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위험 여전한데”…백신 예산 삭감 조짐에 의료계 우려
대학병원 의료진도 접종 대상 제외해 비판
정부의 2025년도 예산 검토가 막바지에 접어든 가운데,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백신 예방접종 예산이 대폭 삭감될 것이란 전망이 나오면서 의료계가 크게 우려하고 있다.
26일 제약업계에 따르면, 2025년도 코로나19 백신 예방접종 예산 규모가 전년보다 20% 이상 감액될 가능성이 있다. 2025년도 질병관리청 예산안은 이번 주 중 열리는 국무회의에서 의결된다. 각 부처가 제출한 예산안은 국회 상임위원회의 예비 심사와 예산결산특별위원회의 종합심사, 본회의 의결을 거쳐 최종 확정된다.
제약업계 한 관계자는 “아직 예산 확정안이 나오지 않은 단계라 구체적인 코로나 백신 예산 규모를 알 수 없다”면서도 “다만 처음에 올해 예산 대비 20% 축소한 규모로 검토가 시작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다른 업계 관계자는 “기획재정부 심의 과정에서 예산 축소 폭을 더 늘려야 한다는 목소리가 컸던 것으로 안다”고 했다.
지난해 12월 국회 본회의에서 확정된 질병관리청 예산 중 코로나 치료제 구입비 예산은 1798억원이었다. 이는 전년 코로나 치료제 구입비 예산(2045억원) 대비 53.2% 깎인 금액이었다. 신규 백신 구입비가 포함된 코로나19 예방접종 실시·이상 반응관리 예산 규모도 2023년 4565억원에서 2024년 4414억원 규모로 줄었다. 내년 예산은 이보다 20% 감축될 전망이다.
정부와 국회의 코로나 관련 예산 축소 논의에는 코로나19 대유행 국면이 바뀌었다는 판단이 깔려있다. 엔데믹(풍토병화) 전환 이후 백신 접종 필요성에 대한 인식이 낮아지면서 접종률도 떨어진 상황이다. 질병관리청에 따르면 지난 2023~2024년 동절기 코로나19 백신 접종률은 70세 이상이 47%, 65~69세가 약 34%로, 독감 접종률보다도 저조한 수준이었다. 반면 같은 시기 독감 백신 접종률은 70세 이상 85%, 65~69세 75%였다.
코로나19 백신 접종률이 낮으면 지금도 비축분이 충분하다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백신은 1년 정도 보관이 가능하다. 이런 이유로 정부가 비축해둔 코로나 백신 10개 중 3개꼴로 폐기됐다. 백종헌 국민의힘 의원실이 최근 질병관리청의 ‘코로나19 백신 활용·폐기 현황’을 분석한 자료에 따르면, 코로나19 백신은 지난 2021년부터 올해 8월 현재까지 총 2억 1679만 도즈(1회 접종분)를 도입해 이 중 28.6%에 달하는 6197만 도즈가 폐기됐다. 폐기 사유 대부분이 ‘유효기간 경과’다. 게다가 유효 기간 이내라도 변이 바이러스가 계속 나오면서 유효기간을 넘지 않아도 이전 백신이 의미가 없어진다.
의료계와 제약 업계에선 코로나 백신·치료제 예산 삭감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전파력이 강한 코로나 변이 바이러스의 유행 가능성이 여전한 데다, 최근 환자가 급증하면서 자가 진단기기(키트)와 치료제 부족 현상을 다시 겪고 있는 상황을 고려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최근 전 세계적으로 확산한 코로나바이러스는 오미크론 변이의 하위 변이 KP.2와 KP.3다. 지난겨울에는 JN.1 변이가 우세종이었다.
