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찌거나 뼈말라 되거나’…극단의 몸에 갇힌 아이들
마른 몸에 대한 강박적 선호 문제
올바른 몸에 대한 인식 갖게 해야
아이와 즐기는 건강한 한끼에 집중
쿠킹클래스·색다른 미식경험 유도
턱없이 부족한 신체활동, 탕후루와 같은 자극적인 먹거리, 건강보다 미용을 추구하는 문화…. 다양한 요인 속에서 아이들의 몸이 위협받고 있다.
2022년 세계보건기구(WHO)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전 세계 5∼19살 아동·청소년 중 약 20%인 3억9000만 명 이상이 과체중이거나 비만으로 나타났다. 이는 1990년 8%에서 급격히 증가한 수치다. 특히, 코로나 팬데믹이 본격화한 2022년부터 전 세계 아이들의 비만율이 나라할 것 없이 치솟는 추세다.
한국 역시 예외가 아니다. 보건복지부가 지난 6월6일 발표한 ‘2023 아동종합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전 연령대에서 과체중·비만 비율이 20%를 넘어섰다. 특히 9~17살 비만율은 14.3%로, 5년 전 3.4%에 비해 4.2배 증가했다.
‘프로아나’ 지향 청소년 늘어
건강을 해치는 아동·청소년 비만이 심각해지는 가운데, 다른 한편으로는 마른 몸에 대한 강박적 선호도 문제로 떠오른지 오래다. 극단적인 체중 감량법을 좇으면서 식단을 제한하는, 이른바 ‘프로아나'(pro-anorexia)를 지향하는 아동·청소년이 나날이 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이런 경향은 어린 여성일수록 강하게 나타난다. 미디어에 등장하는 마른 연예인이나 인플루언서의 몸을 동경하는 아이들 사이에서 뼈가 보일 정도로 앙상한 몸매인 ‘뼈말라’는 도달해야 할 이상의 상태다. 극단적인 다이어트는 음식 섭취를 거부하는 섭식장애로 이어진다. 충동적으로 많은 음식을 폭식한 후 ‘먹토’(먹고 토하는 행위의 반복을 뜻하는 신조어)를 하거나, 음식 섭취를 거부하는 거식증에 시달리는 것이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프로아나 계정을 운영하는 박아무개양(16) 역시 “친구들을 만나서 어쩔 수 없이 음식을 먹고 나면 화장실에 가서 토한다”며 “모두 살로 갈 것 같은 기분이 들어 끔찍하다”고 말했다.
국민건강보험공단의 섭식장애 진료 현황에 따르면 10대 이하 여성 거식증 환자는 2018년 275명에서 2022년 1874명으로 97.5% 증가했다.
균형 잡힌 성장 중요한 시기
극단으로 치닫는 몸은 성장기 아동·청소년들에게 특히 치명적이다. 비만의 경우 성인 시기까지 쭉 이어질 확률이 높다. 비만은 지방세포 수가 증가하는 ‘지방세포 증식형 비만’과 지방세포 크기가 증가하는 ‘지방세포 비대형 비만’으로 나눌 수 있는데, 아동비만은 대체로 지방세포 증식형이기 때문에 살을 빼도 한번 늘어난 지방세포가 줄지 않기 때문이다.
이 시기 비만은 다양한 합병증과 성조숙증과 같은 건강 문제로도 이어진다. 전문가들은 “아동·청소년 비만은 초기 적절한 치료와 생활 개선이 중요하다”며 골든타임을 놓쳐서는 안 된다고 강조한다.
극단적 식이제한 역시 빈혈과 무월경증, 탈모, 영양결핍, 면역 기능 장애, 우울증, 강박장애 등 다양한 증상을 유발한다. 심지어 거식증은 치사율이 가장 높은 정신질환으로, 단순히 외모에 집착하는 한때의 행동으로 넘기기에는 심각한 문제다.
보호자 먼저 몸 인식 바로 가져야
비만과 거식증은 양극단에 있는 문제 상황이다. 관리법과 치료법이 매우 다를 수밖에 없다. 하지만 두 현상 모두 올바른 몸에 대한 인식을 갖고 유지하기 어려운 사회문화적 환경에서 비롯된다. 이 때문에 개별적인 개선법에 집중하기 앞서, 부모와 교사가 먼저 올바른 몸에 대한 인식을 갖고 건강한 주변 환경을 조성해주는 일이 중요하다.
질병관리청이 발간한 ‘우리나라 성인의 체질량지수 분류에 따른 체중 감소 시도율 및 관련 요인’ 보고서 역시 “불필요한 다이어트를 유도하는 사회 분위기가 지속되지 않도록, 건강한 체형 인식에 대한 교육뿐만 아니라 대중매체 등을 통한 사회 분위기를 형성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지적한 바 있다.
특히 비만이나 거식증을 개인의 문제로 여기고 비난하거나, 수치심을 주는 방식으로 잘못된 동기 부여를 하는 것은 금물이다. “그렇게 많이 먹으니까 살이 찌지” “그렇게 살 찌면(빠지면) 사람들이 싫어한다” 등의 비난성 말은 오히려 상황을 악화시킬 뿐이다.
몸에 대한 책이나 다큐멘터리 등을 함께 보면서 대화를 나누는 방식으로 아이가 자기 몸을 다른 관점으로 볼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는 편이 좋다. 유행과 또래문화에 민감한 특성을 고려해, 롤모델로 삼을 수 있는 적절한 유명인 사례를 함께 찾아보는 것도 방법이다.
