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금 짠맛 잃으면 가치 없어"…이찬희 위원장, 한경협 회비 두고 '작심 발언'
"최고권력자와 가까운 정치인 출신 여전히 남아"…사실상 김병준 고문 '저격'
[아이뉴스24 권용삼 기자] "소금이 짠맛을 잃으면 그 가치를 잃는다고 생각합니다. 준법감시위원회 혹은 위원장으로서 말씀드린 것이 어떠한 압박으로 돌아오더라도 이번 기회에 대한민국에서 정경유착의 고리가 확실하게 끊어지게 되는 계기가 마련되길 개인적으로 소망합니다."
이찬희 삼성 준법감시위원회 위원장이 26일 오후 2시께 서울 서초구에 있는 삼성생명 서초타워에서 열린 정기회의에 앞서 취재진과 만나 이같이 말했다.
이찬희 위원장은 이날 정기 회의에서 한국경제인협회(한경협) 회비 납부 문제를 추가 논의할 지 묻는 취재진의 질문에 "한경협이 싱크탱크로서, 경제인들에게 도움이 되는 단체로 변화하고자 하는 류진 회장님과 준법경영을 위한 윤리경영위원회의 활동에 대해서 아주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있다"며 "운영과 회계에 있어서 투명성을 보장하기 위한 각종 장치를 만들고 그것에 대해 자료 제공을 성실하게 해주는 부분에 대해서도 매우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그러나 한경협이 정경유착의 고리를 확실하게 끊을 수 있는 인적 쇄신이 됐는 지에 대해서는 근본적으로 의문을 가지고 있다"며 "정경유착의 근본을 끊기 위해서는 그 결단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아직도 정치인 출신, 특히 최고 권력자와 가깝다고 평가 받고 있는 분이 경제인 단체의 회장을 직무대행을 했다는 것도 상식적으로 이상할 뿐만 아니라 임기 후에도 계속 남아서 관여하고 있다는 사실은 과연 한경협이 정경유착의 고리를 끊을 의지가 있는 지에 대해서 근본적으로 회의를 가지고 있다"며 "정치인 출신이 계속 남아서 어떤 특정한 업무를 한다면 그것은 유해한 것이 될 수 있고, 그렇지 않고 아무런 활동도 하지 않는다면 회원들의 회비로 국민이 납득할 수 없는 예우를 받는다는 것은 무익한 일이라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이날 이 위원장의 발언은 김병준 전 한경협 회장 직무대행이 여전히 한경협에서 상근 고문직을 유지하고 있는 점을 지적한 것으로 풀이된다.
김 고문은 지난해 2월부터 8월까지 회장 직무대행직을 맡으며 신임 회장 후보 추천과 한경협 출범까지 역할을 맡아왔다. 이후 한경협은 지난해 내부 공사를 통해 김 고문을 위한 사무실을 마련했고 월급을 비롯해 개별 차량과 일정의 활동비를 지원하고 있다. 그간 한경협 회장직을 수행했던 인물이 상근 고문으로 남은 건 김 고문이 처음이다.
재계 안팎에선 이러한 김 고문과 한경협의 행보를 두고 비판의 목소리가 제기돼 왔다. 이에 대해 류진 한경협 회장은 "이번엔 예외 케이스"라며 "더 이상 제가 있는 동안 정치인 출신 고문은 없을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김 고문은 노무현 정부에서 청와대 정책실장과 부총리 겸 교육인적자원부 장관을 지냈고, 현재 국민의힘의 전신인 자유한국당에서 비상대책위원장을 맡았다. 지난 대선에선 당시 윤석열 대통령 후보의 선거 캠프에서 합류해 상임선대위원장을 지냈으며, 대선 후에는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균형발전특별위원장으로 임명됐다. 지난해에는 한경협의 전신인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 회장 직무대행을 맡았다.
이찬희 위원장은 지난달 정기회의 후 취재진들과 만난 자리에서도 "한경협이 전경련에서 변화한 이유가 정경유착의 고리를 끊겠다고 한 취지였는데, 지금 상황이 인적 구성이나 물적 구성에 있어 정경유착의 고리가 끊겼는 지에 대해 근본적 의문이 있다"며 "한경협 스스로가 검토해야봐야 될 문제"라고 밝혔었다. 지난 4월에도 "회비를 내느냐, 안 내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 어떻게 사용되는지, 사용된 후 어떻게 감사를 받을 것인 지가 더 중요한 문제여서 신중히 검토하겠다"고 강조한 바 있다.
이와 함께 이 위원장은 한경협의 정경유착 해소 방안에 대해 묻는 질문에는 "여러 의견을 이미 제시했고, 한경협이 많은 변화가 있었다고 평가한다"며 "한경협이 앞으로 국민과 기업을 위한 단체로서 활동하기 위한 충분한 여건을 갖추고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다만 한경협의 특정한 자리가 정경유착 전리품이 돼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며 "여야를 바꾸더라도 항상 그 자리가 이번 한 번만 예외가 아니라 앞으로도 계속 그런 자리로 남을 것에 대해서 우려심을 가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한 번의 예외를 인정하는 것은 쉽다. 그런데 그 원칙을 다시 회복하려고 하면 불가능하거나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며 "그렇기 때문에 준감위에서 쉽게 결정하지 못하고 신중하게 회비 납부에 대해 다시 한 번 고민을 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한편 앞서 한경협은 지난 3월 말 삼성을 포함한 427개 회원사에 새로 개편한 회비 체계 관련 납부 공문을 발송했다. 4대 그룹 가운데 현대차그룹이 지난 7월 초 가장 먼저 납부한데 이어 SK그룹도 지난주 한경협이 요청한 35억원 수준의 회비를 납부한 것으로 알려진다. LG그룹은 회비 납부를 놓고 내부 검토 중인 것으로 전해진다.
현대차와 SK가 회비 납부 신호탄을 쏘면서 당초 재계 안팎에선 삼성도 조만간 회비 납부에 나서는 것 아니냐는 전망이 제기됐다. 다만 이날 삼성 준감위의 제동으로 삼성의 한경협 회비 납부 문제는 당분간 해결되기 싶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앞서 삼성은 지난해 8월 한경협 재가입 당시 삼성 준감위로부터 회비 납부 시 사전 승인을 받도록 권고 받은 바 있다.
이 위원장은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과의 회동 계획을 묻는 질문에는 "조만간 만날 것으로 알고 있다"며 "구체적인 일정은 나중에 말씀드리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권용삼 기자(dragonbuy@inews24.com)Copyright © 아이뉴스24.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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