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경포럼] 정치인이 배워야할 수학자의 소통법
서로 만나 소통하며
이해 높이는 과정이 수학
한국 정치는 지금 어떤가
정치적 의견이 다르면 밥도 같이 먹지 않는다는 요즘 세상에 해독제 같은 강의를 들었다. 뜻밖에도 수학자에게서 말이다. 김민형 영국 에든버러대 석좌교수가 최근 웅진재단(이사장 신현웅) 주최로 열린 '웅진 수학영재 장학생 하계 멘토링'에서 했던 강연은 정치인이 들으면 좋겠다 싶었다.
김 교수에 따르면 수학자들은 논문을 읽으며 혼자 끙끙대기보다는 "서로 만나서 얘기하는 것을 좋아한다"고 한다. '네가 이해한 것을 내게 설명해달라. 나도 내가 이해한 것을 설명해 줄게' 하는 식이다. 그래도 의견이 갈리면 비행기를 타고 이역만리 타국으로 날아간다. 상대와 일주일씩 의견을 나눈다. 그런 뒤에도 "당신이 틀렸어" "아니야 내가 맞아"라며 다툰다. 덧셈·곱셈과 같은 수학의 근본에 대해서도 이런 식으로 의견이 갈린 채 12년을 갑론을박 중이라고 했다. 근본에 대해 의견이 다르니, 수학계에 아주 큰일이 난 것처럼 보이지만, 김 교수는 "그렇지 않다"고 했다. 김 교수는 "합의란 결국 인간과 인간 사이에 소통이 일어나야 가능한 것"이라고 했다. 그런데 그 소통은 말로 하는 것이고, 말에는 오해가 따라붙기 마련이다. 의견의 불일치는 늘 있는 일이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이해를 높여나가는 것, 그게 "수학자들이 하는 일"이라고 했다.
김 교수가 그 같은 사례로 든 게 이른바 'ABC 추측' 이다. 이 추측은 가장 기본적 연산인 덧셈과 곱셈 사이의 관계를 탐구하는 문제 중 하나라고 한다. 이 추측이 증명된다면 수학의 많은 부분에 대한 이해를 획기적으로 바꿀 수 있다. 2012년 모치즈키 신이치 교토대 교수가 ABC 추측을 증명했다는 논문을 내놓았을 때 맞냐, 틀리냐로 논란이 일었다. 그래서 수학계의 노벨상이라는 필즈상 수상자를 비롯한 저명한 학자들이 영국 옥스퍼드대에 모였다. 모치즈키는 영상으로 참여했고, 그와 가까운 몇몇 학자가 현장에 모습을 드러냈다. 하지만 결론을 못 냈다.
이때 독일의 천재 수학자 페터 숄체가 나선다. 그는 교토로 날아가서 일주일간 모치즈키와 의견을 나눈다. 그러고는 "모치즈키는 X를 하고자 하는데 Y 때문에 틀렸다"는 취지의 글을 발표한다. 하지만 모치즈키는 "내가 하려는 건 X가 아니다"는 취지로 반박한다. 천재급 수학자들이 수학 문제를 풀면서 뭘 하려고 하는지에 대한 의견 일치도 못 본 셈이다.
하지만 김 교수에 따르면 그래도 괜찮다. 수학은 세상의 수학적 이치를 탐구해 가는 과정이다. 그 여정 중에 우리의 이해가 불완전한 경우도 당연히 발생한다. 중요한 건 서로 소통하며 수학적 진리에 조금씩 다가서는 것이다.
과학 중에서 가장 엄밀하다고 하는 수학이 이렇다면 정치에서 의견 불일치는 당연한 일이다. 그렇다면 정치인들도 수학자처럼 만나서 묻고 답하는 것을 좋아해야 한다. 그래야 세상에 대한 이해를 높일 수 있다. 윤석열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정치적) 견해가 다른 사람들이 서로의 입장을 조정하고 타협하기 위해서는 과학이 전제되어야 한다"고 한 바 있다. 김 교수의 강의를 듣고 보니 의견의 불일치를 받아들이고 소통하는 게 과학의 본질이라는 생각이 든다. 윤 대통령부터 그 본질에 충실했으면 좋겠다.
그러나 현실은 정반대다. 대통령과 제1야당 대표는 축하난 전달을 놓고도 소통이 엉망이다. 여야 대표는 만나서 회담한다고 하더니, TV 생중계를 놓고 으르렁거린다. 이런 식이면 민주주의는 죽는다. 과거 칠레가 그랬다. 1960년대만 해도 칠레는 민주주의의 모범이었다. "모든 논쟁은 칠레 와인병 안에서 해결된다"고 할 정도로 서로 만나 타협하는 문화가 발전했다. 하지만 1970년 대선 이후 좌파와 우파의 극렬한 대립 끝에 군부독재로 넘어갔다. 정치인들이 소통하지 않은 결과다.
[김인수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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