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이버시가 테러 예방보다 중요"…텔레그램 CEO 체포가 낳은 논란
반발하는 텔레그램…"플랫폼 오용을 플랫폼에 책임지라는 건 터무니없다"
(시사저널=공성윤 기자)
강력한 보안성을 내세워 전세계 9억 명이 넘는 사용자를 확보한 메신저 '텔레그램'의 창업자가 프랑스에서 체포됐다. 텔레그램이 각종 범죄의 온상이 됐는데도 이를 방치했다는 혐의다. 이번 사건은 디지털 시대에 프라이버시와 범죄 예방을 둘러싼 논란에 불을 당길 것으로 관측된다.
텔레그램의 공동 창업자 겸 최고경영자(CEO)인 파벨 두로프(40)는 프랑스 파리 외곽의 부르제 공항에서 24일(현지시각) 긴급 체포됐다. 로이터와 가디언 등에 따르면, 프랑스 수사당국은 텔레그램이 사기, 마약 밀매, 조직 범죄, 테러 조장, 사이버 폭력 등 각종 범죄 도구로 활용되고 있음에도 두로프가 적절한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고 보고 있다. 수사당국은 이미 그에 대해 체포영장을 발부 받아 쫓고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러시아 출신의 두로프는 2021년 프랑스 국적을 취득했다.
'사이버 망명'까지 일으킨 텔레그램 보안성
텔레그램은 전세계적으로 보안성이 뛰어난 메신저 중 하나로 꼽힌다. 그 보안성의 핵심 기술은 '종단간 암호화(End-to-End Encryption)'다. 이는 메시지의 전송 과정을 모두 암호화하는 기술이다. 이 암호를 해독할 수 있는 열쇠는 메신저를 운영하는 업체가 아니라 메시지 수신자의 컴퓨터나 스마트폰에만 담겨 있다. 즉 메신저 업체는 이용자의 메시지를 볼 수 없다는 뜻이다.
따라서 업체의 서버를 압수수색해도 이용자의 대화 기록을 확보할 수 없다. 게다가 텔레그램의 경우 그 서버 위치마저 철저히 비밀에 부쳐져 있다. 이 같은 강력한 보안성이 알려지자 한때 국내에서 카카오톡을 떠나 텔레그램으로 갈아타는 '사이버 망명'이 일어나기도 했다. 특히 2022년 윤석열 대통령이 권성동 당시 국민의힘 원내대표에게 텔레그램으로 '체리 따봉'을 보낸 사진이 공개된 이후, 보안을 중시하는 정계 고위 인사들 사이에서 통용되는 메신저로 유명세를 탔다.
두로프는 과거 수차례 보안의 중요성에 대한 소신을 밝힌 바 있다. 그는 2015년 미국 IT매체 테크크런치가 주최한 컨퍼런스에서 "프라이버시는 궁극적으로 테러와 같은 나쁜 일에 대한 두려움보다 더 중요하다"고 발언했다. 이슬람 극단주의 무장단체 IS가 텔레그램을 테러 모의 수단으로 이용한다는 사실에 관해서다. 두로프는 이어 "IS는 (텔레그램이 아니라도) 다른 소통 수단을 찾을 테니 우리는 죄책감을 가질 필요가 없다"고 주장했다.
또 두로프는 2016년 정부의 정보 수집 권한을 강화한 한국의 '테러방지법'에 대해 "빅브라더와 같은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고 직격했다. 2018년에는 러시아 사법부가 수사에 비협조적인 텔레그램의 이용을 금지하려 하자 "프라이버시는 거래 대상이 아니다. 인권은 두려움이나 탐욕 따위에 굴하지 않는다"고 반발했다. 이 같은 거침없는 언행으로 두로프는 '인권과 자유의 수호자'란 수식어를 얻기도 했다.
"사생활 캐려고 인질 잡아"…"범죄자 암약하는 소굴"
이러한 배경 때문에 이번에 프랑스 당국이 두로프를 체포한 사실을 두고 설왕설래가 분분하다. 텔레그램 측은 성명을 통해 "두로프는 아무것도 숨길 게 없다"며 "플랫폼 또는 그 소유주가 플랫폼의 오용에 대해 책임지라는 건 터무니없는 주장"이라고 비판했다. 테슬라 CEO 일론 머스크는 자신이 인수한 소셜미디어 X(구 트위터)에 '두로프 석방(Free Pavel)'이란 해시태그를 달고 불어로 "자유 자유! 자유?(Liberté Liberté! Liberté?)"라고 썼다. 미국 국가안보국(NSA)의 기밀을 폭로해 러시아로 망명한 내부고발자 에드워드 스노든은 "프랑스가 사생활을 캐려고 두로프를 인질로 삼는 저열함을 보이고 있다"고 비꼬았다.
하지만 텔레그램에서 횡행하는 범죄를 방치할 수만은 없다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러시아의 글로벌 보안업체 카스퍼스키에 따르면, 올해 5~6월 텔레그램에 올라온 위법성 띤 게시물은 작년 동기 대비 53% 증가했다. 또 다른 글로벌 보안업체 SOC레이더는 2022년 범죄가 판치는 텔레그램의 요주의 채널 10개를 소개하며 "범죄자들이 암약하는 소굴"이라고 묘사했다. 국내에서도 성착취물이 대거 유통된 'N번방'이 텔레그램에 개설됐던 사실이 알려지며 사회적 지탄을 받았다. 북한의 해커집단으로 알려진 '라자루스' 또한 금전 탈취와 세탁 창구로 텔레그램을 이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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