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 갈구한 ‘슈만’ 음악에 파격적 몸짓 [리뷰]

정주원 기자(jnwn@mk.co.kr) 2024. 8. 26. 1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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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남자(무용수 이정우)가 맨몸으로 무대 한가운데서 몸부림친다.

세찬 빗소리가 들리는 가운데 슈만의 가곡 '시인의 사랑' 중 제5곡 '나의 마음을 적시리'가 흐르고 있다.

퍽은 때 묻지 않은 사랑을 상징하는 동시에, 관객과 무대를 연결해주는 중요한 통로다.

주재만은 앞선 제작발표회에서 "슈만 음악을 1000곡 넘게 종일 들었다"며 "감정과 사랑에 얽혀 살아갔던 인생이 너무 와닿고 이해된다"고 밝힌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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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발레단 ‘한여름 밤의 꿈’
재미 안무가 주재만 세계초연작
미디어 활용해 거센 폭우 등 표현
국내 세번째 공공발레단 정식 창단
서울시발레단이 정식 창단 공연으로 8월 23~25일 선보인 주재만 안무가의 세계초연작 ‘한여름 밤의 꿈’. 원작에서 장난꾸러기였으나, 오랜 세월을 거쳐 사랑의 현자가 된 요정 ‘퍽’(무용수 리앙 시후아이)이 커플 앞에서 춤 추고 있다. 사진제공=세종문화회관
한 남자(무용수 이정우)가 맨몸으로 무대 한가운데서 몸부림친다. 세찬 빗소리가 들리는 가운데 슈만의 가곡 ‘시인의 사랑’ 중 제5곡 ‘나의 마음을 적시리’가 흐르고 있다. ‘연인의 세레나데’ 직후라 이 남자가 홀로 추는 춤은 더 고독해 보인다. 늘 사랑을 갈구했던 슈만의 모습이 겹쳐 보이는 듯도 하고, 외로움을 겪는 누구의 내면일 수도 있겠다. 남성이 바닥에 쓰러져 있는 사이 또 다른 커플이 사랑의 춤을 추고, 쓰러졌던 그에게는 흰옷을 입은 존재(리앙 시후아이)가 다가와 우산을 씌워준다.

지난 23일 서울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첫선을 보인 서울시발레단 정식 창단 공연 ‘한여름 밤의 꿈’이 120분(인터미션 포함)의 2막 7장 구성으로 보여준 다양한 사랑의 단상 중 한 장면이다. 미국 뉴욕 컴플렉션즈 전임 안무가이자 포인트파크대 발레 교수인 한국인 안무가 주재만의 세계 초연작이다. 보통 고전 발레가 기승전결 식으로 하나의 완결된 서사를 보여준다면, 이 작품은 뚜렷한 서사는 없다. 다만 지나친 추상성과도 거리를 두고 사랑에 관한 다양한 감각을 표현했다.

서울시발레단이 정식 창단 공연으로 8월 23~25일 선보인 주재만 안무가의 세계초연작 ‘한여름 밤의 꿈’. 사진제공=세종문화회관
여러 사랑의 모습을 하나로 이어준 건 셰익스피어가 쓴 동명의 원작 속 등장인물이기도 한 요정 ‘퍽’이었다. 앞서 남자에게 우산을 씌워준 것도 그다. 원작에서 엉뚱한 사람들을 이어줘 갈등을 유발하는 장난꾸러기였던 캐릭터가 수백 년의 세월을 거쳐 초월적 존재, ‘사랑의 현자’가 돼 인간을 보듬어준다. 퍽은 때 묻지 않은 사랑을 상징하는 동시에, 관객과 무대를 연결해주는 중요한 통로다. 이 캐릭터 외에 원작과의 연결점은 많지 않다. 보통 무용작이 멘델스존 음악과 꾸며졌지만 연출 겸 안무가 주재만은 슈만을 택했다. 주재만은 앞선 제작발표회에서 “슈만 음악을 1000곡 넘게 종일 들었다”며 “감정과 사랑에 얽혀 살아갔던 인생이 너무 와닿고 이해된다”고 밝힌 바 있다.
서울시발레단이 정식 창단 공연으로 8월 23~25일 선보인 주재만 안무가의 세계초연작 ‘한여름 밤의 꿈’. 사진제공=세종문화회관
각 장면은 영상 기술을 활용한 무대 연출이 인상적이었다. 가령 2막 초반부에 생중계 카메라를 무대로 올려 군무를 추는 무용수들 신체를 배경의 영사막에 띄웠다. 보통 무용수 몸에만 집중하게 하는 기존의 문법과는 다른, 기술로 새로운 경험을 만들어냈다. 소리와 미디어아트로 재현한 거센 폭우, 거대한 깃털 오브제와 분홍색 조명으로 표현한 ‘순수한 마음’ 등도 시선을 끌었다. 새빨간 ‘사랑의 나무’에 빛을 쏴 마치 거대한 나무가 사람처럼 춤추고 노래하는 효과를 낸 것도 인상적이었다.

‘알 수 없는 미래 속으로’라는 제목이 붙은 마지막 장에선 희미하게 동트는 수평선을 배경으로 파란 옷을 입은 사람들이 춤을 춘다. 혼자, 남녀 혹은 남남 조합의 2인무도 이어졌다. 무대 가운데에선 미국 피아니스트 필립 대니얼이 직접 작곡한 ‘더 드림’(The Dream)을 그랜드 피아노로 연주했다. 무용수를 의식한다기보다 온전히 자기 연주에 집중한 모양새였다. 무용수들도 군무 장면에서 어긋남 없는 정확한 각보다는 개성과 자연스러운 몸짓을 추구한 듯했다. 이들은 종국엔 하늘을 향해 각자 달려가는데, 사랑을 통해 자신을 찾는 여정을 시작하는 이들에 대한 찬사로도 읽혔다.

서울시발레단이 정식 창단 공연으로 8월 23~25일 선보인 주재만 안무가의 세계초연작 ‘한여름 밤의 꿈’. 사진제공=세종문화회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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