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장을 옆으로만 넘기라는 법은 없지요
책장 넘기는 방향 다양한 책 많아
아이들은 작은 차이에도 호기심
읽는 방향·작가 의도 대화나누면
그림책 흥미와 문해력 발달 도움
아이들이 참 좋아하는 이와이 도시오 작가의 ‘100층짜리 집’ 시리즈는 일반적인 그림책들에 비해 책의 길이도 길고 책장을 넘기는 방식이 다르다는 특징이 있다. 책등을 세로로 놓고 옆으로 책장을 넘기며 읽는 그림책들과는 다르게, 책등을 가로로 놓고 책장을 위나 아래로 넘겨야 한다는 것이 특별하다.
이 시리즈 중 ‘하늘 100층짜리 집’과 ‘숲속 100층짜리 집’은 아래에서 위로 올라가는 기분을 최대한 느낄 수 있도록 위에서 아래로 책장을 내리며 읽는 방식이다. 그에 반해 ‘바다 100층짜리 집’은 아래로 깊이 내려가는 느낌을 줄 수 있도록 아래에서 위로 책장을 올리며 읽게 된다.
어른들은 이러한 책장 넘기는 방식의 차이를 대수롭지 않게 느끼기도 하지만, 아이들은 작은 차이를 크게 느끼며 참 신기해한다. 얼마 전, 둘째 아이가 ‘바다 100층짜리 집’을 먼저 보고 ‘숲속 100층짜리 집’을 읽을 때, 아래에 얼마 남아 있지 않은 책장을 보고(위 쪽에 많은 책장이 남아 있음에도) “왜 이건 시작한 지 얼마 안 됐는데 벌써 끝나가?”라는 질문을 했다.
두 그림책의 책장 넘기는 방식의 차이점을 제대로 발견하지 못해 질문을 한 것이었다. 그래서 이 ‘숲속 100층짜리 집’을 읽는 방향과 작가의 의도에 대한 설명을 간단하게 덧붙이며 대화를 이어 나갔다. 그러고는 ‘바다 100층짜리 집’과 ‘숲속 100층짜리 집’의 책장을 함께 넘겨보기 시작했다.
책등을 가로로 놓고 읽는 것은 같지만, 한 그림책은 책장을 올리며 읽고 한 그림책은 책장을 내리며 읽어야 한다는 차이를 다시 한번 느껴보았던 것이다. 그랬더니 둘째 아이가 같은 시리즈라도 책 넘기는 방식이 다르다는 사실과 그로 인해 느낌이 달라진다는 것을 깨닫고 굉장히 신기해했다.
한편, 2022 칼데콧 아너상 수상작인 ‘간다아아!’ 그림책도 우리가 평소에 책을 넘기는 방향으로 이야기가 진행되지 않는 특별한 그림책이다. 이 그림책은 책등을 위로 돌려 놓고, 아래에서 위로 책장을 넘기는 것으로 시작된다.
덕분에 꼬마 물총새 멜이 나뭇가지에서 뛰어내려 아래로 떨어지는 상황을 풍부하게 느낄 수 있다. 그리고 ‘텀벙!’ 하고 물 속으로 들어간 멜이 물 속에서 물고기를 잡는 동안, 그림책을 읽는 방향이 바뀐다.
친절하게 안내된 설명에 따라 그림책을 조금씩 돌려 읽다 보면, 어느새 우리가 스스로 그림책을 한 바퀴 돌린 것을 발견하게 된다. 그리고 이제는 아까와는 반대로 위에서 아래로 책장을 넘기면서 읽게 된다.
이제부터 멜이 다시 나무로 날아오르는 상황이 펼쳐지는데, 이렇게 책장을 넘기는 방향이 바뀜으로써 날아오르는 멜의 상황과 느낌을 훨씬 생생하게 전달하는 것이다.
나와 아이들은 이 그림책을 통해 하나의 그림책에서 책장 넘기는 방식이 달라지는 흥미롭고 신기한 경험을 했는데, 그 덕에 꼬마 물총새 멜의 도전을 훨씬 실감 나고 생생하게 느낄 수 있었다.
우리나라에서 책은 보통 오른쪽에 있는 책장을 잡고 왼쪽으로 넘기면서 읽게 된다. 어른들이 읽는 일반적인 책에서는 이 방식을 변형한 책이 드물지만, 그림책의 세계에서는 책장을 넘기는 방향을 다양하게 변형한 그림책이 많다는 것이 참 특별하다.
앞서 소개한 ‘100층짜리 집 시리즈’나 ‘간다아아!’ 외에도 정은정 글, 윤지회 그림의 ‘뚜껑 뚜껑 열어라’, 와타나베 지나쓰 작가의 ‘오늘의 간식’, 똥강아지 봄 여름 가을 겨울 시리즈의 ‘투둑 떨어진다’, 이수지 작가의 ‘그림자 놀이’도 일반적인 책과는 다른 책장 넘기는 방식이 특별한 그림책이다. 모두 이야기나 상황의 느낌을 더욱 잘 표현하기 위한 작가의 고민으로 탄생된 멋진 그림책들인 것이다.
초보 독자들에게 그림책을 읽을 때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책장을 넘기고 왼쪽 상단부터 차례로 읽어 나가야 한다는 방법을 알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 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다양한 그림책을 읽으며 책 넘기는 방식의 차이점과 그때마다 다르게 다가오는 느낌에 대해 대화를 나누어 보는 것도 초기 문해력 발달에 필요한 경험이 된다.
책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왜 읽는지, 어떻게 읽는지 등의 ‘책의 개념’을 형성하고 있는 시기의 아이들이 책 넘기는 방식의 차이에서 오는 재미를 실감 나게 느끼며 그림책의 세계에 풍덩 빠질 수 있으면 좋겠다.
글·사진 민경효 솔밭초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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