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민부 교수의 지리로그] 서늘하고 겨울 긴 환경…특화작물 배추, 7월 심어 9월 수확
안반데기·안반덕으로 알려진 지역
9월 말부터 시작되는 휴경기에는
퇴비·녹비 덮어둬 토양유실 예방
고랭지(高冷地·alpine region) 농업은 상대적으로 기온이 낮은 고지대에서 가을 작물을 재배하고 여름철에 수확하는 농업방식을 말한다. 기후적으로 고도가 100m 상승할 때마다 기온은 0.6도씩 떨어진다. 즉 고도가 1000m 상승하면 기온은 6도가 내려간다.
따라서 여름철에 이러한 고지대는 피한지로 관광지 역할도 한다. 대관령이 대표적이다. 농업지리적으로 해발고도 400~600m를 준고랭지, 600m 이상을 고랭지로 취급한다. 지역마다 약간씩 차이는 있지만 우리나라에서는 1000m 이상 되는 고랭지들이 많다.
1960년대까지만 해도 산지의 농민들은 조방적(粗放的·작물 밀도가 낮은) 농업으로 자급자족을 해왔다. 거슬러 올라가면 산지 피난민과 화전민의 농업에 기원한다. 1960년 이후 화전에 의한 삼림훼손이 심해지자 경제개발의 일환으로 국가에서는 산지농민들을 평지로 이전하고, 헐벗은 산지에 녹화사업을 시작했다. 일부 산지농은 화전(火田)에서 숙전(熟田)으로 이어지면서 태백산과 소백산 등지의 고랭지 농업으로 발전해왔다.
강원도 피덕령 지역을 사례로 고랭지 농업을 살펴본다. 강원도 강릉시와 평창군을 가르며 남북으로 달리는 산지로 북쪽에서부터 고루포기산(1238m), 피덕령(1007m), 화란봉(1069m), 석병산(1055m), 옥녀봉(1191m) 등으로 이어진다. 태백산지의 주맥을 이루고 있으며 소위 백두대간의 중앙부를 형성한다. 피덕령은 이 분수령 산지에서 가장 낮은 곳으로 영동과 영서를 잇는 통로에 위치한다. 높은 산지의 펑퍼짐한 곳이라 안반덕 혹은 안반데기로 부른다.
2005년 조사에서 피덕령 지역은 강릉시 왕산면 대기4리로 2004년까지 농가 36가구가 고랭지 농업에 종사하고 있으나, 겨울철까지 상주하는 가구는 단 한 가구였다. 이것은 가을부터 다음 봄까지 휴경기가 매우 길고, 많은 눈과 찬바람 등 기후조건이 불리하며, 또한 고랭지 농업으로 얻어진 비교적 많은 수입으로 자녀 교육을 위해 강릉시, 평창읍 등으로 이동해서다. 이때 부리던 소들은 휴경 동안 인근 평지 농가에 하숙을 시킨다.
피덕령 지역의 기상자료로 인근 용평을 보면 연평균 기온은 6.5도로 대관령과 거의 유사하다. 서울(12.8도)이나 강릉(12.9도)에 비해 6도가량 낮다. 8월 평균기온도 18.4도에 불과하며, 2월 평균기온은 영하 7.0도로 전형적인 고랭지 기후를 보인다.
이 지역의 연평균 강수량은 1500~2000㎜로 우리나라 평균 1200㎜보다 훨씬 높다. 기류를 맞이하는 산지 지형성 강우로 하계 호우현상이 잘 나타나고 8~9월에는 태풍의 영향으로 강수량이 비교적 많은 편이다.
겨울철 강한 바람, 안개와 함께 적설량도 많아 5월까지 잔설이 보인다. 이러한 기후적 특성으로 삼림 피복이 농경지 개발로 인해 제거되면 토양침식, 표토유실, 산사태, 토사유출 현상이 나타난다. 이를 막기 위해 더러는 등고선 계단화, 유출로 확보 등 장치를 한다.
이 지역 농가에서 재배되고 있는 작물들은 감자, 배추, 무, 당근, 호박 등이며 특히 배추 중심의 채소들이 특화되고 있다. 피덕령 고랭지 농업이 급속도로 확산된 것은 1980년대로, 그 이전에는 하천 주변의 좁은 경지를 따라 소규모로 논농사가 이루어졌다. 물론 산지에는 화전농업이 조선시대 말에도 성행했으며 일제강점기에도 고루포기산의 정상까지 감자, 콩, 메밀, 귀리 등의 화전농이 행해졌다.
1965년 실시된 화전정리사업과 함께 평창군 도암면에 씨감자 관련 기관들이 입지하면서 피덕령까지도 고랭지 농업의 영향을 받게 됐다. 1965년부터 정부 주도로 200㏊에 이르는 산정이 개간됐고, 일정 규모의 경지를 임차한 약 100가구가 이주했다.
그러나 임차한 경지가 협소해 수익성이 낮아 1970년 초에는 11가구만 남기고 모두 떠나게 되었고, 1972년 피덕령이 씨감자 재배단지로 지정된 이후 현재와 같은 30여가구로 증가했다. 이 지역에서 수확한 고랭지 채소는 운반거리를 최소화해 피덕령을 넘어서 영동고속도로를 이용, 수도권으로 운송된다.
피덕령의 재배작물은 배추와 감자 원료인 씨감자가 대표적이다. 토양에 자갈이 많아 다른 작물은 재배하기 힘들다. 피덕령을 기준으로 북쪽의 고루포기산 쪽과 남쪽의 옥녀봉 쪽의 경작지가 1년 주기로 씨감자와 배추를 돌려짓기한다. 피덕령은 해발고도가 높아 다른 지역에 비해 기온이 낮고 겨울이 길어 무상일수가 짧아 파종 시기는 늦고 수확 시기는 빠르다. 대체로 배추는 7월 5일에서 15일 사이 이식해 9월 5일에서 15일 사이에 수확하고, 씨감자는 4월 25일에서 5월 10일 사이 파종해 9월 10일에서 20일 사이에 수확한다.
작물 재배가 없은 휴경기는 짧게는 9월 말에서 4월 중순까지 약 6개월이며, 길게는 9월 중순에서 7월 초순까지 거의 10개월이다. 경작이 끝나고 난 뒤 대부분 그대로 방치되지만, 최근 토양침식에 따른 표토유실과 지력감소를 방지하기 위해 계분이 든 퇴비를 농지면에 덮거나, 호밀 등 녹비 작물을 이용한다. 녹비는 수확 후 심은 작물 자체를 비료화한 것이다. 호밀은 성장 동안 토양유실을 방지하고 수확 없이 그 자체가 비료 작용과 함께 사태방지 작용에 기여한다.
지난 12일 안반덕을 답사차 다녀왔다. 지난 30~40년간의 변화가 많이 느껴졌다. 산길 이동로도 잘 만들어져 있었다. 해발고도 800m에 있는 숙소의 새벽 기온은 16도였다. 현재 마을 이름으로 정착된 안반데기는 대부분 배추가 재배되고 있으며 이달 말부터 출하된다고 한다. 마을의 사정이 나아져서 띄엄띄엄 잘 만들어진 주택들이 들어서 있다. 현재 각 농가는 상당한 면적에 배추를 재배하면서 어느 정도 수익이 높은 편이다. 이 마을에는 카페와 전망대도 조성되어 있어 많은 관광객이 방문한다. 현재 국가연구기관인 한국고령지연구소는 고랭지 농업기술 연구와 개발에 중추적 역할을 하고 있다.
이민부 한국교원대 지리교육과 명예교수
rsunjun@fnnews.com 유선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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