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에 칼을 심는, ‘폭군’의 김선호…“무언의 칼이 날아다니는 연기”
가끔은 한 마디 말이 한 발의 총알보다 강하다. ‘신세계’·‘마녀’ 시리즈로 유명한 박훈정 감독의 신작 디즈니+ ‘폭군’ 속 최국장이 바로 그런 말을 내뱉는 인물이다. 극 중 ‘폭군’이란 인간 병기를 만드는 프로그램의 이름이다. 그 마지막 샘플을 차지하기 위해 서로 쫓고 쫓기는 이야기를 담았다. 그리고 그 프로젝트를 진두지휘하는 최국장 역이 배우 김선호의 몫이었다.
‘폭군’은 차가운 누아르다. 김선호는 국가를 구한다는 명분으로 폭군 프로젝트를 주도한다. "왜 우리는 핵도 안 되고, ICBM(대륙간 탄도 미사일)도 안 되는데?"라고 외치는 최국장는 자신 만의 확고한 신념을 가진 인물이다. 전작인 영화 ‘귀공자’에서 김선호에게 광기 어린 킬러 역을 맡겼던 박 감독은 ‘폭군’에서는 또 다른 가면을 건넸다.
"박훈정 감독님과 또 하고 싶었다. 원래 박훈정표 누아르를 좋아한다. ‘폭군’은 ‘귀공자’와는 또 다른 분위기의 세계관을 갖고 있고, 누아르적인 요소도 섞여 있다. 정적이면서도 광기를 드러내는 최국장에 끌렸다. 감독님과 함께 산책하며 굉장히 많은 대화를 나누며 천천히 캐릭터를 구축해갔다."
김선호는 ‘폭군’에서 몸을 거의 쓰지 않는다. 그의 액션은 ‘말’이고, 도구는 ‘혀’다. 미국 정보 요원인 폴(김강우 분)과 나누는 대화에는 칼이 섞여 있다. 허허실실 웃으며 대화하지만 그 말들이 서로의 가슴과 정신을 할퀴고 벤다. 나른하고 지쳐보이는 최국장은 말 한 마디도 허투루 뱉는 법이 없다. 김선호가 이 인물에 매료된 이유다.
"선과 악을 모두 가진 캐릭터다. 지문에도 ‘초췌하고 피곤해 보인다’고 적혀 있었다. 폴과 최국장은 심리적으로 전쟁을 치른다. 최대한 몸에는 힘을 주지 않으면서도, 하고자 하는 말에 임팩트를 줬다. 그래서 몸을 쓰는 액션보다 더 고민이 많았다. 무언의 칼이 날아다니는 것처럼 연기해야 했다."
박 감독의 작품 속에는 매력적인 남성 캐릭터가 많다. ‘폭군’에도 노쇠하지만 여전히 날이 서린 킬러 임상(차승원 분)이 존재한다. 직접 붙는 장면이 많지 않지만 선배들의 그런 캐릭터 분석과 연기를 보는 것이 김선호에게 살이 되고, 약이 됐다.
"존경하는 선배들과 같은 작품 안에 담길 수 있다는 것이 행복했다. 차승원 선배님은 이번에 처음으로 작품을 함께하게 됐다. 붙는 장면이 많지는 않았기 때문에 선배님이 촬영할 때 빵을 사서 들고 가서 보곤 했다. 사담을 많이 나눴다. 배역과 일상생활을 분리하는 선배의 모습, 본인만의 루틴을 지켜야 연기에 좀 더 활력이 생긴다는 이야기를 듣고 공감했다. 존경심이 배가 되기는 기회가 됐다. 김강우 선배랑도 영화 ‘귀공자’ 에 이어 다시 연기합을 맞추게 돼 신이 났다. 둘의 ‘구강 액션’에 대한 반응도 좋은 편이라 너무 기쁘다."
박 감독과 손잡고 이미지 변신을 꾀한 김선호는 이제 ‘주종목’으로 돌아오려 준비 중이다. 앞서 ‘스타트 업’, ‘갯마을 차차차’ 등 밝은 분위기의 현대물에서 긍정 에너지를 뿜던 그는 차기작 ‘이 사랑 통역 되나요?’를 통해 로맨스물에 복귀한다. 로맨틱코미디물에 잘 어울린다는 칭찬에 그는 "잘 하는 법을 안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하지만 홀로 빛날 생각은 없다. 김선호는 상대방이 빛이 나야 자신도 빛날 수 있다는 것을 잘 안다.
"로맨스물은 서로가 상대방을 바라봐주는 만큼 빛난다. 그래서 차기작에서도 상대 배우에게 애정을 쏟고, 빛나게 해주는 것이 목표다. 그래서 연기합을 맞추며 리액션을 항상 고민한다. 개인적으로 돋보이겠다는 욕심은 내지 않는다. 다만 ‘김선호가 슬슬 그 인물로 빛이 나는 것 같은데?’ 혹은 ‘저 역할을 김선호한테 맡기면 훌륭하게 해내겠지?’ ‘또 보러 가야지’ 같은 믿음을 주는 배우가 되고 싶다."
안진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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