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류' 하남 증설설비, 전자파 아예 없어···"근거 없는 공포팔이만"
◆ '변전소 갈등' 파장 확산
'전자파 있어도 무해' 검증됐지만
정치권 부추기고 주민 반발 여전
송전선로 확충 지연 손실 눈덩이
광우병·日오염수 등 줄잇는 괴담
공포심 자극···사회적 비용 커져
“변전소가 증설되면 전자파 때문에 아이가 코피가 터지고 죽을 수도 있다고 걱정하셔서 놀랐습니다. 변전소의 전자파 문제는 학술적으로 이미 검증이 다 끝난 사안이거든요.”
경기 하남시의 동서울변전소 사업에 정통한 전력 업계의 한 관계자는 주변 지역 주민들의 분위기를 이렇게 전했다. 한국전력은 하남시 변전소 인근 주민을 대상으로 설명회를 일곱 번 개최했다. 하지만 주민들의 불안감은 여전하다. 정치권에서 이를 부추기는 측면도 있다.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의원(하남갑)은 동서울변전소 사업 불허에 “시민의 힘으로 시민의 건강권을 지켜낸 승리”라고 밝혔다. 변전소 갈등을 건강 문제로 끌어온 셈이다. 하남시 역시 사업 취소의 이유로 전자파를 우려하는 주민들의 반발과 변전소가 하남시민의 건강한 생활환경을 해친다는 점을 꼽았다. 하남시의회는 이날부터 동서울변전소 관련 행정 사무 조사에 착수했다.
전문가들은 한전이 증설하려는 시설에 인체에 유해한 전자파가 발생한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라고 입을 모으고 있다. 한전이 동서울변전소에 증설하려고 하는 초고압직류송전(HVDC) 변환 설비는 직류로 끌어온 전기를 교류로 변환해 가정과 기업에 공급하는 시설이다. 경북 울진에 위치한 (신)한울원자력발전소 8기와 강원 석탄화력발전소 8기에서 발전하는 17GW의 전력 중 8GW를 수도권으로 보내기 위한 시설이다.
동서울변전소에 들어오는 HVDC의 경우 직류여서 전자파가 아예 생기지 않는다. 교류는 플러스와 마이너스극이 바뀌면서 흘러 전자파가 발생한다. 유승훈 서울과학기술대 창의융합대학장은 “동서울변전소의 HVDC 변환 시설은 직류로 전기가 흐르는 것이기 때문에 전자파가 발생하지 않는다”며 “(전자파가 있다고 해도) 인체에 유해한 정도로 나오는 게 아니다”라고 잘라 말했다. 그는 “변전소에서 소음은 좀 발생할 수 있지만 방음을 한다든지 여러 방안이 있다”며 “변전소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이 있을 뿐 이미 양재와 여의도·건대입구 등에 변전소가 들어와 있다”고 덧붙였다.
실제로 학계에서는 변전소의 전자파가 무해하다는 것은 논쟁의 여지가 없다. 박종배 건국대 전기전자공학부 교수도 “전자파를 이유로 변전소 건설을 반대하는 것은 전공자 입장에서 동의할 수 없는 부분”이라고 설명했다.
한전의 판단 역시 같다. 실제로 한전이 전력연구원과 함께 올해 7월 측정한 결과에 따르면 동서울변전소 인근에 위치한 아파트 안쪽에서 측정한 전자파는 0.02μT(마이크로테슬라)로 일반 편의점 냉장고 측정치(0.12μT)보다 낮았다. 가정에서 사용하는 전자레인지나 드라이기의 전자파가 2.9μT 수준이다. 한전 측은 “전자파는 거리의 제곱에 반비례해 감소하기 때문에 100m 거리가 멀어지면 1만 분의 1로 감소해 주민 거주 시설에서는 전자파 우려가 낮다”고 전했다.
정부 안팎에서는 과학적 근거가 없는 주장이 반복되고 국민들에게 공포감을 심어주면서 사회적 비용만 커지고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동서울변전소만 해도 한전은 약 7000억 원을 들여 2026년 6월까지 사업을 완료할 예정이었다. HVDC 변환소를 짓지 못하면 막대한 재원을 들여 마련한 송전선로가 제 기능을 할 수 없다. 한전이 하남시를 상대로 법적 대응에 나서겠다고 밝혔지만 법적 다툼에서 이기더라도 송전선로 건설은 당초 계획보다 상당 기간 지연된다. 2014년 북당진 변환소 건설 당시 한전·당진시 소송은 대법원 판결까지 3년이 걸렸다.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에 전력이 제때 공급되지 못할 경우 손실은 천문학적으로 늘어날 수 있다.
이뿐만이 아니다. 야당은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와 관련해 ‘방사능 물고기’를 주장했지만 정부가 지난 1년간 국내 해역과 공해 등에서 시료를 채취해 4만 9600여 건의 검사를 진행한 결과 안전 기준을 벗어난 사례는 단 한 건도 없었다. 2008년 미국산 소고기 광우병 파동 당시에는 “미국산 소고기를 먹으면 광우병에 걸린다”는 괴담이 확산해 사회적 갈등이 극단까지 갔다. 2016년 경북 성주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 배치 때는 “사드에서 나온 전자파에 참외가 오염된다”는 이야기가 퍼졌지만 결국 사실이 아닌 것으로 드러났다. 손양훈 인천대 경제학과 교수는 “(변전소는) 조금만 떨어져 있어도 완전히 무해하다고 하고 그것이 검증됐는데 (정치권이) 극도로 과장하거나 왜곡해서 얘기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생각한다”고 지적했다. 전직 정부 고위 관계자는 “괴담을 퍼뜨려도 책임을 지는 경우가 없다”며 “국민의 공포심을 정치에 활용하는 일은 없어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세종=박신원 기자 shin@sedaily.comCopyright © 서울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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