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텔레그램 대표 체포, 한국도 ‘플랫폼 익명 범죄’ 척결 나서야
전 세계적으로 9억여명이 사용하는 온라인 메신저 ‘텔레그램’ 창업자 겸 최고경영자 파벨 두로프(40)가 프랑스에서 전격 체포됐다. 프랑스 당국의 공식 발표는 나오지 않았지만 그의 혐의는 텔레그램 부실 관리라고 한다. 텔레그램을 통해 마약 밀매, 성착취, 폭력·테러, 가짜뉴스 확산 등이 발생하고 있는데도 수수방관하고 있다는 것이다.
여느 문명의 이기처럼 텔레그램도 빛과 그림자가 있다. 2013년 독일에서 출시돼 현재 아랍에미리트연합 두바이에 본사를 둔 텔레그램은 강력한 보안성이 특징이다. 이른바 ‘비밀 대화’는 제3자가 중간에서 가로채기가 불가능해 통신 비밀을 보호하고 언론 자유를 보장한다. 러시아·이란·홍콩 등지의 민주화·인권 운동 과정에서 소통 도구로 활용되고, 국내에서도 박근혜 정부 시절 ‘사이버 망명’ 메신저로 주목받았다.
그런데 이런 보안성 때문에 텔레그램은 ‘n번방 사건’에서 보듯 각종 유해 콘텐츠 확산과 익명 범죄의 온상이 되고 있다. 26일 서울경찰청에 따르면 올해 서울에서만 초중고교생들의 텔레그램 ‘딥 페이크’ 사건 신고가 10건 접수됐다. 최근 발생한 ‘서울대 n번방’ ‘명문대생 마약 동아리’ 사건도 텔레그램 대화방에서 범죄가 이뤄졌다. 지난해 중국 해커가 한국의 CCTV 등을 해킹해 사생활 영상 4500개를 노출한 곳도 텔레그램이었다. 무차별적인 보이스피싱과 정부 대상 디도스 공격의 주요 무대도 텔레그램이다.
카카오톡 같은 국내 메신저는 개인 대화방이라도 법원 영장을 받아 수사기관의 압수수색이 가능하다. 그러나 텔레그램은 해외에 서버가 있어 한국의 공권력이 미치지 않는다. 대화 내용과 범죄 증거 등을 확보하려면 텔레그램 측의 협조가 필요하지만 텔레그램은 전혀 응하지 않고, 피해자들의 불법 촬영물 삭제 요구 등도 철저히 무시하고 있다.
텔레그램의 책임을 묻기 위해 최고경영자를 체포한 프랑스 수사 당국의 과단성 있는 행보에 주목한다. 독일과 브라질 등은 이미 앱 삭제와 벌금 부과 등으로 텔레그램에 제재를 가했다고 한다. 사생활과 언론의 자유는 헌법이 보장하는 불가침의 영역이다. 그러나 이런 가치를 지키는 것과 반인권·반인륜적 범죄를 처벌하는 것은 별개 사안이다. 성범죄 피해자의 피눈물을 외면하고 범죄 수사에 협조하지 않는 텔레그램에 한국 정부도 강력한 조처를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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