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사다리차로 구조 어려웠나…부천 화재현장 가보니
호텔 진입로 쪽은 인도까지 포함할 경우 가능하지만 경사면
(부천=연합뉴스) 황정환 기자 = 부천 호텔 화재 당시 고가 사다리차를 현장에 배치하고도 구조작업에 사용하지 않은 것을 놓고 유족들이 비난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26일 소방 당국에 따르면 최초 신고자인 호텔 관계자는 지난 22일 오후 7시 39분 119에 신고하면서 호텔 이름과 함께 810호(7층)에서 불이 났다고 발화지점까지 정확하게 전달했다.
이후 화염과 함께 삽시간에 퍼진 연기 때문에 탈출하지 못한 투숙객들도 119에 잇따라 자신의 객실 위치를 알리며 구조를 요청했다.
소방 당국의 현장 출동 시점부터 810호를 중심으로 화재 진압과 함께 7층 투숙객들의 구조에 집중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실제로 소방 선착대가 현장에 도착한 오후 7시 43분에도 7층의 상당수 투숙객은 생존해 있었다.
7층 투숙객인 A(28·여)씨는 당일 오후 7시 57분 어머니에게 전화를 걸어 "나 죽을 거 같거든. 5분 뒤면 숨 못 쉴 거 같아"라고 고통을 호소했다.
다른 7층 투숙객 B(25)씨도 오후 7시 57분 '엄마 아빠 OO(동생이름) 모두 미안하고 사랑해'라고 마지막 문자를 남겼다.
807호 투숙객인 30∼40대 남녀 2명은 오후 7시 55분까지 창가에서 구조를 요청했다.
그러나 A·B씨는 객실에서 심정지 상태로 발견돼 숨졌고, 807호 투숙객 2명은 에어매트로 뛰어내렸다가 숨졌다.
전체 사망자 7명 중 6명이 7층 투숙객, 1명이 8층 투숙객이었지만 7∼8층 투숙객 모두가 숨진 것은 아니다.
806호에 머물던 간호학 전공 대학생은 119 안내에 따라 연기가 들어오지 않도록 화장실 문을 수건으로 막고 수십분을 버티다 구조됐다.
이를 놓고 유족들은 에어매트가 아니라 고가 사다리차를 활용해 구조를 해야 했다고 주장한다.
B씨 아버지는 지난 25일 연합뉴스 기자에게 "사다리차를 배치해서 구조 작업이 제대로 이뤄졌으면 아들은 살았을 것"이라며 "소방 당국이 호텔 화재에 맞는 장비 투입 매뉴얼이 있을 텐데 어디에도 사다리차는 없었고 이는 명백한 인재"라고 분통을 터뜨렸다.
전문가들도 사다리차 투입 여건이 허락된다면 적극 활용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공하성 우석대 소방방재학과 교수는 "에어매트는 높이가 높을수록 인체 충격이 크고 높을수록 가운데로 뛰어내리기도 쉽지 않다"며 "사다리차 펼치는 시간과 에어매트 설치 시간이 큰 차이가 없어 사다리차 투입 여건이 되면 적극 활용해야 한다"고 말했다.
실제로 한국소방산업기술원(KFI)의 '소방고가사다리차의 인정기준'을 보면 30m 미만 고가사다리차의 경우 최대 상승·신장 작동시간을 1분 30초 이내로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부천소방서는 화재 당시 높이 70m까지 구조할 수 있는 굴절 사다리차 1대와 높이 53m의 고가 사다리차 1대를 현장에 배치했지만 사용하지는 않았다.
화재 초기 소방 당국은 "선착대가 도착할 당시 (호텔) 내부에 이미 연기가 가득 차 있었다. (객실) 창문으로 분출되는 상황이었다"며 건물 진입에 어려움이 있었다고 설명했다.
또 "호텔 주변 불법주차와 지정 주차구역 차량이 있어 7.5m 폭이 확보돼야 하는 사다리차를 투입할 여건이 안 됐고 에어매트가 구조에 더 적합하다고 판단했다"고 해명했다.
화재 발생 닷새째인 26일 호텔 현장을 다시 찾아 살펴본 결과, 소방 당국의 해명처럼 도로 폭이 고가 사다리차를 자유자재로 사용할 수 있을 정도로 넉넉하지는 않았다.
기본적으로 2.5m 폭의 고가사다리차를 사용하려면 좌우 지지대 역할을 하는 아웃리거가 각각 2.5m여서 7.5m 폭이 확보되야 한다.
여기에 고가사다리를 수직으로 펼칠 수 없고 약간의 기울기를 둬 건물 외벽을 지지해 펼쳐야 하기 때문에 최소 수 미터의 이격거리가 더 필요하다.
부천 호텔 앞 도로는 폭이 9m이지만 양쪽에 지정 주차구역 폭이 각각 1.5m여서 이를 빼면 6m 폭밖에 나오지 않는다.
이 도로는 일방통행 도로여서 평소 불법주차 차량이 없는 편이지만 지정 주차구역 폭만 빼도 단독으로 소방 사다리차를 설치하긴 어려운 상황이었다.
다만 호텔 주차장으로 들어가는 진입로 쪽은 한편의 주차구역이 없어 도로 폭이 7.5m까지 나오고, 인도 폭 3m까지 합치면 10.5m의 폭이 확보돼 물리적으로 사다리차 사용이 불가능한 것만은 아니다.
그러나 에어매트가 설치됐던 이곳의 바닥은 경사면이서 고가 사다리차 고정에 또 다른 변수가 발생했을 수 있다.
일선 소방관들도 고가사다리차는 현장 상황에 따라 탄력적으로 판단해야 할 사안이라고 입을 모은다.
인천의 한 소방서 관계자는 "사다리차를 전개하는 데 필요한 시간 또는 도로 폭은 차량 기종에 따라서도 달라지기 때문에 현장 상황을 고려한 판단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담당 소방서인 부천소방서 관계자는 "사다리차를 바닥에 고정하는 장치를 설치해야 하는데 주변에 주차된 차량이 있어 도로 폭이 안 나온 것 같다"며 "현장에서 에어매트 설치가 사다리차 투입보다 신속한 대응이 가능하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이번 화재는 지난 22일 오후 7시 34분 부천시 원미구 중동 호텔에서 발생해 7명이 숨지고 12명이 다쳤다.
hwa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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