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짜인 판도 바꾸는 정해인이라는 새로운 판타지('엄마친구아들')
[엔터미디어=정덕현] "이렇게 대놓고 짜놓은 판의 장기 말이 되겠다고? 너 무슨 글로벌 호구야?" tvN 토일드라마 <엄마친구아들>에서 배석류(정소민)는 이미 다른 업체가 내정됐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끝까지 자기 할 일을 다하겠다는 최승효(정해인)에게 그렇게 말한다. 그 말이 너무 심하다고 하자 배석류는 그것이 "그 바닥 생리"라며 누구보다 자신이 그들을 잘 안다고 한다. 그건 배석류가 그레이프에서 일할 때 겪었던 사건들 때문이다.
협력업체를 정하기 위해 그레이프에서 찾아온 이는 다름 아닌 석류를 가스라이팅했던 크리스(헤이든원)였다. 과거 그레이프를 다닐 때 직장동료였던 크리스는 교묘하게 석류를 이용했다. "배석류는 좀만 치켜세워주면 혼자 알아서 일한다는 사실을. 특히 나는 너를 믿는다. 이건 완전 마법의 문장이야." 그러면서 그것이 "애정결핍, 인정욕구" 같은 게 아니냐고 말했다. 마치 칭찬에 굶주린 아이 같다는 것. 그 이야기를 우연히 들었던 배석류가 느꼈을 환멸과 배신감이 느껴지는 대목이다.
굳이 <엄마친구아들>이 배석류가 그레이프에서 당했던 동료의 가스라이팅을 소재로 꺼내놓은 건, 그것이 어쩌면 우리네 청춘들이 비정한 현실 속에서 당해온 것들이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인정욕구'라는 표현은 한국 사회에서는 각별한 의미를 가진 말이다. 누구보다 열심히 일하고 성공하려 애썼으며 그래서 실제로 압축 성장을 이뤄낸 한국인들이 종종 서구인들의 평판에 지나치게 신경쓰는 이유로 종종 거론되는 말이기 때문이다.
내수로는 한계가 있는 한국이 해외로 진출하지 않으면 안됐던 현실 앞에서 저들에게 인정받으려 애쓰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일 수 있었다. 게다가 이건 경쟁적인 현실에서 살아가는 한국인들의 삶 깊숙이 들어 있는 것이기도 하다. 어떤 대학을 가고 어떤 직장을 다니느냐로 그 사람이 평가되는 현실 앞에서 누군가의 인정을 받기 위해 열심히 공부하고 일하는 게 당연한 일처럼 되어 있었으니 말이다.
<엄마친구아들>에서 백석류는 특히 자신이 좋은 대학을 나오고 또 천상의 직장이라고 불리는 그레이프에 입사한 그 선택들에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 건 자신보다 가족의 기쁨이었던 면이 있었다. 그래서 자신이 좋아하고 그래서 행복한 일을 하는 것보다 칭찬받고 싶은 욕구가 더 컸었다는 걸 털어놓기도 했다. 결국 그 회사를 그만두고 집으로 돌아온 건 그런 선택이 잘못됐다는 걸 번아웃과 배신감 등을 겪으며 알게 됐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그레이프의 이미 다른 협력업체가 내정된 일에 최승효가 그 사실을 알면서도 최선을 다하는 모습에 마치 자기 일처럼 화를 낸다. '장기말'이니 '글로벌 호구'니 하며 그 '헛수고'를 하지 말라고 나선다. 하지만 이에 대한 최승효의 반응은 의외다. "내가 노력한 시간에 대해서 함부로 얘기하지 마. 그리고 걔네를 잘 알면 뭐 하냐? 나에 대해서 모르는데." 최승효가 하는 이 말은 그가 일을 하는 원칙들이 따로 있다는 걸 말해준다. 그건 반드시 누군가의 인정이나 선택을 받기 위함이 아니라 자신이 좋아서 최선을 다하는 것이라는 것.
<엄마친구아들>은 오랜만에 귀국해 고향으로 돌아온 배석류와 어려서부터 오랜 친구였던 최승효의 우정과 사랑 사이를 오가는 멜로를 그리고 있지만, 여기에는 또한 어떤 잘못된 선택들 때문에 삶이 엇나가버린 배석류가 최승효라는 사람을 만나 위로받고 이제 제대로 된 새로운 선택들을 해가는 과정 또한 그리고 있다.
여기서 중요한 건 최승효라는 새로운 청춘의 초상이다. 작가는 이 인물을 통해 경쟁적인 현실에 지친 청춘들을 위로하고 토탁이면서 동시에 새로운 선택들도 있다는 걸 말해준다. 그래서 드라마에 달린 부체들처럼, 모든 걸 포기하고 돌아와 두려웠던 배석류의 '컴백'은 보다 따뜻한 환대가 있는 '컴백홈'이 되고, 티격태격 하던 '미움'은 여전히 상대에 대해 남아있는 '마음'이 된다. 또 모두가 앞으로 달려갈 때 나만 멈춰서 있는 것 같았던 '정지선'은 이제 새롭게 나아갈 '출발선'이 되고, '과거완료' 됐다 생각했던 사랑과 꿈은 이제 '현재진행형'으로 바뀐다.
그레이프가 협력업체를 그 외형만 보고 내정해버리는 것처럼, 사람을 스펙만 보고 정하는 비정한 현실이다. 그런 현실에 최승효는 "내가 노력한 시간"에 대해서 폄하하지 말라고 말한다. 저 비정한 세상의 현실을 아는 만큼, 나 자신도 알라고 한다. 누구에게 인정받지 못한다 해도 스스로 해온 노력들을 인정하고 스스로를 칭찬하라고. 이미 짜여진 판(현실) 속에서 살아가는 것 같은 답답한 현실이지만 그래서 더더욱 매력적인 판타지로 다가오는 최승효라는 새로운 청춘의 초상이 아닐 수 없다.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entermedia.co.kr
[사진=tv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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