박한 화재현장에서 이런 절차를 모두 지키기가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강제처분 조건도 ‘재산권 제한에 상응하는 합리적 비례관계를 갖춘 경우’로 모호하다.
이용재 경민대 교수(소방안전관리)는 “(강제처분에 대한) 면책특권 등 법이 많이 개선된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현장 소방공무원 입장에서도 구상권 등 책임 소재를 두고 논란에 휘말리게 되면 부담인 데다 승진에도 영향받을 수 있다는 생각에 현실적으로 어려운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한편 경기남부경찰청 부천 호텔 화재 수사본부는 업무상 과실 치사상 혐의로 호텔 업주 A씨와 명의 업주 B씨를 형사 입건하고 출국 금지 조치했다고 이날 밝혔다. 두 사람은 임대인·임차인 관계로 파악됐다. 또 경찰은 현재까지 사고 생존자 및 목격자, 직원 등 15명에 대해 참고인 조사도 벌였다. 이를 통해 불이 왜 발생했는지 등을 중점적으로 살펴본다는 방침이다.
이병훈·구윤모·이예림 기자, 부천=강승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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