텔레그램 CEO 체포가 다시 꺼낸 질문들
“플랫폼이나 그 소유자에게 플랫폼 남용에 대한 책임이 있다는 주장은 터무니없다.”
텔레그램은 파벨 두로프 텔레그램 최고경영자(CEO)가 프랑스에서 체포된 다음날인 25일(현지시간) 발표한 성명에서 이같이 밝혔다. 텔레그램이 관리 부실 탓에 범죄의 온상이 되고 있다는 비판에 ‘플랫폼은 죄가 없다’고 맞선 것이다.
두로프 CEO가 체포된 이후 플랫폼이 표현의 자유를 어느 정도 우선시해야 하는지, 경영진이 플랫폼 안에서 일어나는 범죄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하는지를 둘러싼 논쟁이 확산하고 있다.
프랑스 경찰은 메신저 텔레그램이 마약 밀매, 성착취, 테러 조장 등 범죄에 악용되는 것을 막기 위한 조치를 하지 않는 혐의를 두로프 CEO에게 적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텔레그램은 “우리는 디지털서비스법을 포함한 유럽연합 법을 준수하고 있다”며 반발했다.
‘표현의 자유 절대주의자’를 자처하는 엑스(옛 트위터) 소유주 일론 머스크는 엑스에 “파벨을 석방하라”고 썼다. 지난 2월 옥중에서 사망한 러시아 반정부 운동가 알렉세이 나발니의 최측근인 레오니트 볼코프는 “텔레그램은 온갖 범죄자들이 적극적으로 쓰는 플랫폼이 됐다”면서도 두로프 CEO를 석방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두로프는 텔레그램 사용자들이 저지른 범죄의 ‘공범’이 아니다”라고 했다.
러시아 태생의 두로프 CEO가 2013년 러시아 정부의 검열에 반발해 출시한 텔레그램은 사생활 보호와 표현의 자유 보장을 앞세워 9억명이 넘는 이용자를 확보했다. 서버에 기록이 남지 않는 비밀 대화 기능을 제공한다. 최대 20만명이 참여하는 그룹 채팅이나 채널도 만들 수 있다. 텔레그램은 이용자들이 국가의 검열을 피해 소통하는 것을 도왔다.
하지만 느슨한 관리 탓에 허위 정보나 극단주의 콘텐츠, 성착취물을 유통하려는 이들의 피난처가 됐다. 성착취물을 제작·유통한 ‘N번방 사건’ 당시 가담자들은 “텔레그램은 수사 협조 절대 안 하니까 괜찮다”며 텔레그램을 범죄에 이용했다.
두로프 CEO는 각국 정부들이 플랫폼 규제를 적극적으로 검토하는 와중에 체포됐다. 앞으로 텔레그램에 어떤 변화가 생길지가 최대 관심거리 가운데 하나다. 지난 1월에는 미국 연방 상원이 개최한 ‘빅테크와 온라인 아동 성착취 위기’ 청문회에 메타, 스냅챗, 틱톡, 엑스, 디스코드 등 CEO들이 증인으로 출석해 질타를 받았다. 미국과 유럽은 빅테크 규제를 강화하고 있다.
국내에선 2021년 12월 성착취물 유포를 방치한 플랫폼 사업자도 처벌할 수 있도록 하는 이른바 ‘N번방 방지법’이 시행됐다. 정작 N번방 사건의 통로였던 텔레그램은 ‘사적 대화방’이라는 이유로 법 적용 대상에서 빠졌다. 당국은 통신의 비밀과 자유를 보장하기 위해 사적 대화방에는 적용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두로프 CEO 체포는 텔레그램을 비롯한 플랫폼 기업들에 강력한 경고로 작용할 수 있다. 범죄자들에겐 텔레그램도 완전히 범죄를 숨겨주진 못한다는 메시지로 읽힐 수 있다. 그간 텔레그램은 수사 당국에 ‘선택적 협조’를 해왔다. 2022년 3월 브라질 대법원이 가짜뉴스 관련 수사에 협조하지 않은 텔레그램 접속을 차단하라고 통신업체에 명령하자 텔레그램은 하루 만에 꼬리를 내렸다.
노도현 기자 hyune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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