도심 시장 돌며 다양한 식재료 경험
식이 조절을 위해서는 무엇을 먹는지도 중요하지만, 어떻게 먹는지가 더 중요하다. 비만 관리를 위한 식단이나 영양가 있는 음식에 집착하기보다, 아이와 함께 즐기는 건강한 한끼에 집중해보자. 아이가 직접 식단을 짜거나, 장을 보고 요리를 하는 과정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면 관심도를 자연스럽게 높일 수 있다.
나들이를 겸해서 쿠킹클래스를 찾거나 제철 식재료 만날 수 있는 식당, 색다른 미식 경험을 할 수 있는 공간을 찾아봐도 좋다. 일례로 ‘마르쉐’는 우리 땅에서 자란 다채로운 재철 식재료와 먹을거리를 만날 수 있는 도심 시장이다. 규모에 따라 상대적으로 큰 마르쉐 농부시장과 소규모 채소시장으로 나뉘어 열리며, 채소시장@서교는 매달 첫번째 월요일 로컬스티치 크리에이터타운 서교에서, 채소시장@성수는 4~11월 네 번째 토요일 언더스탠드에비뉴에서 열린다. 시식 코너도 다양해 아이가 자연스럽게 흥미를 가지고 평소 먹지 않던 음식에도 도전해볼 수 있다.
평소 아이와 마르쉐를 자주 찾는다는 김보은(42)씨는 “아이가 당근과 버섯 등 채소를 잘 먹지 않았는데, 시장을 함께 다니다 보니 어느 순간 먼저 당근 디저트를 시식해보고 싶다고 말했다”며 “강요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채소와 친해질 수 있는 기회였다”며 일상 속 환경 조성의 중요성을 말했다.
자극적인 음식에 중독돼 식생활 개선이 쉽지 않은 아이라면 대체 당류에 눈을 돌려봐도 좋다. 키토 베이커리부터 대체당으로 만든 아이스크림 등 상대적으로 안심하고 먹을 수 있는 디저트가 생각보다 다양하다.
이 밖에 음식 먹는 시간과 공간에 대한 규칙을 정하고 지키는 일도 중요하다. 가능한 식사 시간을 정해두고 규칙적으로 먹도록 해보자. 식탁 등 정해진 장소에서만 음식 먹는 일도 도움이 된다. 그날 먹은 음식의 종류와 운동량, 감정 상태 등을 기록하는 일지를 가족이 다같이 써봐도 좋다.
팀스포츠 활동 도전해보기
신체 활동은 활력을 불어 넣고 몸을 주체적으로 인식할 수 있게 해주는 훌륭한 동력이다. 이때 몸무게라는 수치보다는 신체 활동을 통한 즐거움과 성취감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좋다. 아이가 신체 활동에 몰입한다면, 건강한 몸에 대한 욕구는 자연스럽게 뒤따라올 수 있기 때문이다.
다양한 생활 스포츠를 함께 시도해보면서 아이가 흥미를 느낄 만한 것을 찾아봐도 좋다. 서울시 노원구는 2023년 4월부터 온 가족이 다 함께 사용 가능한 운동 교구를 대여해주는 이동형 운동용품 대여소 ‘운동하러 노원가게'를 운영한다. 에그스푼, 후프, 줄넘기, 캐치컵 등 혼자서도 재미있게 사용할 수 있는 교구는 물론, 플로어볼, 볼링놀이, 팀바스켓, 바룬다볼 등 여럿이 즐길 수 있는 교구까지 다양하다. 올해 하반기는 9~11월 매주 화~토요일에 운영하며, 요일에 따른 구체적인 일일대여소 위치는 노원구청 누리집(www.nowon.kr) 및 공식 블로그(blog.naver.com/goodnowon)에서 확인이 가능하다.
경기도 시흥시 중부건강생활지원센터 역시 아동과 청소년의 신체 활동량을 늘리고 비만을 예방하기 위해 운동용품을 대여해주는 헬스박스 대여사업을 운영한다. 근력 강화, 유산소, 스트레칭 등의 목적에 따라 필요한 운동용품을 빌릴 수 있으며, 대여 자격은 만 3~5살 아동과 초·중·고등학생이다.
또래와 긍정적인 상호작용을 할 수 있는 팀스포츠 활동에 도전해보는 것도 권할 만하다. 팀스포츠는 특히 성장기 아이들의 정신 건강을 개선하면서 자연스럽게 자기 몸을 긍정할 수 있도록 도와주기 때문이다.
미국 캘리포니아주립대 연구팀 조사에 따르면, 팀 스포츠에 참여하는 아이들이 불안, 우울증, 금단현상, 대인관계 문제의 징후가 더 적게 나타났다. 연구팀은 “팀 스포츠 참여는 긍정적인 사회적 상호작용을 할 수 있는 기회를 늘려줘 아이들의 건강 문제를 예방하는 데 효과적”이라며 “개별 스포츠를 수행하는 아이들은 독립적으로 수행해야 한다는 점에서 상당한 스트레스를 경험하게 된다”고 말했다.
이 밖에 일상에서 자연스럽게 활발한 움직임을 유도하는 것도 도움이 된다. 외출 후에는 엘리베이터 대신 계단 이용하기를 게임 형태로 하거나, 심부름과 청소 등의 살림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독려해보자. 당장 눈에 띄는 변화로 이어지지 않더라도, 차근차근 신체 활동을 늘리고 습관화한다면 건강 상태 개선의 바탕이 될 수 있다.
박은아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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