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 후 연락하면 8400만원 벌금…우리나라는?
‘연결되지 않을 권리’ 프랑스에서 처음 도입
벨기에·스페인 이어 영국 노동당도 추진 움직임
국내, 2016년 법안 발의됐지만 논의없이 개정안 폐기
퇴근 후 업무지시 연락을 할 경우 8400만원 가량의 벌금을 부과하는 내용의 법안이 호주에서 시행된다. 이 법은 프랑스에서 처음 시작된 이후 유럽 일부 국가가 시행 중이며, 최근에는 영국도 추진 중이다. 우리 국회에서도 관련 법안이 발의됐지만, 앞서 2016년에도 비슷한 법안이 논의 없이 폐기된 적 있어 법안의 처리과정이 주목된다.
26일(현지시각) 로이터통신·가디언 등 외신에 따르면 호주에서는 이날부터 비중소기업(특정 시간에 15명 이상 직원이 근무)에 한해 직장 상사로부터 ‘연결되지 않을 권리(right to disconnect)’를 보장하는 법률(Fair Work Amendment Act 2024)이 시행된다. 해당 법안은 1년 후인 2025년 8월26일부터 15인 미만 중소기업에도 모두 적용된다.
법안은 퇴근 후 회사로부터 업무상 연락을 받지 않도록 하는 것이 골자다. 근로자 개인의 사생활을 보호하고 업무상 피로를 덜 느끼도록 한다는 취지다. 이를 어길 경우 기업은 최대 9만4000호주달러(약 8400만원)의 벌금을 부과받게 된다.
물론 직원에 대한 연락이 꼭 필요한 경우에는 연락을 할 수 있다. 다만, 연락이 꼭 필요한지 여부에 대해 서로 생각이 다를 수 있는데, 이같은 분쟁은 회사 내에서 논의해야 한다. 만약 회사에서 해결이 불가능하다면, 호주 공정작업위원회(FWC)에 맡겨 분쟁을 처리할 수 있다.
◆프랑스에서 최초 시행...영국도 내놨던 그 법=직장인들이 퇴근 후 회사로부터 연락을 받지 않도록 하는 내용의 법률은 2016년 노동법(El Khomri law) 개정을 통해 2017년 프랑스에서 최초로 시행됐다. 근로자가 50명 이상인 회사는 직원이 업무가 종료된 후 연락이 닿지 않거나 응답하지 않아도 되도록 하는 것이 골자다.
법률 시행은 2017년이지만, 사회적으로 ‘연결되지 않을 권리’에 대한 개념이 생겨난 것은 그 이전이다. 2004년 프랑스 법원은 직원이 정규 근무 시간 외에 업무용 전화를 받지 않아 해고한 것은 정당하지 않다고 판결한 것이 시발점이다.
프랑스 이후 벨기에, 스페인, 이탈리아 등 다른 유럽 국가들도 비슷한 취지의 제도를 시행 중인 것으로 전해진다.
최근에는 영국 정부도 제도 도입을 고려하고 있다. 영국 노동당은 업무 시간 외에 메일이나 문자,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한 메시지를 차단할 권리, 이른바 ‘전원을 끌 권리(right to switch off)’를 고용 계약에 보장하는 노동개혁을 추진 중이다. 유럽 일부 국가에서 ‘연결되지 않을 권리’가 생산성 향상에 기여한다는 것을 근거로 제시한다. 다만, 야당인 보수당은 생산성 효과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며 오히려 기업에 부담을 줄 수 있다는 입장인 것으로 알려졌다.
◆국내 2016년 법안 논의 없이 폐기…22대 국회 재발의=우리나라에서도 ‘연결되지 않을 권리’의 취지가 반영된 법안이 국회에서 발의됐지만 법안 처리 가능성은 요원해 보인다.
22대 국회에서는 7월29일 박홍배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연결되지 않을 권리’를 보장하는 내용의 ‘근로기준법 개정안’을 대표발의한 바 있다. 근무시간 외에 전화나 전자문서, 카카오톡 등을 통해 업무지시를 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 골자다.
박 의원이 제시한 2016년 한국노동연구원 자료에 따르면, 직장인의 약 70%가 퇴근 후에도 업무지시와 자료요청을 받은 적이 있고, 이 중 50.6%가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고 조사됐다. 스마트 기기를 활용한 초과 근무시간은 주당 11.3시간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나기도 했다. 조사시점을 고려하면 지금은 더 심각해졌을 가능성이 높다.
다만, 법안의 처리 가능성은 요원해 보인다. 앞서 2016년에도 신경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근로자의 사생활 자유 보장 등 헌법에서 정한 국민의 기본권을 보장하기 위해 근로시간 이후 연락을 금지하는 내용의 ‘근로기준법 개정안’을 대표발의했으나 소관 상임위원회인 환경노동위원회에서 한 차례도 논의되지 못한 채 임기 만료로 폐기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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