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기양양 어슬렁…괌에서 ‘길닭’을 만나다
올해 여름에만 폭염으로 닭이 100만 마리 이상 죽었습니다. 폭염이 극심했던 2018년에는 800만 마리가 죽었고요. 공장식축산을 이렇게 놔두어도 될까요? 닭이 죽지 않도록 하는 방법은 없을까요? -제보자 ‘비건 버거’
‘꼬끼오’
고급 호텔이 바닷가에 모여있는 미국령 괌의 투몬비치. 엉망진창 행성 조사반의 홈스 반장과 왓슨 요원이 한 호텔로 여름휴가를 왔어요. 잠이 깬 왓슨이 시계를 보니 아침 6시였어요. 왓슨은 홈스를 깨웠습니다.
“금방 들으셨어요? 수탉 우는 소리 같은데요?”
“꿈꿨나? 이런 도시에 무슨 닭이 있다고.”
‘꼬끼오’ ‘꼬끼오’
홈스의 지청구가 끝나기 무섭게 다시 소리가 들렸어요. 정말로 닭이 아침을 깨우는 소리였죠. 홈스가 옷을 주섬주섬 챙겨 입으며 말했습니다.
“자, 한번 찾아보자고.”
둘은 재빨리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가 소리의 발원지를 쫓아 갔습니다. 산책로를 따라 바닷가에 내려갔는데, 붉은 수탉 한 마리가 모래밭을 뛰어가고 있었어요! 그 뒤로 검은 뿔테 안경에 하얀 신사복을 입은 노인이 지팡이를 들고 닭을 쫓아가고 있었고요. 수탉이 호텔 정원의 풀숲으로 사라지자, 하얀 노인이 콧방귀를 끼며 말했죠.
“흥. 프라이드치킨 한 마리도 안 나오겠네.”
홈스와 왓슨은 하얀 노인에 말을 걸어보려 했지만, 그는 눈길도 주지 않고 사라지더군요.
호리호리하고 행동이 빠른 길닭
신기하게도 괌에는 정말 닭이 많았습니다. 그것도 길거리에서요.
시내를 걷던 홈스와 왓슨은 눈을 휘둥그레 떴습니다. 암탉 한 마리가 횡단보도를 건너고, 그 뒤를 꾀죄죄한 병아리들이 의기양양하게 따라가더라고요. 호텔 주차장 구석에는 대여섯 마리로 이뤄진 무리가 초보 운전자들을 괴롭혔습니다. 무리의 권력 서열 1위인 수탉이 능글맞게 웃으며 말했죠.
“운전 실력도 없는 네 놈들이 우리를 건드렸다간 야생동물보호법 위반으로 쇠고랑을 찰 거야."
골목을 걷다가 후미진 풀숲에서 닭이 뛰쳐나왔습니다.
“아이고, 깜짝이야!”
홈스와 왓슨을 닭을 피해다니느라 정신을 못 차릴 지경이었습니다. 왓슨이 혀를 내둘렀습니다.
“한국에는 길고양이가, 괌에는 길닭이 사네요.”
괌을 비롯한 태평양 서부의 미크로네시아의 섬들, 하와이와 동부의 폴리네시아 섬들에는 길닭(feral chicken)이 있어요. 고양이가 외출했다가 길고양이가 된 것처럼, 원래 가축이었던 집닭이 집 밖에서 놀다가 야생 닭이 된 거죠.
길닭의 삶은 야생적이고 자유롭고 독립적입니다. 집닭(학명 Gallus Gallus)의 시조인 야생 닭 ‘적색아계’(학명 Gallus Gallus domesticus)의 본능을 되찾았다고나 할까요?
우선 길닭은 몸집이 호리호리하고 행동이 빨라요. 비좁은 공장식축산 농장에서 맨날 살만 찌우며 제대로 걷지 못하는 닭과는 판이하죠. 길닭은 농장 밖으로 나가 열심히 돌아다니며 야생의 삶을 살았고, 지금 길닭의 몸무게는 육계의 절반밖에 되지 않아요. ‘프라이드치킨 한 마리도 안 나오겠다’고 한 하얀 노인이 정확하게 본 거죠.
사실 제2차 세계대전 전까지만 해도 닭고기는 특별한 음식이었어요. 그때까지만 해도 고기용 닭(육계)을 따로 키우지 않았어요. 닭고기는 계란을 낳는 닭이 죽었을 때 얻는 부산물이었죠.
미국에서 특별한 손님이 왔을 때 농가에서 대접하는 음식이 ‘로스트 치킨’(roast chicken)이었어요. 한국판은… 다들 아시죠? 처갓집 양념통닭… 아니, “사위 왔다, 닭 잡아라”로 통하는 장모님 닭백숙. 멀리서 사위가 왔을 때 만드는 특별한 음식이었죠. 이게 얼마나 귀중한 대접이냐면, 계란을 얻을 수 있고 병아리를 깔 수 있는 집안의 가장 중요한 경제적 재원을 음식으로 만들어 없애는 것이거든요.
그러다가 1950년대 이후 닭의 품종이 육계(고기용 닭)와 산란계(달걀 낳는 닭)로 분화됩니다. 오늘날 사육되는 육계의 조상은 1946~48년 미국에서 열린 ‘오늘의 닭 경연대회’에서 우승한 ‘아바에이커’의 후손이에요. 가슴살과 닭다리가 큰 육계 품종 개발이 시작된 거죠.
