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나드 쇼의 자본주의 비판…사회주의 통념을 바로잡다
노벨문학상과 오스카상을 수상한 20세기 최고의 극작가 겸 비평가 조지 버나드 쇼(1856~1950)가 자본주의 체제에 비판적인 사회주의자였다는 사실을 아는 이들은 얼마나 될까. 1924년 처제로부터 한 통의 편지를 받은 그가 사회주의에 관한 86개 장(章)에 달하는 엄청난 분량의 '벽돌 책'을 써낼 정도로 확신적인 사회주의자였다면 말이다.
처제(메리 스튜어트 첨리)는 "사회주의에 대한 형부의 생각"을 알고 싶다며 몇 가지 질문을 더해 "명확한 답변"을 부탁했다. 3년에 걸쳐 생각을 정리한 답변이 1928년 세상에 나온 이 책 '자본주의+사회주의 세상을 탐험하는 지적인 여성을 위한 안내서'(원제 The Intelligent Woman's Guide to Socialism and Capitalism)다.
버나드 쇼는 "사회주의는 부의 분배 방식에 대한 하나의 견해일 뿐"이고, "분배에 관한 다른 의견들보다 반드시 더 낫다고 할 수도 없다"며 이야기를 시작한다. 놀라운 점은 자신의 처제는 물론이고 세상의 모든 지적인 여성을 위해 남자들이 독점하다시피 한 경제와 정치의 세계를 친절하게 설명하려고 노력했다는 점이다. 책은 막힘 없이 읽힌다.
한 세기 전(1928년) 세계는 1차세계대전과 스페인 독감 팬데믹의 후유증을 앓으며 경제대공황으로 치닫고 있었다. 산업혁명으로 눈부신 경제발전을 이뤘지만 극심한 빈부격차가 변화를 갈망하는 목소리로 변해갔다. 당대 지식인들은 새로운 시대정신으로 사회주의를 주장하고 나섰다. 그러나 자본가들 사이에서 사회주의에 반대하는 움직임도 적지 않았다. 쇼의 처제 첨리 여사의 질문도 여기서 출발했다. '사회주의가 대체 뭐길래?'
버나드 쇼는 소득평등화를 사회주의의 가장 필수적인 요소로 정의한다. 모든 사회 구성원이 기술과 노력, 나이, 젠더, 지능, 유산, 권력 등과 상관없이 동등한 소득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나는 지주이고 자본가이며 너무 부유해서 따로 부유세를 낼 정도다. ······ 그러니 내가 돈이 없어서 소득불평등에 반대하는 게 아니다. 나는 어지간히 많은 소득을 올리는 사람으로서 소득불평등에 반대한다. 하지만 나는 프롤레타리아로 사는 게 어떤 것인지, 그것도 가난한 프롤레타리아의 삶이 어떤 것인지 잘 알고 있다."
자신이 자본가이면서 지주였지만 버나드 쇼는 부자들의 불로소득을 정부가 세금을 통해 몰수해야 하고 산업의 국영화와 공영화를 통해 사적인 이익의 무한 추구를 통한 부의 편중을 막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극심한 소득격차와 자본권력에 의해 계급화된 사회 시스템 전반이 붕괴되는 현상을 지켜봤기 때문이다.
그는 "자본주의는 몇 명의 게으른 사람들을 아주 부유하게 만들고, 대다수의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은 아주 빈곤한 처지에 빠지게 한다"고 비판했다.
이 논쟁은 한 세기를 이어왔고 사회주의는 지향점과 달리 내부로부터 몰락했지만 자본주의 역시 극심한 진통을 겪으며 오늘날 유럽에서 사회민주주의로의 전환을 가져왔다. 비즈니스, 시장, 교역 등 서로 자유롭게 물건을 생산하고 서로에게 판매할 수 있게 해주는 경제 시스템이 자본주의라고 대부분 생각하지만 불과 500년 전 이 제도가 태동한 유럽에서 조차 '반민주주의적인 체제'라는 비판이 끊임 없이 나오는 실정이다.
버나드 쇼의 핵심 명제는 소득평등화다. 그는 "불평등을 바로잡지 않으면 몰락을 피할 수 없다. 독재자를 세우든 자유를 부르짖든 다 소용없는 일"이라며 '보편타당'한 가치 지향을 역설한다.
그는 "소득평등화를 지향하는 것이 사회주의이고 소득평등화가 이루어진 사회란 모두가 상호 결혼가능한 사회"라는 단순명쾌한 정의를 바탕으로, 소득평등화는 실현 불가능하다느니 설사 실현되더라도 어차피 얼마 못 가 다시 지금처럼 될 거라느니 하는 반론을 이 책에서 가볍게 제압한다.
자본주의 사회의 계급과 불평등이 오늘날 사회 전반에 어떻게 침투하고 어떤 결과를 양산했는지 100년 전 버나드 쇼의 통찰이 여전히 유효하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조지 버나드 쇼 지음 | 김일기·김지연 옮김 | 뗀데데로 | 85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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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BS노컷뉴스 김민수 기자 maxpress@c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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