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국룰’이 무너지고 있다 [왜냐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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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룰', 국민의 룰(규칙) 혹은 국가적인 룰의 줄임말이다.
또 장례식장 부의금은 3만원, 5만원, 7만원 등 홀수로 낸다든가, 결혼식장에 흰색 등 밝은색 옷을 입고 가지 않는 것도 너나 할 것 없이 지켜주고 존중하는 일종의 국룰이다.
일제강점기에서 벗어나 광복을 이루고, 다사다난한 현대사를 거치며 군사정권부터 민주정부까지 좌우, 진보 보수를 가리지 않고 정치인과 국민 모두가 공유해온 국룰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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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승하 | 30대·서울특별시 은평구
‘국룰’, 국민의 룰(규칙) 혹은 국가적인 룰의 줄임말이다. 국민 사이에 공통적이고 보편적으로 통용되는 규칙이나 관습 정도로 해석할 수 있다. 온라인 게임 이용자들이 공정하고 원활한 게임 진행을 위해 자체적인 규칙을 정할 때 ‘국룰’이라는 이름을 붙였고, 그 뒤 인터넷 이용자들 사이에 밈(Meme·온라인 유행 콘텐츠)이 되며 여기저기로 퍼졌다. 이 과정에서 의미 변용도 일어나 “바닷가에서는 물회가 국룰”, “피시방에서는 라면에 단무지가 국룰” 식으로 동의를 구하기 위한 화법으로도 자주 표현하고 있다.
하지만 국룰이 이렇게 밈이 되기 전에도 우리 사회에는 수많은 국룰이 불문율로 존재해왔다. 이를테면 비 오는 날에는 전을 먹어야 하고, 당구장에선 진 사람이 짜장면값을 낸다든가 하는 식이다. 또 장례식장 부의금은 3만원, 5만원, 7만원 등 홀수로 낸다든가, 결혼식장에 흰색 등 밝은색 옷을 입고 가지 않는 것도 너나 할 것 없이 지켜주고 존중하는 일종의 국룰이다.
사실 이런 국룰은 지키면 좋고 안 지켜도 그만인 가벼운 것들이다. 그러나 우리 사회에는 그 이상의 의미를 갖는 국룰도 있다. 일제강점기에서 벗어나 광복을 이루고, 다사다난한 현대사를 거치며 군사정권부터 민주정부까지 좌우, 진보 보수를 가리지 않고 정치인과 국민 모두가 공유해온 국룰이 있다. 바로 독립운동가에 대한 존중이다. 그가 공산주의자였건 민족주의자였건 간에 엄혹한 시대에 온몸을 던져 독립을 위해 희생한 사람들에 대한 공정한 예우는 당연한 것으로 이해해 온 것이다.
그런데 이 국룰이 최근 들어 처참하게 무너지고 있다. 신임 독립기념관장은 광복절을 부정했으나 대통령은 임명을 강행했고, 전 국방부 장관은 홍범도 장군의 이념이 문제라며 육군사관학교에서 흉상을 철거해야 한다고 했다. 한 시민은 광복절에 태극기 대신 일장기를 대놓고 걸어 논란이 됐고, 부산의 한 학교 교사는 광복절 역사 교육이라며 “일본이 못 살던 우리나라를 먹고 살게 만들어줬다”고 주장한 극우 유튜버의 영상을 그대로 수업 시간에 보여줬다. 오히려 학생들이 그 내용에 대해 항의했다고 하니 참으로 기가 찬 일이다. 서울 지하철 역사와 전쟁기념관에 있던 독도 조형물들은 갑자기 철거되었다. 이러다 “독도도 그냥 일본에 줘버리자”고 주장하는 사람이 나올지도 모를 일이다.
“국룰은 무너지는 게 제맛”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장례식장에 짝수 부의금을 낸 조문객이 있어도, 결혼식장에 밝은색 옷을 입고 온 하객이 있어도, 그걸 받아들이고 고마워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이렇게 적당히 어겨도 괜찮은 국룰이 있지만, 그래서는 안 될 국룰도 있다. 홍범도 장군 흉상은 그냥 쇳덩이가 아니고 우리 국가와 공동체가 지켜나가야 할 역사고 우리의 정신을 담은 진짜 국룰이다. 이런 국룰이 무너지게 그냥 둬서는 안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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