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한 짬뽕이 된 것 같았다"…캐시 박 홍 시집 '몸 번역하기'

에세이 '마이너 필링스'로 주목받은 한국계 미국 시인의 첫 시집

한국계 미국 시인 캐시 박 홍(2022년 방한 때) [연합뉴스 자료사진]

(서울=연합뉴스) 김용래 기자 = 캐시 박 홍은 미국의 한국계 이민 2세대 시인이다. 1970년대 미국으로 건너간 그의 부모는 집에서 한국어만 사용할 것을 고집했다. 집에서는 한국어를 말하고, 바깥의 공적인 세계로 나가선 영어를 더듬거리며 익힌 어린 시절의 그에게 한국어와 영어를 오가는 과정은 곤경이었다. 그리고 이런 경험은 의식과 무의식에 지워지지 않는 상처를 남겼다.

한국어와 영어 화자 그 어느 쪽에도 완벽하게 속할 수 없는 영원한 이방인에게 남겨진 상흔은 그러나 훗날 독특한 시 세계를 일구는 토양이 된다.

최근 번역돼 나온 '몸 번역하기'(원제 Translating M'oum)는 미국의 주목받는 한국계 시인 캐시 박 홍이 2002년 미국에서 출간한 그의 첫 시집이다.

캐시 박 홍은 백인이 주류인 사회에서 아시아계 여성으로서 느끼는 차별의 감정을 섬세하게 드러낸 에세이 '마이너 필링스'로 전미도서비평가협회상을 받고 퓰리처상 최종후보에 오르는 등 화제를 모은 작가다.

이번 시집에 수록된 첫 작품 '동물원'은 시인의 호기심 어린 시선으로 한국어의 자음과 모음들, 한국말을 하던 부모, 낯선 문화 속에서 정체성의 혼란을 느끼며 적응해가던 어린 날의 순간들을 포착한 시다.

"미끈한 피부, 깜빡임 없는 눈. / 맛보기 공연은 동물 가죽 입은 외국인을 초대하고. (중략) 위생에 집착하시는 어머니 아버지: / 오래된 제3세계 냄새를 지우려 하시는 듯."

툭 던져진 듯한 이방인을 바라보는 타자의 차별적인 시선이 날카롭게 느껴진다.

한국어와 영어 사이에서, 아시아인과 미국인 사이에서, 그리고 비(非)백인과 백인 사이에서 인종화된 화자의 신체는 언어와 마찬가지로 깨져 있고 마구 뒤섞여 있다. '이상한 짬뽕'이다.

시집 '몸 번역하기' [마티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나는 이상한 짬뽕이 된 것 같았다: 팔꿈치에서 코, / 정강이에서 눈, 목에서 가슴, 머리부터 발끝까지"(시 '통과의례'에서)

집에서만 한국어를 썼을 뿐 제대로 배운 적이 없는 시인은 열병을 앓던 어느 날 엄마의 물음에서 비로소 시인은 '아프다'의 뜻을 정확히 알게 된다.

"엄마는 항상 내게 물으셨다 :모미 아-파? (중략) 내가 대답했다: 모미 아파 어마."(시 '몸 번역하기'에서)

이 시집의 역자이자 해설을 쓴 한국외대 정은귀 교수의 해석처럼 시인에게 한국어는 명료한 지식이나 의미의 대상이 아니라, 몸의 경험과 밀착된 소리, 의미와 소리가 일치되지 않는 불투명한 대상일 뿐이다.

한국어판에는 시의 영어 원문과 번역이 함께 수록됐다.

시인은 원문에서 별도의 설명이나 각주 없이 몸은 'M'oum', 시(詩)는 'shi', 까치는 'Kkatchi'로 표기하는 등 자기 몸에 새겨진 한국어의 상흔을 원형 그대로 드러내 보인다. 마치 시란 상처의 가장 정직한 고백임을 증언하듯이.

마티. 정은귀 옮김. 212쪽.

yongla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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