멸종위기라고 무시하니…그 흔한 이모티콘도 없는 신세라니
포유류 치우친 이모티콘, 위기종 거의 안보여
WP, 반딧불이·물곰 등 누락된 동물 8종 제작
온라인에서 이모티콘(이모지, Emoji)은 이제 없으면 서운한 의사소통 수단으로 자리 잡았다. 강아지나 대왕판다를 글로 설명하는 대신 이모티콘으로 만들어 보내면 문장에 밝은 느낌을 더할 수 있다. 그런데 어떤 동물들은 이모티콘이 없어서 못 쓰는 경우가 있다. 올여름 큰 목청으로 존재감을 자랑하는 매미가 그렇다. 매미뿐만이 아니다. 생물 종 가운데 큰 비중을 차지하는 몇몇 생물은 이모티콘 목록에 빠져 있고, 이것이 사람들의 인식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연구가 나왔다.
지난 11일(현지시각) 미국 매체 워싱턴포스트의 기사를 보면, 스테파노 맘몰라 이탈리아 국립생물다양성미래센터 연구원 등 과학자들은 온라인에서 사용하는 이모티콘이 지구의 생물 다양성을 얼마나 잘 반영하는지 평가하기 위해 생물 이모티콘을 분류군별로 조사했다. 그 결과, 이모티콘은 척추동물에 치우쳐 있으며 그 가운데에서도 포유류와 조류는 다양하지만, 파충류·양서류·조류는 그 수가 현저히 적은 것으로 나타났다. 비교적 친숙한 동물이라 할 매미, 불가사리 등은 아예 없었다. 분석을 담은 논문은 지난해 12월 국제학술지 ‘아이사이언스’(iScience)에 실렸다.
논문을 보면, 연구진이 관련 누리집 가운데 가장 많은 이모티콘을 제공하는 ‘이모지피디아’(Emojipedia)를 분석한 결과, ‘동물과 자연’ 섹션에는 모두 214개의 이모티콘이 등록되어 있었다. 그 가운데 150개가 현존하는 생물(동물, 식물, 균류, 미생물)이었다. 일부 생물은 두 개 이상의 이모티콘으로 표현됐는데, 이를 고려하면 전체 112개의 고유한 생물로 분류할 수 있었으며, 그 가운데 동물은 92종이었다.
생물 이모티콘이 100여개가 넘었지만, 이모티콘의 다양성은 주로 동물에 집중돼 있었다. 수많은 균류와 미생물을 나타내는 이모티콘은 각각 단 1개씩뿐이었고, 식물은 16개에 불과했다. 동물 가운데서는 포유류, 조류, 파충류, 양서류, 어류가 포함된 척추동물이 전체 동물 이모티콘의 75%를 차지해 가장 많았고, 실제 자연에서 가장 다양한 종으로 기록되는 곤충이 포함된 절지동물은 16%였다. 나머지는 연체동물, 자포동물, 환형동물 등이 각각 4%, 2%, 1%를 차지했다. 동물 문(門) 가운데 가장 많은 종이 포함된 편형동물과 선형동물을 표현하는 이모티콘은 없었다.
연구진은 이모티콘이 실제 자연의 생물다양성과 달리 척추동물은 과하게 표현하고, 절지동물이나 다른 동물들은 과소평가하는 경향을 보인다고 분석했다. 연구진은 이런 경향이 생물종을 멸종위기 등급으로 나눈 국제자연보전연맹(IUCN) 적색목록에서 보이는 편향성 그리고 사회적 인식과도 맞물린다고 설명했다.
이들은 “이모티콘의 가용성이 고르지 못하면 잘 알려지지 않은 생물군에 대한 소통에 제한이 있을 수밖에 없다”면서 “최근 생물 다양성 보존 회의에 참석한 한 동료는 자신이 연구하는 수생균류를 표현하는 적절한 이모티콘이 없어서 온라인 소통에 어려움을 겪은 적이 있다고 밝혔다”고 전했다. 다만 생물 이모티콘은 2015년 45개에서 2019년 78개로, 2022년 92개로 늘어났으며, 계통학적으로 따져보면 다양성을 대표하는 동물의 수가 늘어나는 추세를 보인다고 한다. 연구진은 이런 흐름에 불가사리, 물곰 등을 추가하면 소외된 동물 문(門)도 이모티콘에 포함할 수 있다고 제안했다.
쉽게 지나칠 수 있는 지적이었지만, 미국 워싱턴포스트는 연구진의 제안을 진지하게 받아들여 실제 이모티콘 제작에 나섰다. 워싱턴포스트는 맘몰라 박사 등의 논문을 소개하며 이를 바탕으로 누락된 생물들의 이모티콘으로 실제로 만드는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고 밝혔다. 매체가 만든 이모티콘은 불가사리, 매미, 물곰, 아홀로틀, 카피바라, 반딧불이, 원생생물 등 8개다. 반딧불이와 아홀로틀은 서식지 파괴 등으로 멸종위기에 처해있고, 카피바라는 지구 상에서 가장 큰 설치류로 수생생태계를 유지하는 핵심종으로 인정해 이번 프로젝트에 포함됐다.
매체가 이모티콘을 제작하긴 했지만, 실제 사용할 수 있을지는 아직 미지수다. 온라인에 이모티콘으로 사용되기 위해서는 미국 캘리포니아의 비영리단체인 ‘유니코드 컨소시엄’의 심사를 거쳐야 하는데, 허가 여부는 독창성과 범용성 등에 달렸다고 한다.
다양한 이모티콘의 필요성을 알리는 이런 시도가 사람들의 생물 다양성 인식에 얼마나 영향을 미칠지 알 수 없지만, 지난 2021년 세계자연기금(WWF)은 ‘멸종 이모티콘’ 프로젝트를 통해 실제 멸종위기에 처한 동물들의 현실을 알려 호응을 얻은 바 있다. 이 프로젝트는 사용자가 소셜미디어에서 동물 이모티콘을 쓰려고 하면, 이 동물이 처한 위기를 알리고 동물보호를 유도하는 메시지를 전했다.
김지숙 기자 suoop@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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