길닭은 생태와 행동 면에서도 야생 닭과 비슷해요. 길닭은 무리 생활을 하지요. 일반적으로 야생 닭은 수탉을 중심으로 여러 암탉을 두는 하렘을 이뤄요. 거기에 서열이 하위에 있는 수컷들도 함께 무리를 이루죠. 길닭도 마찬가지예요. 여러분이 괌 길거리에서 닭을 봤다면, 주변에 닭 무리가 산다는 얘기죠.
야생 닭과 마찬가지로 길닭은 풀숲과 덤불에 알을 낳아 번식해요. 암닭이 알을 낳고 ‘꼬꼬댁’ 하고 울죠. 기온이 30도 이상으로 올라가는 낮에는 풀숲에 들어가 쉬고, 이른 아침과 해질녘에 나와 벌레를 잡아먹거나 쓰레기통 주변을 어슬렁거려요. 캣맘, 캣대디처럼 길닭에게 모이를 주는 사람도 있어요. 닭들은 그런 사람들을 찾아다녀요.
길닭은 우리가 먹는 프라이드치킨의 닭에 견주면 멸종위기종인 셈이에요. 동물권 연구기관 ‘파우낼러틱스’의 추산을 보면, 2020년 기준으로 한해 707억6757만 마리의 사육 닭이 세계에서 도살되고 있어요. 고기로 쓰이는 육계만 쳐도 이 정도에요. 1961년 657만 마리에서 1만배 이상 늘어난 거예요. 한때 귀한 음식이었던 닭고기를 얼마나 우리가 많이 먹는지 실감이 날 거예요.
홈스와 왓슨은 자유로이 돌아다니는 길닭을 보며, 공장식 양계장에서 사는 산란계가 생각났어요. 닭들은 A4 용지 한 장 남짓한 공간에서 1~2년 살다 죽어요. 초밀집 사육 환경이다 보니, 여름 폭염에 도미노처럼 쓰러져 죽어나가죠. 왓슨이 말했어요.
“길닭을 보니까 공장에서 사는 닭이 더 불쌍해지네요. 올해만도 폭염으로 벌써 100만 마리가 죽었대요.”
홈스가 맞장구쳤어요.
“그러게 말일세. 닭이야말로 기후변화의 최대 희생양이지. 닭을 좁은 공간에 가둬놓은 것도 잔인하지만, 사회적 본능을 빼앗은 것도 그에 못지않은 거 같아.”
비밀의 방에서 만난 잎싹이
‘꼬끼오’
또 하루가 밝았어요. 언제나처럼 닭 우는 소리를 듣고 홈스와 왓슨은 아침에 일어났죠. 둘은 호텔에 사는 닭을 직접 만나고 싶었죠. 하얀 노인이 잡으려고 애쓰던 그 닭을요.
아니나 다를까. 바닷가에 내려가니 하얀 노인이 닭을 찾는 듯 두리번거리고 있었어요. 하지만 닭은 아미 자취를 감춘 상태였죠.
하얀 노인을 뒤로하고 둘은 호텔 재활용 센터로 향했어요. 길닭이 음식물쓰레기를 먹으려고 자주 들르는 곳이었죠. 그런데, 재활용 센터의 오른쪽 벽에 지팡이가 그려져 있었어요. 뱀이 지팡이를 타고 오르고 있었죠. 왓슨이 고개를 갸웃했어요.
“뱀이 감겨있는 지팡이라… 왜 이런 곳에 구급차에나 쓸 그림을 그려놨을까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의학과 치료의 신인 ‘아스클레피오스’의 지팡이야. 옛날 그리스 사람들은 아픈 사람이 있으면 아스클레피오스 신전에 가서 닭을 희생 제물로 바쳤다던데… 그렇다면?”
무언가 깨달았다는 듯 홈스가 지팡이 그림을 똑똑 두드렸더니, 갑자기 ‘윙’ 하는 소리와 함께 하얀 먼지가 일며 숨겨진 문이 열렸어요. 비밀의 방이었죠.
아무도 없는 것 같았어요. 왓슨이 랜턴을 켜고 방향을 돌렸어요. 닭이 그려진 벽화가 연달아 나타났어요.
“한국 애니메이션 ‘마당을 나온 암탉’의 주인공 엄마 닭 ‘잎싹이’도 있는데요? 어! 플래카드가 걸려있어요. 치킨해방전선?”
갑자기 퍼드덕 소리가 났어요. 수십 마리의 닭이 날아와 강한 날개와 날카로운 발톱으로 홈스와 왓슨의 얼굴을 가격했죠. 둘은 정신을 잃고 쓰러졌어요.
*9월2일에 이어집니다.
*본문의 과학적 사실은 실제 논문과 보고서를 인용했습니다.
남종영 환경저널리스트·기후변화와동물연구소장
Copyright © 한겨레신문사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 [단독] 성매매 건물주는 교수·종교인·퇴역 장군…132곳 털어봤다
- ‘정치쇼’ 비판에…한동훈, ‘이재명과 회담 생중계’ 제안 철회
- ‘호텔 화재’ 25살 아들 마지막 문자 “사랑해 엄마아빠”
- 검찰총장 “명품백 수사, 외부 의견 듣는 게 바람직…수심위 존중”
- ‘헤즈볼라 정찰은 도왔다’는 미국 “이스라엘의 공격엔 참여 안 해”
- “나보다 어리면 포기 마”…102살 할머니 2.1km 스카이다이빙
- [단독] 기대도 신뢰도 잃어가는 인권위…권고 급감, 존재감 ‘휘청’
- 전광훈 “김문수 총리 임명해야, 윤 대통령이 퇴임 뒤 감방 안 가”
- 다시 뛰는 우상혁, 다이아몬드리그 ‘파이널’이 보인다
- ‘7명 사망’ 부천 호텔 실소유주·업주 2명 입건…출국 금지 조치