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든 “기업의 탐욕”에 뿔났던 월가, 해리스에 사로잡힌 이유는?
억만장자 조지 소로스 아들 등 월가 일부 인사도 지지 선언
캘리포니아주 법무장관 시절, 기업 공정하게 다뤘다고 평가
기업 규모 위법 행위로 안 봐…트럼프보다 인플레 덜 자극 전망도
예일대 최고경영자리더십 회장 "월가 트럼프 변덕 싫어해"
[이데일리 양지윤 기자] 카멀라 해리스 미국 부통령이 민주당 대선 후보로 공식 확정된 가운데 월가 거물들이 잇따라 그를 지지하고 나서 그 배경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조 바이든 대통령이 ‘기업의 탐욕’을 고물가의 원인으로 압박하는 것과 달리 해리스 부통령은 상대적으로 친기업적인 중도주의자라는 인식이 확산하면서 지지세에 힘이 실리는 분위기다. 공화당 대선 주자인 도널드 트럼프와 비교해선 인플레이션을 자극할 것이라는 우려가 덜하고, 중앙은행의 독립성을 인정하고 있는 점이 차별점으로 부각되고 있다는 분석이다.
25일(현지시간) 워싱턴포스트(WP)과 로이터통신 등 미 언론에 따르면 해리스 부통령은 지난달 바이든 대통령이 재선을 포기한 뒤 한 달 만에 약 5억4000만 달러(약 7160억원)의 선거 자금을 모았다. 이는 선거 캠프와 민주당 선거 컨트롤 타워인 전국위원회(DNC)에 모인 돈을 합친 규모로, 지난 19~22일 시카고에서 열린 전당대회 주간에만 8200만 달러(약 1080억원)를 모았다.
해리스 캠프는 트럼프 전 대통령에 비해 자금력에선 앞서 나가고 있다는 평가다. 미국 연방선거관리위원회(FEC)에 따르면 해리스 캠프는 7월 한 달 동안 2억400만 달러(약 2711억원)의 선거 자금을 모금했다고 신고했다. 같은 기간 트럼프 캠프가 모았다고 신고한 선거 자금(4800만 달러)의 약 4배에 달하는 규모다. 해리스 캠프는 전당대회 기간 동안 소액 풀뿌리 기부자들의 자금 지원이 잇따랐으며 이 중 3분의 1은 신규 기부자들인 것으로 파악됐다. 또 이들 중 20%는 청년 유권자이고, 3분의 2는 여성 유권자였다고 해리스 선거 캠프는 밝혔다.
이런 가운데 억만장자와 월가 거물들이 해리스에 대해 전폭적인 지원에 나설지가 관심사로 떠올랐다. 바이든 행정부가 대기업의 인수합병(M&A)에 제동을 걸고, 기업의 탐욕이 고물가를 촉발했다며 비판적인 입장을 견지하는 상황에서 일부 월가 저명인사들이 이례적으로 같은 당인 해리스를 지지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제프리 소넌펠트 예일대 최고경영자리더십 연구소 회장은 지난 20일 CNN과 전화 인터뷰에서 “해리스 부통령은 바이든 대통령보다 월가와 더 좋은 관계를 맺고 있다”고 평가했다. 해리스 부통령이 캘리포니아주 법무장관과 상원의원 재임 시절 미국 주요 빅테크가 몰려있는 실리콘밸리에서 ‘계급 투쟁’ 수사의 톤을 낮추고, 기업들을 공정하게 다룬 이력 이력이 있기 때문이라고 소넌펠트 회장은 설명했다.
그는 “해리스 부통령은 기업 규모 자체를 위법 행위로 보지 않았다”면서 “기업이 번창하는 것이 경제와 평범한 노동자에게 좋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고 말했다.
“기업 규모 위법행위로 보지 않아…친기업적이고 중도적”
켄 셔놀트 아메리칸익스프레스 전 최고경영자(CEO)도 민주당 전당대회 기간에 해리스 부통령 지지를 선언했다. 셔놀트는 “해리스 부통령은 트럼프 전 대통령과 달리 시장 경제에 강력하고 효과적인 정부가 필요하다는 점을 알고 있으며, 선진국 경제에는 물가를 올리고 소비자와 기업에 피해를 주는 광범위한 관세가 맞지 않는다고 생각한다”며 지지 배경을 밝혔다.
에버코어 창립자이자 수석 회장인 로저 알트먼과 억만장자 조지 소로스의 아들인 알렉스 소로스도 해리스 부통령 지지 대열에 합류했다. 세계 3대 사펀드 블랙스톤을 이끄는 조나단 그레이 회장은 지난달 말 해리스 캠프에 41만3000달러(5억4700만원)를 기부했다고 CNN은 소식통을 인용해 보도했다. FEC에 다르면 억만장자 투자자인 마크 레슬리 애비뉴 캐피탈 그룹 설립자도 지난 3월 해리스 캠프에 10만달러(1억3200만원)를 기부한 바 있다.
금융자문사 시그넘 글로벌 어드바이저스의 설립자 찰스 마이어스는 블룸버그통신과 인터뷰에서 월가 경영진이 해리스 부통령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사람들은 승자를 지지하고 싶어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캘리포니아 출신의 진보주의자로서 사람들이 과거에 생각했던 것보다 지금의 그녀가 훨씬 더 친기업 중도적이라는 인식이 커지고 있다”고 부연했다.
해리스 부통령이 대기업을 탄압할 수 있는 좌파 성향 후보라는 금융계의 우려가 예상보다 크지 않은 건 대선 출마 전부터 기업 총수들과 접점을 넓혀온 데 따른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그는 최근 몇 달간 JP모건 체이스와 비자, CVS 등 여러 기업의 CEO를 만나며 대기업의 요구에 귀를 기울이겠다는 신호를 시장에 보냈다는 평가다.
아울러 해리스 부통령의 정책이 트럼프 전 대통령에 비해 인플레이션을 덜 자극할 것이라는 관측도 일부 월가 인사들이 지지 의사를 표명한 이유 중 하나로 거론된다. 트럼프 전 대통령의 감세 정책과 보편관세, 반이민 정책이 물가 상승 속도를 높이고, 금리 인상을 촉발할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있어서다. 또한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의 독립성에 관한 견해도 월가 인사들의 지지를 가르는 요인으로 꼽힌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연준 기준금리 결정에 발언권을 가져야 한다고 주장한 반면 해리스 부통령은 독립성을 강조하며 간섭하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소넌펠트 회장은 과거 할리데이비슨, 델타, 나이키 등 미국 산업의 상징적 기업들이 트럼프 전 대통령이 공개 저격한 사례를 언급하며 “월가는 트럼프의 변덕스러운 복수심을 싫어한다”고 지적했다.
양지윤 (galileo@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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