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준기의 과·알·세] 방사선 쬔 `케나프`로 미래 준비… 목재 대체재가 자란다
2003년부터 종자 수입해 연구
개량종 '장대'로 상용화 활발
기름 흡착제·車 판넬 등 다용
목재 플라스틱 복합재로 개발
전북 정읍에 위치한 한국원자력연구원 첨단방사선연구소 내 야외 방사선육종 재배실. 이 곳은 여느 논, 밭과 다름 없어 보였지만 특별한 작물들이 재배되고 있었다. 방사선 육종기술을 활용해 신품종으로 개발된 작물들이다. 그 중에서 연일 계속되는 여름철 폭우 속에서 마치 옥수수처럼 길게 자라고 있는 진녹색의 작물이 눈에 띄었다. 키가 대략 3m는 넘어 보일 정도로 곧게 자라고 있었다.
이 작물은 우리나라에서 다소 생소한 '케나프(양마)'로, 친환경 바이오 소재와 차세대 사료용 작물로 주목받으며 산업적 활용 가치가 높아 '남아프리카의 숨은 진주'로 불린다.
류재혁 방사선육종연구실 박사는 "우리가 재배하는 케나프는 기존 품종과 달리 자체 개발한 방사선 육종기술을 활용해 우리나라 기후 환경에서 종자 수확이 가능하고 생산량을 높여 개량한 신품종"이라며 "15℃ 온도 이상에서 자라는 특성상 매년 5월에 케나프 종자를 심어 10월까지 재배하는데, 생장 속도가 빨라 최대로 크면 높이가 5m에 이른다"고 설명했다.
케나프는 서부 아프리카 원산의 무궁화과 1년생 초본식물로, 다양한 소재로 활용이 가능해 세계 3대 섬유작물 중 하나로 꼽힌다. 생장이 빠르고 이산화탄소 흡수량이 많아 고급 제지나 친환경 벽지, 건축용 보드, 바이오 플라스틱, 자동차 프레임, 기능성 의류, 기름 흡착제 등 쓰임새가 많다. 우리나라에서는 1960년대 가마니를 대체하는 포대 생산을 위해 케나프를 수입해 재배했지만, 1970년대 화학 소재 포대 등장과 아열대나 열대 기후에서만 개화하는 품종 특성상 국내에서 씨앗을 얻기 어려워 재배가 중단됐다.
이후 2000년대 들어 친환경 소재가 새롭게 주목받기 시작하면서 원자력연 첨단방사선연구소가 방사선 육종기술을 활용한 케나프 재배 연구를 진행하면서 다양한 품종들이 개발돼 왔다. 최근에는 제품화를 위한 상용화 시도도 활발하다.
방사선 육종기술은 자연상태에서는 낮은 빈도로 발생하는 돌연변이를 방사선을 통해 빈도를 높여 유전적 다양성을 높이는 육종기술 중 하나다. 다른 육종기술에 비해 안전해 벼, 콩 등 식량 작물뿐 아니라 화훼류나 과수류 등 신품종 개발에 널리 쓰이고 있다.
원자력연 첨단방사선연구소는 자체 확보하고 있는 방사선 육종기술을 활용해 지난 2003년부터 외국에서 케나프 종자를 들여와 방사선의 일종인 감마선을 쪼여 후대에서 우수한 변이 계통을 선발하는 방식으로 국내 기후에 맞는 케나프 신품종 '장대' 개발에 성공했다. 이어 대량 실증 재배를 거쳐 2013년 국립종자원으로부터 품종보호권을 획득했다. 이후 방사선 육종기술을 통해 생산성과 기능성을 더 높인 개량 신품종으로 '완대', '원백', '원청', '적봉'을 차례대로 개발했다.
장대는 국내 기후환경에서도 씨앗 수확이 가능하고, 완대는 생산성을 크게 높인 품종으로 많은 양을 수확할 수 있다. 원백과 원청은 내염성이 뛰어나 간척지에서도 대량 생산이 가능하고, 이산화탄소 흡수에 탁월하다. 적봉은 뛰어난 항산화 효능을 가져 고기능성 섬유와 화장품, 항균 제품 등으로 개발할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현대자동차가 제네시스 등 고급 차량에 케나프를 자동차 내장 판넬로 쓰고 있으며, 유조선 기름 유출 사고에 흡착제로 케나프를 활용하고 있다.
류 박사는 "첨단방사선연구소는 종자 생산량을 늘린 '장대'부터 '적봉(고기능성 섬유소재)', '백마(관상 소재)', '완대(고생산성·고강도 소재)' 등 4개 품종의 케나프 품종보호권을 보유한 국내 유일의 기관"이라며 "병충해에 강하고 기능성을 향상시킨 원청, 원강, 원백 등 새로운 품종을 개발해 간척지나 농가 등에서 대량 실증 재배를 진행, 조만간 품종보호권을 확보해 보급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현재 연구소 내 작물 시험장 6600㎡(2000평), 충남 당진 석문단지 1만9000㎡(6000평), 새만금 간척지 9900㎡(3000평) 등에서 케나프 신품종이 재배되고 있으며, 계속 재배면적이 늘어나고 있다고 연구소 측은 설명했다.
첨단방사선연구소는 최근 개발된 케나프를 친환경 바이오 소재로 개발하는 데 성공했다. 열을 가하면 자유롭게 형태를 바꿀 수 있는 열가소성 수지와 완대 분말을 섞은 후 전자선을 쪼여 혼합물의 분자 구조를 변화시키는 과정을 통해 강도와 열 안정성을 높인 목재 플라스틱 복합재로 개발한 것이다. 이 복합재는 기존 화학적 소재를 이용한 제품보다 가볍고 튼튼하며, 산림을 벌채하지 않고도 케나프 분말을 활용해 목재를 만들 수 있어 친환경적이다. 현재 관련 기술은 산업체에 이전돼 데크용 목재, 폴리에틸렌 제품 등으로 생산·양산이 진행되고 있다.
정병엽 첨단방사선연구소장은 "앞으로 고함유 셀룰로오스 등 다양한 품종을 개발해 초고강도 탄소 소재, 고기능성 의료용 신소재, 화장품, 마스크팩 등 다양한 제품에 활용될 수 있도록 기술 개발에 주력할 계획"이라며 "첨단 방사선 기술을 고도화해 농가 소득 증대를 통한 경쟁력 강화와 친환경 제조 기술 개발로 국가 탄소중립에 기여하겠다"고 말했다.
정읍(전북)/글·사진=
이준기기자 bongchu@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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