꼭꼭 숨은 완강기…찾아내도 "이거 어떻게 써요?"[르포]
"10년 만에 처음 봤어요."
서울 암사동에 사는 김모씨는 26일 오전 아파트 복도에 있던 완강기를 보고 이렇게 말했다. 완강기는 고층에서 불이 났을 때 몸에 밧줄을 매고 천천히 내려올 수 있도록 만든 비상용 기구다.
완강기는 서랍 안에 각종 잡동사니와 함께 안쪽 깊숙이 놓여 있었다. 그는 "평소에 쓸 일이 많이 없다고 생각해서 밖에 뒀다"며 "지금 보니 먼지가 수북하다"고 말했다.
집 내부에 설치된 완강기 지지대는 각종 물건들 사이에 '숨어 있었다'. 김씨는 지지대를 바로 옆에 있는 선반과 케이블 끈으로 묶어두기도 했다. 그는 "창문에서 바람이 불면 지지대가 흔들려서 삐그덕 소리가 난다"며 "옆에 선반이랑 끈으로 연결하면 낫다"고 말했다.
19명 사상자가 발생한 부천 호텔 화재 사고 후 완강기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는 가운데 아파트와 숙박시설 등에 완강기가 대체로 관리되지 않고 방치되는 것으로 파악됐다. 완강기가 설치돼 있더라도 대다수 시민들은 이용 방법을 모른다고 입을 모았다.
2005년 강화된 소방법에 따라 해당 연도 이후부터 승인된 모든 건축물은 3~10층까지 완강기를 설치해야만 한다. 아파트의 경우 3~10층에 완강기 설치를 해야 하며 계단식 구조 아파트는 세대마다 하나씩 설치하도록 규정한다. 숙박시설은 객실마다 완강기 또는 2개 이상의 간이 완강기를 설치해야 한다.
이날 서울 시내에 있는 숙박시설에 방문하니 복도 창가쪽에 완강기 지지대와 기구 등이 놓여있었다. 객실 안에는 간이 완강기 보관함 1개가 책상 밑에 있었다. 객실 안 창가 벽쪽에는 완강기 로프를 끼울 수 있는 둥근 고리가 하나 있었다.
간이 완강기를 꺼내들자 먼지가 휘날렸다. 보관함 안에는 벨트, 조속기 본체, 후크, 고리, 로프, 사용설명서 등이 있었다. 벨트 쪽에는 '보호대를 겨드랑이에 걸고 사용하라'는 안내문도 크게 적혀 있었다.
완강기를 꺼내들고 창가 벽쪽에 있는 고리에 연결하기까지 5분 이상 걸렸다. 각각 기구들이 어떤 기능을 하는지 사용 설명서를 봐야 이해할 수 있었다. 밖으로 탈출하는 시간까지 고려하면 화재 골든 타임인 7분을 지키기 쉽지 않았다.
완강기 후크를 창가 벽쪽에 있는 둥근 고리와 연결시키려 했지만 오랜 시간 사용을 안한 탓에 헐렁하게 풀려 있었다. 한쪽 방향으로 있는 힘껏 돌려야 고리가 단단하게 고정됐다.
30대 직장인 박모씨는 "불이 나면 연기도 나고 어두컴컴한데 완강기를 찾아서 사용설명서를 보고 설치한 뒤에 고리까지 단단하게 고정하려니 막막하다"며 "방 안에 두 명 이상 있으면 진짜 고민에 빠질 것 같다"고 말했다.
직장인 김채은씨(29)는 "법적으로 완강기를 의무적으로 설치하게 해도 사람들이 이용할줄 모르는데 무슨 의미가 있나"라며 "학교나 직장에서 소화기나 심장제세동기처럼 완강기를 배울 수 있는 기회가 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소방당국 등에 따르면 완강기를 이용할 때 9가지 과정을 거쳐야 한다. 지지대를 벽면에 부착하고 완강기 후크를 고리에 건 뒤 지지대와 연결 후 나사를 조여야 한다. 창 밖으로 줄을 내려 놓고 벨트를 머리에서부터 뒤집어 쓴 채 뒤틀림 없도록 겨드랑이 밑에 걸어야 한다.
고정 링을 이용해 벨트를 가슴에 확실하게 조인 뒤 지지대를 창 밖으로 향하게 하고 두 손으로 바로 밑의 로드 2개를 잡는다. 이후 발부터 창 밖으로 내민 뒤 두 손은 건물 외벽을 향해 뻗치면서 천천히 내려가면 된다.
전문가들은 완강기를 이용할 때 팔을 위로 올리지 말고 사용 전에는 지지대를 흔들어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두 팔을 위로 올리면 벨트가 빠져 추락할 가능성이 있다. 지지대가 심하게 흔들리면 이 역시 사고 위험이 높다.
공하성 우석대학교 소방방재학과 교수는 "소방점검시설이 보통 1년에 1~2번 이뤄져서 제대로 관리가 되지 않는다"며 "화재 안전 조사를 나가면 완강기가 이불장 안에 있거나 커튼 뒤에 숨어있다"고 말했다. 이어 "완강기를 눈에 잘 보이는 곳에 비치해야 한다"며 "평소 완강기에 대한 제대로 된 이해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지은 기자 running7@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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