이재갑 한림대강남성심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이번 여름철 코로나 환자가 급증한 것은 백신 접종률이 저조해서 생긴 결과이기도 하다”라며 “접종률이 낮아졌다는 이유로 예산을 줄이는 건 어불성설”이라고 지적했다. 이 교수는 “오히려 백신 접종 필요성을 더 적극적으로 알리고, 신규 변이에 대한 백신 접종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최신 변이를 겨냥하는 새로운 백신 접종률을 높여 질병 위협을 대응할 필요가 있다는 얘기다. 의료계와 방역 당국에 따르면 코로나 백신 접종은 입원과 사망을 포함한 중증화율과 치명률을 최대 29배까지 낮출 수 있다.
최원석 고대안산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코로나19는 과거 신종 인플루엔자(독감), 메르스(MERS·중동호흡기증후군)와 비교해도 전염력이 월등히 강하고 사람 몸에서 증식하는 능력을 키워가며 계속 진화하고 있다”며 “백신과 치료제를 비롯한 공중보건 대응으로 코로나19 위협에 계속 대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근 대학병원에서는 코로나 백신 접종 대상에 의료인이 빠진 것에 대한 비판 목소리도 크다. 질병관리청은 오는 10월 중 시행되는 2024~2025년 절기 코로나19 예방접종부터 대상을 전 국민이 아닌 65세 이상 어르신, 면역저하자, 요양병원 같은 감염취약시설 입원‧입소자 등 ‘고위험군’으로 한정했다. 여기엔 대학병원 소속 교수, 간호사도 제외됐다.
대학병원 소속의 한 교수는 “최근 원내 의료인의 코로나 감염 사례도 크게 늘었는데, 의료인을 백신 접종 대상에서 제외한 것은 정말 황당한 결정”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자원 부족에 따른 결정이겠지만, 가뜩이나 의정 갈등으로 대학병원에 의료 인력 공백 부담이 커진 상황에서 의료인을 백신 접종 대상에서 제외한 것은 원내 감염병 확산과 이에 따른 위험 부담마저 병원에 전가한 것”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코로나 감염에 따른 입원·치료 비용을 고려하면 백신의 경제적 효과가 훨씬 더 크다고 말한다. 지난해 코로나19로 인해 발생한 요양급여 비용 총액이 약 1조 4000억원에 달한다. 이는 그해 독감의 요양급여 비용 총액의 9배 수준으로, 작년 코로나19 입원환자는 독감보다 3배 이상 많았다.
제약업계 한 관계자는 “최근 코로나 치료제가 부족한 문제가 생긴 것도 지난해 예산을 삭감한 여파”라며 “치료제·백신 예산을 미리 확보해야 추후 발생할 수 있는 변수에도 발 빠르게 대응할 수 있다는 점에서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질병관리청 관계자는 “예산안이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며 “확정안이 나오면 추후 구체적으로 설명할 예정”이라고 답했다.
- Copyright ⓒ 조선비즈 & Chosun.com -
Copyright © 조선비즈.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李 ‘대권가도’ 최대 위기… 434억 반환시 黨도 존립 기로
- 정부효율부 구인 나선 머스크 “주 80시간 근무에 무보수, 초고지능이어야”
- TSMC, 美 공장 ‘미국인 차별’로 고소 당해… 가동 전부터 파열음
- [절세의神] 판례 바뀌어 ‘경정청구’했더니… 양도세 1.6억 돌려받았다
- 무비자에 급 높인 주한대사, 정상회담까지… 한국에 공들이는 中, 속내는
- 금투세 폐지시킨 개미들... “이번엔 민주당 지지해야겠다”는 이유는
- 5년 전 알테오젠이 맺은 계약 가치 알아봤다면… 지금 증권가는 바이오 공부 삼매경
- 반도체 업계, 트럼프 재집권에 中 ‘엑소더스’ 가속… 베트남에는 투자 러시
- [단독] 中企 수수료 더 받아 시정명령… 불복한 홈앤쇼핑, 과기부에 행정訴 패소
- 고려아연이 꺼낸 ‘소수주주 과반결의제’, 영풍·MBK 견제 가능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